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탈출
목포로 향하는 길, 차량 선적을 앞두고 꼼꼼히 준비했다. 한 달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짐을 신중하게 꾸렸다. 미뤄왔던 차 정비도 마쳤고, 남쪽의 뜨거운 햇살을 대비해 새 선팅까지 발랐다.
'섬에서는 유류비가 리터당 100원씩이나 비싸다던데... 물가도 만만치 않다던데...'
복잡한 마음에 목포 숙소 도착 전 과일부터 샀다. SUV에 넘치도록 짐을 실어 토마토와 사과는 조수석에 안전벨트까지 채워 소중히 모셨다.
수면을 핑계로 치맥을 선택했다. 하지만 오백 한잔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사장님, 여기 소주 한 병이요!"
"참이슬로 드릴게요"
"아! 잎새주로 주세요"
다음날 새벽 5시, 아직 해가 뜨기 전 선착장 근처 항구의 서늘하고 습한 바람 속에서 러닝을 시작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어르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30분간 스트레칭과 함께 몸을 풀었지만, 습기 때문인지 마음 때문인지 발걸음이 무거웠다.
2년간 근무했던 펀드투자회사 조직생활이 완전히 불만족스럽진 않았지만, 팀을 바꾼 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큰 문제였다. 팀장과 수차례나 심하게 다투었고 하루하루가 매우 힘들어졌다. 견디기 위해 ADHD 약을 먹어보기도 하고, 운동을 더 열심히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여자친구와도 많이 다투었다. 동대문에서 뺨 맞고 서대문 가서 화풀이를 해댄 격이다.
결국 자세를 낮추기로 했다. 어느 정도 상황이 회복된 1년 후에도 팀장과의 관계에는 여전히 서먹함이 남아있었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릇 남탓 하는 것이 문제를 도출하기 편리하지만 그 정확성은 보증되지 않는다. 그도 이성적으로는 잘 알지만 감정적으로 그리고 실제로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데 항상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부동산 PF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이전 직장, 증권사에서의 근무가 만만치 않았다. 때마침 공기업 모태의 대기업 자회사에서 잡 오퍼가 들어왔다. 투자업무와 펀드운용업무로 직무에 큰 변함이 없었고 냉랭해진 시장 상황을 견딜 따뜻한 집처럼 보였다.
처음 몇 개월간은 좋았다. 실적 압박이 있었지만 직책자가 아니라 스트레스는 많지 않았다. 정규직의 장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2년간 대표가 2번이나 바뀌었다. 자신을 채용한 대표는 1년 4개월 만에, 새로 온 대표는 6개월도 버티지 못했다. 계약직 임원들의 수명은 자신의 노력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저성과 직책자들의 인사이동, 법인카드 비용 절감 등 회사는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직원들을 옥죄어 왔다.
건축을 전공한 그는 12~13년 전 뉴욕 건축설계사에서 첫 직장을 다녔다. 마천루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 타임스퀘어 근처에 위치한 회사를 다니기 위한 생활비는 만만치 않았다. 지하철 출근은 서울이나 거기나 불가피한 통근 옵션이였다. 그리고 월급의 절반은 오로지 월세로 지출해야만 했다. 수많은 야근과 고루한 출퇴근이 야망을 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고, 결국 더 나은 급여를 찾아 금융권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이번 제주도로 이직의 본질은 단순했다. 서울 탈출이다. 출퇴근을 위해 지하철에서 2시간 이상 보내고 싶지 않았고, 인서울 신축 아파트를 얻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타인의 목적을 위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그는 제주행 선박에 차를 선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