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
(1979년의 기록)
가뜩이나 편식이 심한 우리 일 학년 아들 녀석이 젓가락을 들고 상 위를 더듬다간 또 그대로 수저를 놓아버린다.
계란을 씌워서 부친 소시지나 고기를 볶아 주면 아마 조금은 더 먹었을지도 모른다.
“얘 좀 먹도록 해 주지 않고...”
하는 남편의 핀잔에 불쑥 튀어나온다는 나의 대답이
“쥐꼬리 같은 월급으로 매일 어떻게 먹도록 해 줄 때만 바래요?”
별 뜻 없이 나온 말이었는데 그 순간 약간 캥기는 마음이었다.
가뜩이나 그는 동창회 때마다 자꾸만 자신감을 잃게 된다면서 학교 우등생이 사회 열등생이라는 소릴 가끔 하던 판국인데 주책없이 내가 또 바가지를 긁은 꼴이 되었다.
“그래, 아빠가 돈을 좀 더 잘 벌어야겠다.”
그는 웃으며 넌지시
“ 아빠 이제 소 장사 할까보다. 어떠니? 네 생각은.”
느닷없이 이러는 거였다. 농담치고는 참.
그러니까 아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그건 안 돼.”
다급한 소리로 대답했다.
“왜 안 돼? 선생님 월급보다 훨씬 큰돈을 벌 수도 있을 텐데.”
남편이 느물거리며 그렇게 말하니까 그 꼬마 녀석이 글쎄 두 눈을 반짝이면서 정색을 하고 대꾸하고 나섰다.
“아빠, 소 장사해서 진짜 돈을 많이 버는 지는 잘 모르지만, 그건 자기만 위하는 일이잖아. 그런데 아빠는 큰 형들을 잘 가르치니까 훌륭한 사람을 만들고 있지. 그러니까 아빠가 훌륭하지.”
두 주먹을 쥐고 힘주어 말하는 아들 녀석이 그렇게 대견하다 못해 아주 겹도록 감격스러웠다.
“그래, 알았다. 네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렇구나.”
남편은 얼른 그 녀석의 볼에 수염 난 턱을 비벼댔다. 아들은 그 사이로 슬그머니 수저를 다시 찾아 쥐었다.
나는 얼른 부엌으로 나가 한 도막 남겨두었던 소시지를 부지런히 계란에 부쳐가지고 들어왔다. 왠지 가슴 뿌듯이 밀려닥치는 뭔가가 파도처럼 온 저녁을 적셔주어서 우리 식구들은 서로 소중하고 은밀한 미소를 나누었다.
우리 아들 마음속에 크게 자리한 그 긍지가 남편에게도 또 나에게도 한결 소중한 의미로 전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