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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쏴재 Aug 04. 2022

사람들을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인 신뢰도 통계 해설

과거 수십 년 동안 범죄율은 크게 감소하였다. 하지만 이것으로 사회가 더 믿을 만 해졌다고 짐 착할 수는 없다. 검거 기술의 발전으로 낮은 범죄율을 달성한 것이다(CCTV가 큰 역할을 했다). 기술발전이 안전한 사회를 이루는데 큰 도움을 주었지만 삶의 질적 향상에 도움을 주는, 또는 타인을 향한 범죄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는 타인에 대한 신뢰도까지는 높여주지 못했다. 또한 법을 더 무섭게, 처벌을 더 강하게 하는 게 법을 잘 지키게 하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이것이 사회에게 또는 우리에게 최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SNS가 대중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타인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졌다(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문화는 신뢰도를 감소시킨다). 온라인을 통하여 먼 거리의 상대방과 쉽게 연락할 수 있게 되었지만 관계가 더 친밀해지지는 못했다.


아래 통계조사는 타인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대인신뢰도는 자신과 친밀한 사람들이 아닌 일반 사람들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로 측정한다. 제한된 소수의 사람들만 신뢰하고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으면 사회적 유대와 결속의 범위가 좁아질 뿐 아니라 서로 불신하는 집단들끼리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잘 모르는 사람들도 신뢰할 수 있을 때 사회적 자본이 증대하며 사회적 유대 또한 돈독해질 수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에 대한 신뢰 정도를 보여주는 대인신뢰도는 2013년 72.2%에서 감소 추세이긴 하였으나 65% 내외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대인신뢰도는 50.6%까지 감소하였으며, 2021년에는 어느 정도 회복하여 59.3%로 나타났다

https://www.index.go.kr/unify/idx-info.do?idxCd=4271


통계 해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인신뢰도가 부족하면 집단끼리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수년 전부터 세대 간 갈등이나 혐오가 문제가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낮은 대인신뢰도에 따른 사회적 포용성 감소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코로나 이전에 이미 유럽 국가에서는 극우정당이 득세를 했고 미국 대통령으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우리 사회의 대인신뢰도가 낮다고 짐작되는 현상들은 온라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짜 뉴스 그리고 노이즈 마케팅에 대하여 대중들도 이제 어느 정도 학습이 되어 편파적인 언행과 판단을 조심한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우리 개개인들은 편협하다. 대중매체들의 문제점은 잘 알고 있지만 이것을 그대로 따라서 활용하는 개인들을 보면 부정 편향적 성향은 우리 인간의 본능처럼 보인다.  

아파트에서 얌체 행동을 하는 개인을 경찰이나 관리사무소에 신고하기보다 단톡방이나 커뮤니티에 올리겠을 볼 수 있다. 효과적인 방법처럼 보이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효과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타인의 매너 없는 행동 또는 불법 행위를 목격했을 때 우리는 의사표시를 오프라인 현실세계에서 하는 것을 꺼린다. 현장에서 직접 말하는 방법보다 온라인에서 터트려 버리는 것을 선호한다. 타인은 믿을 수 없는 인간. 즉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혐오스럽기도 한 괴물이 되어버린다.

사실 타인을 상상 속 괴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관념이다. 낮게 떨어져 버린 대인 신뢰가 문제이다. 불법행위 또는 비매너 행위를 저지른 타인과 공격적이지 않는 대화를 해보면 그들이 괴물이 아닌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한편 가까운 타인인 친구, 애인, 가족에게는 높은 신뢰도를 부여한다. 그들이 덜 친밀한 타인보다 더 진실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 이유로 2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이미 그들을 여러 번 여러 가지 상황으로 경험했다. 그들이 감정을 진정성 있게 교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미 나의 예상 범주 안에 들어와 있다. 돌발상황으로 인해 내가 당황하지 않는다. 둘째 우리는 친근한 것을 잘 아는 것으로 착각한다. 사실 착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해당 사건에 관련된 유효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을 때 우리는 잘 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주체의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그 정보의 효용성이 매우 달라진다. 신뢰는 감정에 기반한다. 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긍정적인 감정이 수반된 정보가 나에게 더 효용적인 정보다.

 

신뢰하기 위해서는 교류하는 게 필요하고 교류하기 위해서는 상호 신뢰가 필요하다. 자가당착이고 모순이기 때문에 난제이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는 게 해결의 핵심이다. 온라인은 좋은 무대가 아니다. 

상호 협력해야 최소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죄수의 딜레마'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팃포탯'이 사용된다.(https://namu.wiki/w/%ED%8C%83%ED%8F%AC%ED%83%AF) 경제성을 따진다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정답일 수 있으나 핵심은 관용이다.


위 통계자료에 따르면 과거보다 현재가 타인을 믿기 더 힘들어진 세상인 것 같다. 반면 고령자일수록 타인을 더 신뢰한다. 언 듯 생각해보기엔 사회의 경험이 많을수록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낮을 것 같은데 예상과 다른 결과이다. 두 가지를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고령자들이 살았던 이전이 더 신뢰할만한 사회였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타인을 신뢰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성장하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혜와 행복의 비밀은 나 스스로와 타인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관용에 있지 않을까 유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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