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무스탕의 기억

이별과 이별하기

by 오디ssey

"여보, 얼른 짐 싸"


상기된 얼굴로 들어온 남편은 몸이 거실을 채 들어오기도 전에 벗겨지지 않은 신발을 털어 버리듯이

던지고는 나를 재촉했다.

평소의 차분했던 그 같지 않는 행동에 남편의 얼굴을 살펴보니 우선은 “무슨 일이야?” 하고 물었지만

안 좋은 일은 아닌 듯싶어 보여 안심이 되었다.

평소 말이 많지 않은 그와는 다르게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살짝살짝 실룩이며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면서도 쉽게 얘기해 줄 것 같지 않은 표정으로 재촉할 따름이다.

“애들은 내일 학교 쉬라고 그래, 우리 여행 가자”


2000년 초에는 지금처럼 교외체험 활동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결석은 그냥 학교에 오지 않는 것이다.

그때는 결석은 결격사항으로 여겨서 일 주 전에 미리 신청서를 제출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우리에겐 늘 가장의 말은 법이고 무엇보다 아이들은 이유 따지지 않고

학교를 쉰다는 것은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엄마, 아빠랑 여행을 간다는데 얼마나 신이 났을까


지금은 사라졌지만 천안과 아산의 경계에 살짝 오른쪽 언덕에 ‘동방마트’라고 해서 일반적인 마트 수준이

아닌 지금의 트레이더스처럼 크고 다양한 물건이 많았던 곳으로 핫하다고 소문이 났었다.

남편은 간단하게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챙기라고 하고는 그곳으로 차를 몰아 이동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소공녀가 된 것처럼 사고 싶은 거 맘껏 고르라는 특명을 받았고 그 큰 ‘동방마트’를

돌고 돌아 나도 특별한 선물을 하나 얻어 있게 되었다.

그것이 남편이 사준 첫 선물로 기억을 한다.


물론 가끔 손에 달랑달랑 장미꽃 한 송이는 들고 들어왔지만, 그것은 부부 싸움 후이거나 술을 잔뜩 먹고 와서 나를 힘들게 했던 전날 밤의 미안함을 표현하는 방법의 수단이었다.

반지 하나, 티셔츠 하나 받아 본 적 없던 내게 그 시절에 유행했던 묵직한 무스탕을 ‘턱’ 하니 걸쳐 주었을 때는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이 양반 왜 그러지? 미쳤나? 아님 복권이라도 당첨됐나? 혹시 회사 잘렸나?'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맘껏 장난감과 옷을 사주고 와이프에게도 폼 나게 무스탕을 사주고는 아까 전 보여준

실룩한 입꼬리는 이제 더 한껏 올라가서는 내려올 거 같지 않은

남자들 특유의 흐뭇함과 함께 거만함이란~~


예전 같으면 잘난 척하는 그 모습이 얄미웠겠지만 그날의 남편은 천사였다

호박을 마차로 변신시키고 누더기 옷이 아름다운 드레스로 변하게 하는 신데렐라의 마법처럼 우리 가족은

그날은 마법이 이루어진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

일말의 걱정했다가 의심했다가 하던 나의 간사함조차 생각나지 않게 해주는 무스탕이 주는 그 묵직함은

천사의 날개 같았다. 아니 그 노란 무스탕을 입은 내가 천사 같았다


지금은 유행이 지나 너무 무겁고 더 세련된 스타일의 무스탕도 나오긴 하지만

무스탕 자체가 트렌드에 맞지 않는 시대가 왔다.

더 따뜻하고 훨씬 가벼운 소재의 외투가 나오다 보니 그렇게 고맙고 좋았던 외투는 뒷방 늙은이처럼 장롱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삿짐을 싸면서 장롱아래에 보관해 두었던 노란 무스탕이 나도 있다는 듯 빼꼼히 나타났다.

그래도 가끔씩 이 노란색이 얼핏 보이면 다시 한번 옷걸이를 밀쳐놓고 생각에 잠겼었다.

그 옛날에는 상갓집에 가서는 술, 담배를 하고 고스톱을 치며 밤을 새우는 일이 허다했었다.

그는 그날 난생처럼 고액을 돈을 따게 되고는 두려우면서도 그 일을 차마 자랑도 못하고 들어와서는

밀려 둔 숙제처럼 아이들 옷 한 벌을 사주고는 그 먼 외도란 섬으로 도망 아닌 휴가를 가게 된 것이었다

늘 돈에 쪼들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하나 해 보지 못했던 우리에게는 일생일대의 사치였었다.

그리고는 언젠가 나도 저렇게 돈을 잃겠구나 하고 노름에 손을 뗐다고 한다.

물론 그의 말이니 확인할 길을 없지만!




노란 무스탕을 보며 그렇게 그때의 풍성했던 추억과 웃음이 자아내게 하는 기억들이 떠 오르면서

세월의 무게만큼 너도 그때보다 한 움큼 더 무거워졌구나, 하는 측은함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나의 기억 속에서 슈퍼히어로처럼 짠! 하고 나타난 것처럼 반갑기도 했었다

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가 처음으로 사 준 선물이라 수없이 갈등했었는데..


다시 이 옷을 발견하고는 집안 물건의 4분의 3을 버리고도 차마 버리지를 못해 이삿짐 보관소로 보냈다.

세월에 눌려 쓸모없어졌던 물건이라 생각했는데 나와 만나던 그날부터 계속 살아갈 운명인가 보다!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음악이 흐르면 누군가가 떠오르거나 어느 동네를 가거나 어느 음식을 먹으면 떠오르는 사람들

우리의 기억은 그렇게 무언가와 연결이 되어 추억여행을 하게 한다.

가능한 좋은 기억들이 연결되었으면 좋겠다

노란 무스탕은 내게 가족들과의 즐거운 기억과 그의 얼굴표정이 생각나게 한다

웃는 듯. 두려운 듯, 자랑하듯, 신기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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