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자리

by 송승호


우리는 살아가면서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야 한다는 부담 속에 산다.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잠시 쉬어가면 누군가에게 금방 따라 잡힐 것만 같다. 그래서 지쳐 있어도 괜찮은 척 걷고, 마음이 무너져도 ‘이 정도는 버틸 만하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하루를 밀어붙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힘은 ‘그냥 계속 달리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제때 멈추고 쉬어갈 수 있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쉼은 단순히 몸을 눕히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 다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내가 걸어가는 길이 정말 나다운 길인지, 더 가고 싶은 방향이 맞는지 스스로에게 조용히 되묻는 순간이 바로 쉼 속에서 일어난다.

빠르게 지나가는 하루 속에서는 마음의 작은 신호들을 놓치기가 쉽다. ‘힘들다’, ‘지금은 잠시 쉬고 싶다’, ‘너무 오래 버텼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 이런 목소리들은 대부분 아주 작고 낮게 속삭인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는 잘 들리지 않지만, 잠시 멈춰 앉아 있으면 그 작은 속삭임들이 비로소 말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너는 잘하고 있어”, “지금 속도로도 충분해”, “조금 느려져도 돼”, “너는 괜찮은 사람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비로소 마음 한가운데가 조용해지고, 흩어져 있던 감정들이 천천히 자리를 찾는다.

삶을 천천히 되돌아보는 힘은 이 멈춤 속에서 생겨난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빠르다’고 말하지만, 사실 시간이 빠른 게 아니라 우리가 너무 빠르게 스스로를 몰아붙일 뿐이다. 하루의 뒤쪽을 천천히 되짚어보면, 내가 지나온 계절과 그 안에서 견뎌 온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동안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들과 마주하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잃어왔는지도 차분히 보인다. 쉼 없이 달릴 때 보이지 않던 길이 잠시 멈추면 선명해지는 것처럼, 삶도 멈춤 속에서 비로소 방향이 드러난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기대에 응답하느라 정작 나에게 필요한 온기를 소홀히 한다. 하지만 마음이 쉴 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도망가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 속에서 내가 흔들리지 않게 서기 위해 필요한 힘을 길러내는 과정이다. 하루 중 단 10분이라도 마음이 진짜로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두면, 사는 게 조금 덜 복잡해지고, 사람들 속에서도 덜 지치고, 무언가 상처받아도 금방 중심을 되찾게 된다. 그 작은 평온이 내일을 버티게 하고, 다시 걸어갈 용기를 만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속에 조용히 한 자리를 비워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고, 그저 숨만 쉬어도 괜찮은 자리. 그 자리가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자리가 나를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자리를 가진다는 건, 결국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힘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나답게 걸어가 보려 한다. 그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는 순간들이 나의 다음 길을 밝히는 빛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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