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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쏴재 Jun 15. 2022

진화의 방향에서 길을 잃은 호모 사피엔스

다른 것에 집중하는 이유

연인에게 가족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못해?” 관계를 인질 삼아 폭력적인 요구를 하는 나의 숨은 의도는 다음과 같다.

‘내가 어린애처럼 멋대로 굴어도 나의 응석을 받아주세요’

 ‘내가 필요한 건 비판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연인, 친구, 가족, 직장 동료와 대화 후에 찾아오는 쓸쓸함이 있다. 그들은 나와 너무 달라서 나에게 사랑과 애정을 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든다. 이런 생각을 재고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논리적 사고를 시도해봐야 한다.


1. 나는 왜 다름에 집중하는가

2. '우리와 다른 것은 사랑하지 않는다' 참인 명제인가?

3.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는가?


나는 왜 다름에 집중하는가


화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는 다른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고 공감하기가 힘들다. 대답으로 적절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대화가 어렵게 느껴진다.

우린 왜 이렇게나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것에 집중하고 관심을 가지는가?

연인, 친구, 가족, 직장 동료와 말할 때 왜 공통점보다 내가 생각하는 다른 점을 그들과 공유하는 걸까? 과시욕인가? '내가 너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으니 들어라' 이런 의도인 건가?


비판을 잘하거나 사물이나 사람의 다른 면을 보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창의적이고 똑똑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비판적 언어를 쓰는 사람은 타인의 애정을 받기 어렵다. 타인과 두루두루 잘 어울릴 수 있는 행동이나 대화를 하지 않는다.

진화심리학자들이 아마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다른 점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이 생존에 유리하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우리는 다름에 집중한다'.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 사는 사자가 사냥을 잘하기 위해서는 무리 속에 숨어있는 연약한 톰슨 가젤를 잘 찾아야 한다.  톰슨가젤 입장에서는 초원에서 몸을 낮추고 숨어있는 암사자를 눈으로 잘 발견해야 한다. 뛰어난 후각을 이용하여 위험요소를 감지하던, 시각으로 감지하던, 이런 행동은 다름을 구분하고 변화에 집중하는 우리의 행동과 대화 비슷하다. 다른 것에 집중하면 생존애 유리할지는 몰라도 잘못하면 타인의 애정과 관심을 받기 힘들어진다. 공동체 사회에 부적합할 수도 있다.

도시 문명 이전 부족 공동체 사회에서는 홀로 사는 것보다 단체의 보호를 받으며 함께 사는 게 생존에 유리했다. 홍수나 가뭄 천재지변을 홀로 극복하고 살아남긴 어렵다. 타 부족과 자신의 부족의 다른 점을 잘 구분할 필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서로에게 친절하겠지만 일부 나에게 적대적일 수 있다.  다른 점을 가진 단체는 나에게 위협적일 수 있다.  

구분하기 능력은 생존의 기술이며 경쟁에 필요한 기술이기도 하다. 족장이 되어 부족을 이끌거나 중요한 의견을 내기 위해선 타인의 의견에 마냥 동의할 수가 없다. 의견을 주장하려면 일단 너와 다른 의견을 내어야 하고 내 의견이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성선택도 경쟁이다. 사회적으로 더 높은 지위를 가져야 이성에게 선택받기 더 유리하다. 경쟁력이 높은 더 높은 지위를 가지 위해 우리는 다름에 집중한다.

본능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우리는 다른 것에 집중하는데 이런 능력이 오히려 공동체 사회에 부적합할 수도 있다니  뭔가 찝찝하다. 다른 면을 보도록 하자


자연선택과 성선택 과정을 통해 인간은 높은 사회성을 가지게 되었다. 현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보다 뇌의 전체 용량은 줄었지만 공감능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은 더 커졌다. 공감 및 사화화 과정에서도 이런 구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니 아직 퇴화가 되지 않은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뇌가 줄었지만 구별하기 능력은 아직 도태되지 않았다.

사냥을 위한 감각 수용능력이나 물리적인 힘과 같은 신체 능력을 퇴화시키고 사회적인 능력을 더 키우는 것이 현 인류의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의 방향이다. 반대로 호모 사피엔스의 경쟁자였던 네안데리탈인의 신체적 능력은 더 좋았지만 멸종의 길을 걸었다.

우리가 똑똑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능력은 전두엽의 이용하는 능력이고 똑똑하다고 분류되는 사람의 뇌의 크기는 일반인의 평균과 다를 바 없지만 그들의 전두엽은 더 발달되었다.

구별하기 능력과 사회화 능력은 서로 관계가 있지만 상호 배타적인 능력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것을 구별하고 비판적인 행동만 하게 된다면 단체에서 도태될 수도 있다. 사회생활에서 남에게 비판적으로 굴면 좋은 결말을 가져오기 힘들다. 인류의 진화의 방향이 아니다. 우리가 똑똑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여러 능력들의 기본 바탕은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이다.


진화는 우리가 타인과 나를 구별하여 비판하는 방향이 아닌 걸 알았으니 우리의 본능적 능력을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사용해보다. 구별하기 능력과 사회화 능력을 같은 함께 이용해보자.  

나와 다른 타인을 칭찬해보자.  

듣는 입장에서도 비판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 모두 같은 생각가지고 모두 비슷한 행동을 한다면 한 번에 도태될 수 있다. 새로운 것 다양한 것에 가치를 존중하자.

판단하지 말고 호기심을 가지자


그런데... 애인이 화장실 앞에다 양말을 벗어 놓고 변기 덥게를 아무렇게나 해 놓았다. 아.. 인내심이 필요하다......

난 퇴화가 덜되거나 진화의 방향에서 길을 잃은 호모 사피엔스인가 보다


'우리와 다른 것은 사랑하지 않는다' 참인 명제인가?


위에서 알아본 것처럼 우리는 다름에 집중한다. 그리고 다름에 집중했을 때 타인과 세상을 부정적으로 판단하기 쉽다. 그렇다 위 명제는 대체로 참이다. 자신과 다른 타인과 세상을 만났을 때 본능적으로 회피하거나 비난한다.

하지만 이런 회피나 비난은 다른 것들을 최초로 만났을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흐르면 나의 경계가 확장되어 우리(we)가 된다. 가장 가까운 타인인 가족만 우리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애인, 친구, 동료 등 나의 지인들이 우리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우리의 의견과 다른 타 단체네 타인을 만났을 때 우리는 일단 본능적으로 회피하고 거부한다.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애정과 관심 정도로  말할 수 있다. 사랑받기 위한 방법을 좀 더 확장해 타인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방법 정도로 생각해보자

좋은 방법 중 하나로 타인이 생각하는 우리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다. 타인의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으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즉각적인 승인을 얻기는 어렵다.  

내가 타인에게 공감을 더 많이 해줄수록 타인의 우리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반대로 타인을 판단하고 비판할수록 우리라는 범주에멀어진다.

직장 동료로 지내는 가까운 타인들에게도 이런 범주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분명 그를 가까운 타인이라 여기고 우리라는 범주안에서 동질감을 느꼈다고 생각하는데 타인은 아닌 경우도 있다. 이럴 땐 그 타인의 우리라는 범주는 내가 생각한 우리의  범주보다 좀 더 깐깐한 경우이다. 또는 내가 그에게 큰 공감을 주지 못한 경우일 수도 있다.


타인의 공감을 얻는 것이 사랑받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나의 인생의 의미는 자아실현이고, 아실현을 위해서는 타자가 필요하다.  타인을 도울 수 있을 때 인생의 의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타인이 나를 인정해줄 때 나도 꽤 쓸만한 인간인 것 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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