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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쏴재 Aug 18. 2022

술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영화 <어나더 라운드>

영화의 첫 장면부터 고등학생들의 맥주사랑을 보여준다. 술은 기쁨이고, 젊음의 것이고, 긍정적인 것 인가?

비교하듯 바로 다음 씬으로 지루한 선생들을  보여준다.

영화는 마치 술이 지루하고 힘든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묘약인 것처럼 보여주기도 하고

마약 같은 독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지루한 역사 선생 마틴은 음주 인생을 살고 나서부터는 모든 게 다 잘 풀렸다. 하지만 결국 와이프가 바람이 나서 떠난다. 바람이 나서 헤어진 이유가 술 때문인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술 마시기 전 마틴의 태도가 이유였던 것 같다. 한편 모든 게 잘 풀린 이유가 술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술은 도움을 줄 뿐이지 본질은 마틴이고 마틴이 하는 행동이다. 그래서 혈중 알코올 농도 0% 일 때에도 마틴은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냈고 4명의 교사 모두 학생들에게 좋은 수업을 제공할 수 있는 이유도 그들 본질이 좋은 선생의 자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살한 토미가 진짜 왜 자살했는지 근본적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사건이 있었을 수도, 정신적 지병이 있었을 수도 있다. 단지 술이 기폭제의 역할을 했다 정도로만 추측해볼 수 있다. 그 문제는 무엇이든 술보다 더 깊은데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술이 과연 나쁜 것인가?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과 의문점은 다음과 같다.


1. 술이 사람의 태도를 바꿔준다.

술은 좋다. 나쁘다. 이렇게 2분 법적으로 판단하기 모호하지만 음주로 인한 태도의 변화는 명확하다. 불안을 덜 느끼고 침착하게 만든다. 세상을 바꾸진 못하지만 나의 태도를 바꾼다.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진 않지만 취하고 나면 마치 내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된 것과 같이 느낀다.


2. 의존하게 만든다.

의존하는 게 나쁜 것은 아니다. 아프지 않고 불안하지 않고 싶은 나의 바람은 본능적이다. 한편 착각하는 것은 패착의 원인이다. 결핍과 그 결핍의 원인을 단일한 것이라 짐작하고 술이 그 하나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착각하는 구조가 문제다. 4명의 주인공이 이런 오류를 범한다. 음주 후 4명 모두 인생이 좋아졌다. 그 이유가 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술은 비정상적 의존을 만든다.

자신감 있는 태도를 만들기 위해, 덜 불안하기 위해, 잠을 자기 위해(나의 경우)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다

영화에서 마틴은 자신감을 위해 마신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당면한 결핍이나 바라는 것은 자신감만 있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자신감이 생긴 마틴이 와이프와 관계를 계선하려고 하지만 결과는 원하는 데로 되지 않았다. 만약 과거에도 마틴이 노력해서 자신감을 키웠다고 가정해보더라도 와이프와의 관계가 나빠지지 않았을까? 인생은 복잡한 문제이다.

단순히 덜 불안하기 위해 술을 마시지만 술을 마시지 않거나 혈중 알코올 농도를 더 가파르게 올리지 않으면 불안이 찾아오고 더 취해도 사실 불안이 찾아온다.


3. 술이 기폭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본질의 문제다.

마약의 종류인 LSD를 먹어본 인도의 저명한 수도승이 그 효과를 느끼고는 한마디 했다. "음 강력하군." 그게 다 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 폭음을 했다 하더라도 그 이상의 큰 문제가 발생할 확률은 매우 낮을 것이다. 문제는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 알코올 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본질에 있다.


4. 새옹지마

마틴의 와이프가 떠난 게 마틴에게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상실의 고통이 당장은 슬프고 힘들지만 마침내 나에 대해 알아차리고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닐까?

영화 '메트릭스'처럼 불편한 진실을 알아차리는 것보다 가상현실에서 안락함을 느끼는 게 더 좋은 것은 아닌가?

관념의 세계가 진실되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마틴이 이 추는 '재즈 발레'를 보면서 이런 철학적 고민이, 복잡한 인생이 아름답게 느껴졌고 술이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영화 제목 'another round'는 '한잔 더!' 또는 '2차'라는 의미가 있다. 술집에서 한잔 더 달라고 주문할 때 ' another one please'라고 할 수 있다. 다음 잔은 내가 살 게를 'next round's on me'라고 할 수 있다.  

한편 4명의 주인공이 취하고 나서 만나는 세상의 '새로운 국면(round)'로 번역될 수도 있다. 알코올 중독이라는 극단적인 면만 보여주기보다는 현실에서 느껴지는 술이라는 것을 재조명해주어서 나에게는  '새로운 국면'이라는 제목으로 이해된다.


한동안 잠을 청하기 위해 술을 마셨다. 맥주 1캔이나 위스키 한잔 정도. 좀 더 많이 마실 때도 있었지만 폭음이라고 할 정도 아니었고 매일 마셨다. 매일 마셔야만 하는 불안과 내가 바라는 무언가가 있었다. 잠을 자기 전 담배를 한대 피우는 것도 나의 불면증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술 담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했고 굳게 믿고 있었다.

지만 과학적 실험과 사실에 기반하면 음주와 흡연은 수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수면을 강력하게 방해한다.

음주 후 졸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게 일시적이다. 술을 많이 마신 날 숙면을 취하기는 어렵다.


이런 사실을 알았지만 나는 술에 의존했었다. 중독이라 할만한 것을 경험했다.

세상엔 술 담배 말고도 중독적인 게 참 많다.

미래의 희망보다 당장의 위로가 따듯하게 나를 끌어안는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나를 항상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고 나의 집착의 고리를 끊을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의 본질이 뭔지 엿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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