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겪은 건축가의 삶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일주일 내내 엘리베이터와 화장실 디자인만 변경하기 일수였고 제 생일날에도 철야를 해야 하는팍팍한 삶이었습니다. 뉴욕에 대한 환상을 나의 장밋빛 미래로 그리고 꽃길로만 봤었는데 현실은 해외 노동자였습니다. 현실이 불만족스러우니 무언가를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의 결론으로 '현재의 방향을 포기하고 다른 걸로 새롭게 시작해보자!'였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전 실행력이 좋았습니다.
평소 한국에 있는 외국인 친구들과 교류가 많아서 그와 관련된 창업을 20대 후반에 하게 됩니다. 미군이나 삼성과 같은 큰 단체들은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인 인력들이 많아서 그들의 생활을 도와주는 현지 에이젼트가 따로 있었지만 다른 외국인들은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 한국 생활에 많은 불편을 느꼈습니다. 그런 요구를 들어주는 회사를 만들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부동산이나 자동차 계약, 병원 통역, 구매 대행, 여행 예약, 잡일 등이 주요 서비스였습니다. 미래 고객이 될만한 외국인들의 수(시장의 크기)는 지금보다 적었지만 한국 정부나 단체에서 외국인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나 이외 공급자)도 제한적이라 제 회사가 가져가야 하는 수요도 그리 크진 않았습니다.
2년간 사업을 유지했지만 벌이는 시원치 않았고 술 먹고 놀다가 이태원에서 사업 정보가 많이 들어있던 노트북도 잃어버린 탓에 사업을 접었습니다. 번아웃이 왔습니다. 밤늦게 걸려오는 불만 전화나 최저 시급도 안 나올만한 잡일들에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도 경험했습니다. 그래도 폐업을 하기 전까지 버텨왔지만 결국 부러졌습니다. 인생이 회의롭게 느껴졌고 목적 없는 삶에 지쳤습니다.
건축 디자인을 포기했으니 다시 하기 싫었고 수중에 돈은 없었고 무엇보다 새롭게 시작할 에너지도 없었습니다.
저의 인생곡선은 이렇게 단순합니다. 예상 가능한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꿈은 크게 그리고 출발을 아주 흥분되고 업된 감정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다 현실에 얻어맞고 좌절. 이런 반복된던 사건들과 흔들리던 나의 감정들을 당시에도 몰랐던 바는 아니지만 30대 초반까지 이걸 문제로 보고 대응할 방법은 생각해보진 않았습니다.
그 시기를 딱히 어떻게 견뎌냈는지 기억이 자세히 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20대 초반 질풍노도의 시기보다는 덜 힘들었습니다. 술 먹고 전 여자 친구에게 전화하는 그런 꼴 사나운 짓도 이때 많이 해봤습니다.
20대 후반이 남자들에겐 참 찔질한 시기인 거 같습니다. 자산이 없고 차도 없고 자신을 작게 만드는 생각을 많이 하는 때입니다. 이때는 연애가 아주 힘듭니다. 취업전선에 내몰려서 20대 초반의 여자 친구와는 공감대가 적어 연애하기가 어렵습니다. 또래의 여자들은 이미 취업해서 안정감 있는 오빠들은 만나러 다른 리그로 떠납니다. 연애를 하고 있더라도 이때쯤 헤어지는 커플들이 많습니다. 웬만큼 자존감이 높지 않고서는 주변의 눈치와 타인의 의견으로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낮아졌거나 행복지수가 낮을 때는 연애를 시작하는 것을 비추합니다. 설사 좋은 사람을 만났더라도 내가 한 결정이 나중에 마음에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가 바닥에서 기어 올라가기 위해 결정한 커리어의 방향은 나중에 바닥에서 올라와 높은 곳에서 보면 상당히 지루하고 야망 없는 결정이 됩니다.
더 이상 수입이 없고 먹고 살길이 막막해 알바를 구하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일하던 건축설계회사에서 알바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게 됩니다. 결국 다시 건축일로 회귀합니다. 운이 좋게도 알바가 아닌 정규직 제안을 받게 되어 작지만 소중한 월급을 받고 다니게 됩니다. 최저 시급보다 그다지 높지 않은 월급을 주는 회사였지만 신입사원들은 취업하기 위해 수십 개의 이력서를 쓰고 수습 인턴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저를 취업시켜준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뉴욕에서 일한 경력을 높게 평가해준 거 같았습니다.
취업난을 격지 않았고 번아웃 후 힘도 빼고 살아서 이때는 평온했습니다. 회사에서 휴가도 넉넉하게 받아 해외로 여행도 자주 다녔습니다.
오래전부터 바다를 참 좋아했습니다. 고향이 포항이라서 어렸을 때부터 아빠를 따라 낚시를 자주 다녔고 여름이면 맑은 동해바다에서 물놀이도 자주 했습니다. 대학교 때는 여자를 꼬실 수작으로 경포대나 해운대로 갔습니다. 서핑을 하러 양양과 인도네시아 발리도 여러 번 갔습니다.
여러 바다 중에서도 필리핀, 태국, 발리 등 남국에 있는 에매랄드 빛 바다를 저는 참 좋아합니다. 남국의 날씨와 거기서 나오는 여유로움 같은 게 너무 매력적이다고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