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이

by 한상숙


1974년의 이어진 기록

교무실에서는 직원조회가 끝나자 모두들 웅성거렸다.

육성회비 미납자를 반별로 그래프로 표시해서 붙여놓았는데 우리 반이 제일 많았다. 무슨 일에나 지기 싫어하는 내 성정에 이건 노력으로 될 일도 아닌데 좀 황당한 기분이다.

첫째 시간이 시작되기 전, 나는 육성회비 징수부를 들고 석 달 이상 미납인 아동을 하나하나 불러 세웠다. 그 달, 그 달에 받아내지 못하고 밀리면 담임인 나 자신도 훨씬 힘이 들 뿐더러 내야 하는 측에서도 한결 힘겨울 거라는 생각으로 금년부터는 미납 없이 제 달에 받아 보자는 심산을 학년 초에 혼자 했었다. 작년에 학년 말까지 애먹었던 경험도 한 몫 한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렇다니 답답하다.

비슷한 표정들이었다. 겁먹고 풀 죽어 뵈는 얼굴들.

그러나 일부러 무표정하게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면서 약속 날짜를 적었다.

오 미숙.

눈퉁이가 부석부석한 그 애를 난 별로 예쁘게 보진 않았다. 좀 어두운 표정에 항시 고개를 약간 숙이고 그 대신 눈을 치뜨고 나를 보는 얼굴이 곱게 느껴지지 않는 애다. 내가 겁났는지 모른다.

“어제 부모님께 알아 오라고 했지? 미숙인 언제 주신다니?”

누구에게나 똑같은 나의 질문이었다.

“.........”

“미숙아, 고개 좀 들어봐. 그리고 얘길 해 봐. 엄마가 언제 주신댔어?”

“몰라유.”

“모르다니? 아니 물어보지도 않았니?”

모르긴 해도 그 때의 내 목소린 조금 퉁명스러웠을 게다.

“애기가 아퍼도........”

“뭐라고? 조금 크게 얘길 해 봐.”

“애기가 아파도 병원에도 못 간다고. 엄마가......”

미숙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 앤 그걸 참으려고 몸을 외로 꼬고 입술을 자근자근 물고 있었다.

뜻밖의 이 상황은 또 뭐야? 내가 한 대 맞은 것보다 더 어지럽다.

“알았어. 다들 들어가. 그만.”

나는 아직도 내 앞에 늘어 선 아이들을 모두 제자리로 들여보냈다.

돈! 그리고 아이들과 나.

그렇게 절박하지도 않은데 내가 너무 했을까? 육성회비 징수부만 들어도 돈을 못 낸 아이들 가슴은 순간적으로 오그라들지도 모르는 걸.

“애기가 아파도.....애기가 아파도......”

온통 내 머릿속은 미숙이의 찡그린 얼굴과 그 기어들어가던 목소리로 해서 하루 종일 산란했다. 하루 종일 가슴이 먹먹했다.

뽀얀 얼굴에 하얀 이빨 두 개가 난 내 딸아이의 방글방글한 얼굴이 머릿속을 수없이 스쳐갔다.

미숙이 엄마에게도 그런 아기가 소중하기 짝이 없을 텐데....아기가 아파도 병원에도 못 갔다는데 육성회비 못 내는 것도 무리는 절대로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아프게 했다.

두 시간이 끝난 후 나는 미숙이 자리에 가서 아주 작은 소리로 물어보았다.

“미숙아, 애기가 많이 아프니?”

미숙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나았으면.....’ 나는 속으로 기원했다.

육성회비를 절대로 독촉하지 말아야지.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정말 가난한 후진국이었다.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교)가 의무교육이라면서도 학교마다 육성회비를 걷었다.

아이들은 도시락을 싸 와서 점심을 먹었고 선생님인 우리들도 도시락을 싸왔다.

하기야 내가 어렸을 땐 우리 엄마는 점심을 아예 안 먹는 사람인 줄 알 정도였으니까.

그나마 많이 나아진 건 틀림없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힘들었다.

지금 돌아보니 참으로 천양지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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