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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서희 Oct 10. 2024

붉은어깨도요의 일기

붉은어깨도요의 일기


사진 설남아빠

글 서서희


나는 붉은어깨도요야. 호주에서 시베리아까지 16,000km를 왕복하면서 살고 있지. 시베리아에서 번식하고 호주에서 월동하는데 가는 길에 잠깐 쉬어가는 곳이 대한민국 군산 유부도야. 날아가는 중간에 먹이를 먹고 쉬어야지 안 그러면 기운이 빠져 바다에 떨어질 수도 있거든.

어제는 황당한 일이 있었어. 추워지기 전에 좀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는 중이었지. 체력을 보충해야 고향까지 가니까 힘내려고 유부도에 내려앉았어. 해안에서 먹이를 찾는데 뭔가가 발에 걸리지 뭐야. 얼른 발을 뺐는데 내 발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 놈이 있어 보니 조개인 거야. 이 놈이 내 발을 지 먹이인 줄 아는지 물고 놔주질 않네. 발을 빼려고 여러 번 발길질을 했는데 워낙에 끈질겨서 말이야. 그래서 머리를 좀 썼지. 놈은 물에서 사는 놈이니까 하늘로 날면 내 발을 놔줄까 싶어서 날아올랐는데 조개가 그대로 딸려오는 거야.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한참을 하늘에서 애쓰다 다시 갯벌로 돌아오고 말았어. 

언젠가 유부도에서는 이렇게 조개를 달고 애먹은 친구가 지나가던 새호리기의 먹이가 되었다는데… 이러다가 나도 무서운 놈들을 만날까 겁나. 누가 나 좀 도와주세요. 119 좀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 얘야, 썰물이 들어올 때까지 갯벌 바위 뒤에 숨어 있으렴. 바닷물이 들어오면 조개가 살았다고 입을 벌릴 거야. 그때 재빨리 날아오르렴. 시간을 잘 맞추지 못하면 네 목숨이 위험하니까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도요야, 잘 이겨내고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길 기도할게. 파이팅!!!


조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붉은어깨도요(20241009 유부도)
조개에게 발을 물려 쩔쩔매는 도요를 새호리기가 잡아간다(20220913 유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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