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살아드립니다(1)

프랑스 나쁜 년

by 쏴재


이렇게 살면 망할 것 같은데 살아보고는 싶어!

저는 바로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살짝 망한 것도 같지만 꽤나 잘살고 있습니다.


외국병에 걸림 (20대 후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장자에 대항합니다. 애정결핍으로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사랑받을 거란 착각에 빠져있었습니다. 관심받기 위한 수단으로 정보수집에 집착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은데 장자가 항상 이기는 것에 분노해 좀 더 공평하고 이상적일 거라 생각한 외국을 항상 선망해왔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영어성적은 참 별로였습니다. 남들만큼 노력한 것 같은데... 수능 결과는 외국어 영역 5등급.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말하기 민망한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실행력은 좋아서 대학교 진학하고 나서도 mp3 플레이어를 이용해 혼자 영어 말하기 듣기를 연마했습니다. 그냥 그게 좋아서 한 거였는데 아직도 이걸 기억하는 친구가 있느걸보니 저는 역시 독특한 놈이었나 봅니다.


대학교 근처 외국인들이 자주 오는 Bar에서 술 마시며 영어를 배웠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결국 내가 원하던 외국인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됩니다. 새로운 문화도 좋았고 이국적인 외모도 사랑스러웠습니다. 낯선 한국생활의 짐을 덜어줄 요량으로 접근했습니다. 지금과 분위기는 조금 다르지만 이태원도 자주 갔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때 해방촌은 좀 무서웠습니다.


21살부터 10여 년 동안 여자 친구가 몇 명 바뀌었지만 그녀들은 모두 서양에서 왔었습니다. 외국인 여자 친구를 트로피 삼아 많이 자랑했었고 주변 사람들도 나를 좀 더 인정해준다는 가짜 자존심에 빠져있었습니다. 스스로도 '한국 여자 친구보다는 서양 여자 친구들과 성격이 더 잘 맞는아'라는 착각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주변에서 “너는 자유분방해서 외국인들이 더 잘 맞아”라는 말에 부추김을 당한 거 같기도 합니다.


다 헛소리였습니다.

한국사람이 저에겐 최고로 잘 맞는다는 걸 깨닫고 한국 여자와 연애하길 더 좋아합니다. 연애에서 서로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이 저에겐 무척 중요합니다. 같은 걸 보고 웃고 즐기기엔 언어 그 이상의 시간과 문화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영어를 쓰고 그 문화에 익숙해진지도 꽤 오래되었는데 한국 여자와 한국 문화를 더 좋아합니다.


영어를 잘하게 되니 뉴욕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교수님 추천으로 인턴을 가게 되었는데 잘만하면 계속해서 정직원으로 채용될 수 도 있었습니다. 20대 중후반 불안과 우울한 시기를 어떻게든 지나 보냈지만 아직 행복에 이르진 않은 상태였습니다. 20대 초반에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어 아주 힘들었었고 이때도 폭풍은 지나가서 최악은 모면했지만 아직 감정을 다루기가 어려웠고 서툴렀습니다.


뉴욕에서 향수병 같은 것도 걸렸습니다. 같이 인턴을 하던 한국 여자 애들은 일도 참 잘하고 잘 지내던데 저 포함 남자애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좀 많이 하고 불안해했던 것 같습니다. 환상적인 도시 뉴욕을 즐기지 못하고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한국에서 짝사랑 비슷한 것을 하다가 왔는데 그녀가 너무 그리웠습니다. 짝사랑이라 더 스스로를 애처롭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평소에 비호감이었던 한국인 후배에게도 한소리를 들었습니다. “선배가 계약기간보다 일찍 한국으로 돌아가면 한국인에 대한 평이 안 좋아지지 않겠어요?” 치욕적이고 엄청 화가 났지만 그 후배에게 한 소리할 구실은 없었습니다.


뉴욕으로 가기 전 서울에는 3명의 룸메이트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재미 교표였는데 그녀는 룸메 친구였습니다. 그녀도 한국말이 서툰 프랑스 혼혈이었고 룸메와 한국어 어학당에서 만난 사이였습니다. 그렇게 룸메를 통하여 서로 다 같이 어울리다 그녀를 알게 되었습니다.


얼굴은 동양적이지만 누가 봐도 외국인이었고 긴 흑발이 허리까지 내려왔습니다. 깡마른 몸에 해비 스모커였습니다. 저도 담배를 폈지만 그녀는 치명적 이게도 말보로 레드를 피웠습니다. 프랑스 특유의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유머를 많이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비관적인 말투나 자기 비하의 말을 자주 해서인지 예술가는 아니었지만 사회에 반항하는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어느 남자에게도 쉽게 정을 주지 않는 행동과 이미지로 주변 친구들에게 얼음 공주로 평가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애정을 주니 홀리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 나에겐 상처가 있어


5살 많은 연상의 그녀의 말이 지금 생각하면 무슨 헛소린가 싶지만 그땐 홀라당 넘어갔습니다.

부서질 것만 같고 사라질 것만 같은 그녀에게서 헤어 나올 수가 가 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녀는 내가 뉴욕으로 떠날 줄 할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나에게 애정을 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그녀를 뒤로하고 외국으로 갔으니 향수병이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그녀와 다시 만날 수는 없더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 애절했습니다.


그렇게 뉴욕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창업을 하게 됩니다.


대신 살아드립니다(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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