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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슬기 Jul 19. 2021

줌을 하다가 브런치를 열었어

블로그만 수십차례 열고 닫았던 내가 브런치를 연 이유

사진을 보다가

한쪽을 찢었어,

라는 바이브의 노래를 떠올리며 제목을 지었다.

-


지금껏 내가 열었다 닫았다 블로그만 수십 개는 될 것이다. 몇 번은 여러 욕을 하는 배설구로 이용하느라 내가 누군지 모르게 하는 일에 열을 올렸고 한 두 번은 일의 연장 선상에서 열었다 제풀에 지쳐 닫곤 했다. 이것도 저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쓰레기통으로써의 블로그는 시원한 감은 있었으나 내가 누군지를 밝힐 수가 없었고(회사 욕이 많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나를 밝힌 블로그는 정말로 일의 연장 같아서 하기가 싫었다. 혹자는 아무도 안 보는 블로그에 왜 혼자 자의식 과잉이냐고 할 수 있겠으나 그렇게 몇 번은 나를 블로그로 알아보는 사람이 생겨서 정말로 하늘 아래 비밀은 없다는 생각을 하며 안 그래도 비대한 자의식이 더욱 비대해지곤 했다.


이런 나에게는 1년 전 만난 이래 꾸준히 '네 글을 쓰라'고 말하는 언니가 있다. 코시국에 어쩔 수 없이 그와 줌으로 마주했다. 무알콜 맥주와 와인 한 잔에. 입사 8년 차부터 입만 열면 나오는 돌림노래처럼 되어버린 퇴사 타령을 부르는데 언니는 책을 내거나 페미니즘 잡지를 내거나 둘 중에 하나는 해서 '네 글을 쓰라'고 했다. 내가 쓰는 기사가 내 것 같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그가 한 말이었다.


왜 내 기사는 내 것이 아니라고 느껴졌을까. 기자로서의 내가 주로 누군가의 말을 매개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 8년 동안 집요하게 진실을 좇는 특종 기자로는 살지 못했는데, 그러고 보면 내 기사는 취재원들의 말을 모아놓은 집합소 같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오롯이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더해 나도 내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생각(기사는 감정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스스로의 강박이 있었다)도 있었다. 일종의 직업인으로서의 효능감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막상 정말로 그만두려고 했을 때는 온갖 청승이 다 밀려들며 '이별 그 후' 마냥 브아솔의 이별 노래가 다 내 얘기처럼 들렸다.


그러나 내가 드러나지 않는 블로그 글에서조차 나는 자주 엇갈렸다. 내가 싫어하면서도 좋아하는 직업적 정체성을 내세우는 일이 매번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러나 저러나 솔직하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욕하는 블로그에는 그의 면전에 대놓고는 하지 못할 얘기들이, 내 이름을 밝힌 블로그에는 애써 밝은 척을 했으니까. 


그날의 줌말고도 지난 한 주간 나는 여러 친구들과 긴긴 시간 통화를 했다. 또 다른 미디어 산업에 종사하는 한 친구와도 나눈 얘기의 주요한 테마도 '왜 우리는 우리 일을 싫어할까' 였다. 우리가 하는 일 자체가 우리 직업인데 그게 내 것이 아니라고 자꾸 도망쳤구나. '내가 하는 일 = 나' 라는 것을 자주 잊었구나. '내가 하는 일이 나'라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에 와서도 이게 영영 내 일이 아니라고 느껴진다면, 그 때는 정말 그만둬도 되겠구나. 아멘.


그 이어지던 통화 이후에 나는 브런치를 만들었다. 나 자신과 대면하기 위해서. 일 바깥으로도 책임지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일 얘기든 아니든 쓰고 싶은 것은 다 쓸 참이고, 솔직하거나 말거나 그런 자각조차 없이 써 볼 생각이다. 


그 날의 줌과 깨달음의 순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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