2009.01.01.
2009년 새해를 맞이하다.
2008년 마지막 밤을 마음 맞는 분들과 유쾌하게 보내고,
2009년 새해 새아침을 가족들과 함께 맞이하였다.
아침 식사를 하고, 미사를 드리고,
인사를 드리러 시내에 나간 김에,
부모님과 함께 덕수궁을 찾았다.
덕수궁에 들른 이유는, 덕수궁 미술관에서,
'한국 근대 미술 걸작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예술을 사랑하시는 울 아빠, 엄마-
이제 얼마 안남은, 딸과의 시간에, 무엇이든 함께 하길 바라시는 마음,
이것 참, 새해의 하루가 너무 따뜻하더라.
정말 어려웠던 시절이었을, 한국의 근대-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그 속에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을 한국,
그럼에도 조선, 한국의 화가들은 끊임없이 창조를 향한 예술혼으로,
잊혀지지 않을 명화들을 탄생시킨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고난과 과도기의 우리나라 역사를 살아가야만 했던,
그들의 소명이었을지도.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화백,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천경자, 김기창 뿐아니라,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새롭게 알게된, 이쾌대, 이유태, 등,
100여명의 한국 근대 화가들의 귀한 작품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이들의 그림을 보면서 느낀점은,
예술가의 눈을 통해, 예술가의 노력으로 탄생한 '그림', 이라는 것은,
같은 평면상의 실사화인, 사진이나 동영상, 영화, 등이 보여줄 수 없는 그 무엇,
그러니까, 감정적 관찰의 의미,를 한눈에 직면하게 해 준다는 것을 깨달았달까.
그 깨달음은, 다시, 관찰자 입장으로, 그 그림 앞에 서 있는 나에게,
'작품 감상'의 의미를 새로이 각성시켜주었으니...
더구나 시간의 흐름 아래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살아온 나에게,
다른 서양 화가들의 그림을 대면할 때보다 더 마음이 울리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인지상정.
한국을 떠나기 전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번 더 가보고 싶구나.
그리고, 참 마음에 남았던 그림 중의 하나,
그러니까 내가 어떤 교과서나 자료에서도 본 적 없이 이번에 처음 볼 수 있었던 작품 중에서,
玄艸 (현초) 李惟台 (이유태) 화백의 探究 (탐구, research)가 있었으니.
이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일까.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근대 여성을 그린 그림.
내 키보다 더 커보이는 화폭안에 그려진 그 신여성의 또렷한 이미지가,
너무나 반갑더라.
실험 테이블 위의 현미경과 반응기록계, 한 쪽 바닥의 케이지 안에 들어있는 실험동물 토끼,
뒤쪽 벽에 즐비하게 놓여있는 각종 시약병과 해부도구들,
그리고 너무나 참한 모습으로 흰 실험 가운을 입고 앉아있는 여성 연구원의 모습까지,
물론, 과거 시대의 유물들이 되었지만,
하하, 그 어려웠을 때에도 이렇게 연구하고 있었구나, 싶은 마음에,
너무 반가워! 하고 그림 속 여인에게, 말을 걸고 싶을 지경이었다.
한동안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그림 앞을 서성이며,
구석구석 살펴보는 나는,
어쩌면 그 그림속에서 내 모습을 찾고 있었는지 모른다.
집에 돌아와서 시작된 뒷조사-
이유태 화백은, 지난 1999년 작고하셨고, 이화여대 미대 교수님이셨단다.
인물화는 위 그림을 포함하여 1940년대 몇점 남기신 것 밖에 없고,
수묵-채색 풍경화로 대작을 많이 남기셨더라.
아, 또하나 새롭게 안 사실은,
1000원짜리 지폐의 퇴계 이황 선생의 영정 또한 이유태 화백의 그림이었다는 것이다.
아래의 그림은 검색중에 찾은 이유태 화백의 풍경화 중 하나, 漢江雪晨 (한강설신) 이다.
새해 첫날, 너무나 추워 발을 동동 구르며 걸어간 덕수궁 돌담길이었지만,
그 아래에서 오뎅꼬치와 각종 먹거리를 팔고 계시던, 맘씨 좋아보이는 아저씨,
주차 금지 구역에 차를 대어놓는 것을 허락해준 경찰 아저씨,
그리고 같이 그림을 감상하며 따뜻한 시간 보내 주신 울 부모님,
올 한해는 왠지 푸근하고 따뜻한 한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