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남긴 숲길

이별과 이별하기

by 오디ssey

이 길을 마지막으로 걸은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예전에는 한 달에 한 번은 걸을 정도로 자주 왔던 곳인데 오랜만의 방문이다

이 길의 시작은 도시의 중심지인 아파트가 가득한 단지의 옆구리에서부터이다.

입구가 2년 전의 그때처럼 작은 공터 안에 야트막한 산책길 정도로 여겨질 정도로 소소하다.

설마 이 동네에 이런 좋은 길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길을 다시 걸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아니 사실은 이 길조차 머릿속에 떠 올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이 숲길을 오르고 있다니,, ‘내가 제정신인가’ 하는 헛웃음이 났다.

살다 보니 다시 이 길을 걷는구나.


번화가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시작되는 산행 길은 무슨 둘레길이라 명명하고는 초입부터 나무로 된 오르막 계단을 조금만 올라서면 녹음이 우거지고 단정하게 잘 가꿔진 숲길이 시작된다.

이곳이 비싼 단지여서인지 이 길 역시 초입부터 깨끗하게 빗질되어 있고 곳곳에는 제철에 맞는 예쁜 꽃이 심어져 있다. 자발적으로 피어난 꽃인지, 누군가 정성스레 심어 놓은 것인지 내가 모르는 자잘하거나 큼직한 꽃들도 군데군데 자라고 있다.

길가의 양 갈래로 자라는 꽃들이 들쑥날쑥 불규칙적으로 피어 있어도 숲이 주는 상쾌함과 걷는 동안 주는 시각적인 느낌은 최고였다


내가 먼저 이 길을 찾아 걸어 보고는 너무 좋아서 그를 청해서 항상 같이 걷기 시작했었다.

그도 이 숲길을 걸어보고는 정말 좋아했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 아이를 학교에 보낸 주부들도 이 구간에서는 간간이 보인다. 반들반들하게 다져진 흙바닥을 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구간을 중심적으로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나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이 1구간은 모두의 길이다.

내가 그를 청한 것처럼 그도 지인들과 함께 언젠가 이 길을 걸을 거라고 했다. 거리 접근성도 좋고 1구간에서 4구간까지는 제법 거리도 길어 하루 산행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걷고 싶던 그 길을 2년이 넘어서야 혼자서 다시 걷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만의 길이야”

1코스라고 불리는 고른 길을 걷다 보면 잘 정돈된 길이 왼쪽 내리막길로 끝나면서 잠시 시끄러운 차가 다니는 도로를 지나게 된다. 맞은편의 산을 들어서면 다시 살짝 오르막에 들어서게 된다 ‘이제 부드러운 길은 끝났어, 이쯤부터는 우리 둘의 오붓한 산행길이야’

이제는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2코스의 시작이다.


아파트 주민들이 1구간을 운동 삼아 다니기 때문에 이 구간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다

사람들이 들어서지 않으면서부터 산길은 거친 말괄량이 같아진다. 그와 나는 이 길에서 살짝 숨을 고르면서 상대의 상태도 체크하였다. 우리는 제법 체력이 비슷하고 산행하는 취향도 비슷해 만족도도 닮아 가는 것 같았다.

우거진 길이고 거칠긴 해도 지그재그 좌우로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간간이 보여주는 마을의 모습도 보여 길을 걷는 재미도 주는 이곳!

발바닥에서 오는 흙과 자잘한 돌의 느낌!

칡넝쿨이 감고 도는 나무, 혹은 죽어가는 나무까지도 하늘을 바라보게 하는 키 큰 나무들!

흙바닥에서 자라는 작은 꽃이 용케 사람의 시선을 끌어 몸을 구부려 겸손을 가르치는 땅!

우거진 숲이 주는 기운은 여전히 우리를 다독였고 아직도 뛰는 즐거움이 남은 마라토너 같았다.

무언의 '계속 더 가자' 혹은 '속도 좀 낼까'


우리의 아지트에 도달했을 즈음부터 그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나는 슬퍼지기 시작했다.

흐르는 땀이 이제 쉴 때 임을 알려 주었지만 여기서부터 쉼이 아닌 고통임을 몸이 알고 있다.

이마가 아닌 마음의 눈물을 느끼고 주저했다.

항상 쉬던 곳을 기억하는 고통으로 걸음을 멈추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쉬지 말고 통과할까’


커다란 바위 옆에는 누가 놓았는지 두세 사람이 쉴 수 있는 벤치가 나온다.

벤치는 평범했지만 몸이 푹 앉도록 깊었고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도록 위치도 제법 맘에 드는 곳에 있었다.

항상 이 벤치에서 걸음을 멈춰 숨을 고르고는 묵직한 발에서 오는 상쾌한 기분을 만끽했었다.

그러고는 이쯤 그는 배낭 속에서 내가 선물로 준 일본제 보온 물병을 열어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따른다. 한여름에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메리카노 한 잔,

이것은 나를 위한 그만의 루틴이다. 오직 한 사람만의 카페인 것이다.

내가 충분히 즐기는 동안 그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플라스틱병의 물을 들이켰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내가 다 마시도록 따라주고 또 따라 주었다.

내가 한 잔을 내밀어 주면 그는 그제야 입에 커피를 대었었다.

내가 한 잔, 두 잔을 마시고 정말 맛있다는 표정을 하면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는 그를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잔을 탈탈 털어 아메리카노의 풍성함을 느끼려고 했다.

행복한 맛이였다. 2년전에는!


2년 만에 걷는 이 길과 우리 둘만의 아지트인 이곳에는 여전히 기다려 주는 벤치가 있다.

그때처럼 앉아 보았다.

그때와는 다르게 혼자이다. 그때와 같은 커피를 마셨다. 그때와 다른 맛이다.

시간이 기억하는 고소하고 은은한 커피 향은 남아있지 않고 그도 사라져 버렸다.

내가 선물로 준 그 보온병에 여전히 같은 브랜드의 커피를 가득 담아 갔건만..

엉덩이만 살짝 얹어 앉고는 그가 내게 주듯 같은 병, 같은 컵에 천천히 따랐다.

‘쪼르륵. 쪼르륵’ 눈물소리 같다. ‘주르륵주르륵’

커피는 시커먼 색처럼 달달한 향이 없다. 그때와 같은 브랜드의 커피를 담아 왔음에도 커피는 내 입맛을 배신했다. 뜨겁도록 쓴 커피

세상이 다 나를 배신하는 것 같고 이제는 커피마저 나를 배신하는 것 같아 울음이 나왔다.

‘그래! 벌써 2년이 되었구나’


이 길은 이제 오롯이 기억을 품고 살아야 하는 남은 자의 길이 되었다.

다시 오지 않을 그때를 기억하며 그와 마주 보면서 뜨거운 커피를 식히지도 않고 목으로 넘겼다.

목구멍으로 넘겨지는 행복한 커피 향은 이제 아프게 사라져 버렸다

내 몸 어딘가 상처가 나야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것만 같았다.

이 쉼 바위에서 마시는 이 순간도 잊히지 않겠구나

눈물과 함께 그때를 기억하고 더 이상 나아가야 할지, 함께 했던 그 길을 더 눈물로 가야 할지

한참을 벤치에 앉아 고민해야 했다.


다시는 이 길을 오지 않을 거야

다시는 다시는 커피도 싸 오지 않을 거야

다시는 이 길을~

이 길을 다시 오면 그가 걱정하며 이렇게 말할 것만 같다.

‘너를 마중 가지 못해 미안해’

‘네가 좋아하는 커피를 더 이상 줄 수 없어 미안해’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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