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과 이별하기
나란 사람은 일반적으로 글을 사랑하고 맛깔나게 표현하는 작가들과는 비교하기도 죄송한 다른 면이 참 많다
보통 독서가 취미인 그들은 다양한 책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자기의 역량을 강화한다.
글을 통해 자신의 숨겨진 감성을 알아 가기도 하고 언어적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도 하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자신의 글을 사랑하면서 글 매무새를 다듬어 가고 옷을 입혀 스토리를 풀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내면에 있는 자신의 가치를 찾아내고 생각하는 바를 이루어 가는 사람들은 참 대단한 능력자란 생각이 든다.
독서를 하는 멋진 습관을 들이려고 했지만 노력해도 체질인지 쉽지 않아 포기 중이다
그러니 더더욱 써 내려가야 하는 문자의 집합은 풀코스를 앞둔 마라토너의 입문기 같아 두렵고 버거운 심정이다.
과거, 억지로 숙제의 부담을 안고 썼던 일기를 다시 보면 그냥 하루의 일정표 같았다.
글은 설명문 같고 스토리는커녕 재미도 없는 백과사전 같았다. 나는 그렇게 글은 사실을 그대로 써야 하는 줄 알았다. 연애편지 같은 것도 한두 번 써보고는 성질에 맞지 않아 끝내기로 했었다.
그런 내가 이제는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앉아 끄적이고 있다
내게 목적 같고 목표 같은 사명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기억을 기록하기 위해서 하나하나의 추억을 모아 써 내려가고 있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 왔다가 한순간 소멸될 사람들의 잊힐 개인적인 역사가 안타까워서
나라도 기억하기 위해 추억을 기록하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지 같은 우리가 세상을 가더라도 이런 사람이 있었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나 외에도 최소한 누군가가 있어 기억될 이름 석 자가 있었다고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런 내가 이렇게 횡설수설 떠들어 대는 머릿속의 시끄러운 수다를 기억하여 자판의 위치를 생각하고 두드려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위인이나 업적을 남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이상 우리를 기억하는 일은 최대 몇십 년에 불과하다.
평범한 우리들은 어제도 소멸했고 내일도 아주 잠깐은 머물다가 지우개처럼 지워질 것이다.
고단한 삶을 살았던 우리 어머니나 전쟁같이 거친 삶을 사신 우리 아버지들
나름 최선인 듯 살았던 삶이 그 시대의 동년배들이 살고 지는 그 잣대대로 청춘이나 자신의 한정된 삶이 어떻게 지고 갈지는 말하지 못하고 가 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각각의 꽃잎이 어떻게 피었다가 어디로 가는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역사적 인물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는가도 감사하지만 나는 내게 와서 숨 쉬고 이야기하고 살다가 가는 그들의 삶도 미치도록 소중하고 고맙다.
내 나이 15살에 하룻밤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응급실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19살에는 한 집에 살던 형부가 가슴을 아프게 하고 생을 마감하셨다.
결혼을 하고 함께 살면서 모셨던 시어머님이 가시던 그날도 25살의 어린 내가 해야 했었다.
그 외 여러 친구들의 마지막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감당할 수 없었던 건 중학생 시절에 만나 결혼에 골인하여
평생의 친구가 되어 줄 것 같은 남편과의 이별이었다.
지금 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의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다.
지금의 나는 내가 감당해야 하는 죽음이라는 이별이 두렵고 무섭다.
죽음을 대면한다는 무서움보다 그때는 혼자 죽음을 맞아 보내 드리기엔 너무 어렸다
치유되지 않았음에도 괜찮다. .혹은 버티기를 하고.있다는 생각에 휘청거리는 날이 많았다
이별의 과정이 길다는 것을 알기에 차라리 부고소식을 듣는것으로 슬픔을 한번 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모시고 있는 어머니가 언젠가 가실 길을 볼 사람이 나인데.. 미안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죽음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가족에게 부탁했다
가족들과 의논해서 친정어머니를 언니가 모시기로 결정하였다.
몇번의 이별은 그때가 아직 멀었음에도 겁을 주고 있다
때로는 간사하게 이별이 방어준비없이 훅치고 들어온다
그래서 가는 그들을 준비 없이 보내는 이별과정은 함께 한 시간들과 기억들로 오랜시간 아프다
보내는것도 아픈데. 잊혀질까봐 더 두려웠다
사라지는 이름을
그림으로는 기억할 능력은 안되고 방법이라고는 글을 쓰는 것 밖에는 없었다.
누구나 사랑하는 부모님을, 이웃을, 친구들 보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 중 누군가는 어쩌면 기억해 주는 우리가 마지막 기억의 소유자 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보내고 남겨진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별에 이별을 하고 스스로 눈물을 닦듯이 나도 스스로 치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