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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냥 Apr 18. 2016

당신에게 보내는 안부 #03

떼오띠우아깐, 신이 된 사람들의 도시. 


“모든 인간은 종교적이다.”     


언젠가 제법 흥미롭게 들었던 교양 수업 교수님은 저 명제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 강의 초반 한 달을 할애하셨다. 하나님을 믿든, 부처님을 믿든, 알라를 믿든, 길거리 돌멩이를 믿든 혹은 그 어떤 것도 믿지 않든 간에 “우리 모두는 종교적”이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중간고사 시험지에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이와 같은 근원과 태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한, 우리 인간은 진리와 근원, 성스러움을 추구하며 따라서 종교적인 존재들이다.’라는 요지로 ‘성스러움’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여러 차례 언급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나는 내 스스로를 ‘성스러움을 쫓는 종교적인 인간’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스무 해 남짓한 내 평생은 그 모든 종류의 종교적 신실함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이렇게 단언한다면, 당신은 아마 물을 것이다. 동네 교회에 달콤한 아침잠을 헌납했던 열네 살의 매주 일요일은 무엇이었느냐고. 어릴 적 속내를 털어놓는다면 대답이 될까. 중등부 예배의 합창 반주를 맡아서 일요일 오전마다 두드렸던 그랜드 피아노 소리는 참 근사했다. 간단히, 잿밥과 콩고물에 눈이 팔렸던 것이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그 잿밥에 관심이 많다. 한국에 있을 때, 가끔 짧은 여행을 훌쩍 떠날 때면 습관처럼 근처에 있는 절을 찾아갔다. 외갓집 모두는 불교를 믿었고 그곳에서 매주 주말을 보냈던 나는 공기마저 고이는 것 같은 절의 고요함이 편안하다. 할머니 동네 뒷산에 있는 작은 절에서 사촌 동생들과 뛰놀았던 기억 같은 게 꽤나 진하게 남아 있다. 멕시코에 온 뒤로 이따금 할 일이 없거나, 할 일이 있어도 하고 싶지 않은 주말이면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성당에 우두커니 앉아서 성당 천장부터 벽면을 빼곡히 채운 벽화나 부산스레 오고가는 관광객, 조용히 기도를 읊조리는 신자들을 바라보곤 한다. 내가 기도를 하거나 절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시금치를 뜯어 먹는 호랑이만큼이나 어색하고 이질적인 조합으로만 느껴지는 주제에 다른 사람에게서 보이는 그 ‘종교적 신실함’은 왜 이다지도 있어 보이는지. 우스운 일이다. 당신은 언젠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참 많이도 부러워한다고 했었다. 이것도 결국 그 연장선에 놓인 걸지도 모른다. 소심한 나는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그 앞에 내 모든 걸 내려놓는다는 것에 머뭇거리기만 할 뿐이다.      


사실 종교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서론이 길어져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오늘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게 아니었는데. 당신, 혹시 들어보았는지.      


떼오띠우아깐 Teotihuacán.     

생소한 발음에 가기 이틀 전까지도 좀처럼 혀에 익지 않았던 이름.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약 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거대한 피라미드.      


면적 약 21만 제곱킬로미터. 

한반도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존재하던 시기에 10만 명에서 20만 명이 살았을 거라 추정되는 멕시코 중부 고원에 자리 잡은 대도시, 였다고 한다. 

어디서 온 사람들이 건설한 건지, 어떻게 건설했는지, 어떤 문화를 가졌는지, 왜 멸망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궁금증만 유발하는 메소 아메리카의 중심지였던 대도시, 였다고도 한다.     


신들의 도시, 혹은 신이 된 인간들의 도시.     

떼오띠우아깐 Teotihuacán.     


DF(Distrito Fedral: 멕시코 사람들이 멕시코시티를 부르는 호칭. 대부분 멕시코시티보다는 ‘데페’라고 부른다.)에서 한 시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떼오띠우아깐. 입구에 들어서자 시야가 확 트인다. 낮게 깔린 잔디. 그 사이 이리저리 흩어진 돌무더기. 햇빛을 받아 장엄하게 버티고 서 있는 피라미드. 그리고 그 피라미드를 열심히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 조그만 점들이 연신 오르락내리락 움직였다. 멀찍이서 바라 본 그 사람들은 마치 개미떼 같았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피라미드라는 ‘태양의 피라미드’ 앞에 서자 나는 비로소 나 역시 “종교적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초월적이고 완전한 성스러움을 바라는 종교적 인간.

 

압도적인 크기로 굽어 살피는 것 같은 존재감을 내뿜는 거대한 건축물 구석구석, 하나하나마다 새겨진 신과 관련한 상징들. 오로지 절대자라는 한 존재만을 위한 거대한 건축물, 그리고 역시 집요하리만치 그만을 위해 조그마한 것 하나도 소홀하지 않고 새겨진 부조들 앞에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종교적인 경건함 혹은 숙연함을 느꼈다. 그 때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돌을 쌓아 올리고 어떤 소원을 바라며 조각을 새겼을까. 그 바람, 그 소원, 그 열망들 단 하나도 남지 않은 채 한 때 메소 아메리카의 중심지였던 대도시는 A.D 700년 경 별안간 사라졌다. 오늘날 학자들은 화재의 흔적이 남아있으나 전쟁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지배 세력의 내분이지 않을까 짐작한다고 한다.     


그 위에 존재했던 모든 생과 그들의 자취조차 전부 스러지고 그 터만 휑하니 남은 그곳에서 그제야 우리가 신을 바라고 그를 위한 제단을 짓고 신전을 쌓고 기도를 올렸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주를 둥둥 떠다니는 먼지처럼 느껴지는 나의 하잘 것 없음을 견뎌내기 위해. 언젠가 끝이 나고 잊혀지는 지금 이 모든 순간들을 위해서. 내가 뒤늦게나마 당신에게 이렇게 전하는 안부도, 어젯밤을 하얗게 새워야 했던 고민도, 이런 나를 아는 당신도, 당신을 아는 나도, 전부 백 년도 채 되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저 피라미드는 평생 그 자리에 서서 그런 백 년이 흘러가는 것을 열 바퀴고 열다섯 바퀴고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몇 바퀴는 더 거뜬히, 굳건히, 또다시.          

       

문득 생각난 이야기가 있다. 당신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46억 년 전쯤에 탄생한 지구의 일대기를 하루에 비유한 이야기.      


지구가 탄생한 시점을 오전 12시로 잡는다면, 새벽 4시에 바다에서 최초의 생물체가 등장하고, 밤 9시 59분이 되어서야 뭍에 식물이 등장하고, 10시 쯤 육상 동물이 나타나고. 공룡은 한 오후 11시쯤. 최초의 인류는 하루가 끝나간다고 말해도 무방할 때인 오후 11시 58분 43초가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인류 전체의 역사라고 해도 하루에 비교한다면 약 1분 17초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고작 1분 17초. 그렇게 고생하며 달달 외웠던 세계사 속 사건들은 계란 하나 삶을 시간도 못되는 짧디 짧은 시간의 작은 조각이었다. 그리고 내가 살아 숨 쉬는 지금은 그 1분 17초에서도 아주 아주 작은 극히 일부분이란 걸 생각하면 굉장히 아득하다. 절대자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없는 나는 이 아득함을 당신과 함께 하는 순간을 고갱이 삼아 버텨나가야겠구나 싶었다. 내가 당신에게 좀 더 열심히 내 안부를 전하고, 당신의 안부를 기원하고, 우리의 행복을 바라고, 설령 약속했던 시간에 우리가 만나지 못하더라도 노여워하기 보단 그 기다림마저 두근거리며 보낼 수 있게끔. 그렇게 우리 모두 안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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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냥, 피라미드만 초원에 덩그라니 있는 건데 그게 막상 직접 보니까 엄청 감동이더라구요?

이것저것 떠올리면서,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결론으로 흘러갔었는데 막상 글은 또 미묘하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버려서. 어쩐지 청소년 소설 같은 느낌의 결론이라. 허허. 음, 원래는 떼오띠우아깐이랑 메소아메리카에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었는데. 그건 좀 더디더라도 차근차근 풀어나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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