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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쏴재 Aug 28. 2023

단편소설 민물장어

(4)

여명이 밝아오듯 눈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움직이자니 허리에 나무를 댄 듯 몸을 마음대로 놀릴 수가 없었다. 몇달동안 먹은 것이 없어 배가 쪼그라들다 보니 물을 비집고 앞으로 갈 힘이 없었다. 추위를 잘 타지 않지만 물은 겨우 얼지 않을 정도로 차갑게 흘렀다.

 

어찌된 노릇인지 집 주변을 돌아 저 멀리 모래 바닥을 헤집어봐도 먹을 것을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날이 지나고 나서 온도가 좀 더 높아져 몸을 움직이는 것은 수월해졌지만 갈비뼈와 배때지가 달라붙는듯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집게가 달린 녀석, 미꾸리 같은 녀석, 물고기 새끼 같은 녀석들 코뺴기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그 세상에부터 쳐들어와 날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무서운 놈들과 나보다 더 큰 물고기 놈들이었다. 몇 달을 굶었더니 미처서 돌아버린 녀석들도 생겼다. 엊그저께까지 농담도 주고받던 한놈이 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나도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아가리로 이것저것 들춰보고 물어뜯게 되니 그 녀석이 왜 날 물었는지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차라리 세상이 얼어붙었을 때 다 같이 죽어버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나보다 큰 녀석들은 어떻게든 날 잡아먹으러 달려들었고 나 역시 나보다 작은놈들은 가차 없이 먹어치웠다. 나보다 큰 놈들이 더 먼저 굶어 죽기 시작했다. 그 시체를 뜯어먹고 난 버텨낼 수 있었다. 그렇게 물살에 흔들리는 풀을 제외하고는 움직이는 것은 거의 모든 것들이 다 사라졌다.


그때 지렁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모래 바닥을 열심히 뒤져야 한 마리 나올까 말까 하는 녀석인데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 몸처럼 비실비실하지도 않고 아주 살이 통통하게 올라서는 흘러나오는 냄새 또한 아주 날 환장하게 만들었다. 먼저 다른 녀석들이 없나 주변을 살폈다. 혹시나 커다란 녀석이 저 뒤에 숨어있다가 날 덮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몸은 이미 다가가고 있었다. 그래서 숨도 쉬지 않고 슬그머니 다가가 꼬리부터 한입 물고는 머리까지 꿀떡 삼켰다(꼬리가 머리였는지도 모른다). 역시나 꿀맛이었고 나는 역시나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실 같은 게 입에 걸리긴 했지만 이정로는 문제 될게 전혀 없었다.

어디 한마리더 없나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피아노 줄이 튕기는 소리가 들리면서 내 몸은 쏘아져 나가게 되었다. 세상이 몇 바뀌 돌더니 난 아가리가 꿰인 체 그 세상을 넘어 저세상으로 당겨지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앞으로 내뺐다.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몸을 뱅뱅 꼬아봤다. 잡히는 것 물 뿐이었고 속수무책으로 끌려갔다(집게발같은게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였다). 그리고 더 이상 저항할 의지조차 잃어버렸다. 짧고도 아쉬운 그동안의 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저승사자 그놈이 당기느라 힘들었는지 낮은 세상까지 끌려온 뒤에 잠시 쉴틈이 생겼다. 그때 젖 먹던 힘(물론 먹어본 기억은 없다)까지 써서 주변 돌팍니 풀이니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아가리가 찢겨나갈 거 같았지만 살고 싶다는 의지와 집작이 더 컸다. 이제 몸뚱이가 좀 컸는데, 더 많이 먹을 수 있는데, 배불리 먹어보지도 못하고 이번생을 마감하기는 싫었다. 그렇게 난 버텨낼 수 있었다.

아가리는 반쯤 찢어지고 몸뚱이도 돌팍에 긁혀 찢어졌지만 난 생각했다. 

'역시 난 운이 억세게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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