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무렵의 나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허수아비처럼 가벼웠다. 나를 움직이는 데는 큰 힘이 필요하지 않았고, 따뜻한 봄바람에도 몸은 금세 하늘로 떠올랐다. 매일 새로운 것에 즐거워하며 단단하고 뜨거운 것으로 가득 채워질 언젠가를 갈망했다.
비행기를 타고 가더라도 족히 12시간이 걸리는 곳에서 온 그녀는 밥을 먹는 모습이 마치 아기 병아리 같았다. 작은 입으로 음식을 크게 베어 물지도 못한 채, 콩고기와 두부, 잡채를 조심스레 씹어 삼켰다. 해산물도 고기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한국에서 살아갈지 걱정이었다.
그녀의 모든 행동에는 조심성이 배어 있었다. 혹시라도 주변에 피해를 주거나 질타를 받지 않을까 늘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가여운 모습에 나는 불안했다. 타국에서 상처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어가 서툰 이에게 사람들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우린 무척이나 달랐지만, 서로의 매력에 이끌려 점점 가까워졌다. 그녀가 내 몸의 일부가 된 것 같았지만, 그 일부는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새롭게 자란 일부를 가진 내 몸이 어색했다. 거울 속의 나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나를 싫어하다가 결국 헤어진 후에도, 그녀의 상처를 차마 바라보지 못했다. 혼자서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밥은 먹고 다닐까, 하는 걱정으로 나의 슬픔마저 덮어버렸다. 감히 그녀의 상처에 대해 말하지도 못했다.
내 오만의 껍데기가 깨져나갈 때, 그녀는 작은 몸으로 단단히 견뎌냈다. 내가 여러 번 부서지고 다시 조립될 때도 그녀는 묵묵히 아픔을 견뎌냈다. 그 모습이 나에겐 위로가 되었다. 내가 부서져 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에너지가 있었던 것도 그 위로 덕분이었다.
다시 만난 그녀는 더욱 작아져 있었다. 나는 여전히 새로운 착각으로 두꺼운 껍질을 입고 있었지만, 그녀는 변함없이 작은 입으로 작은 음식을 먹었다. 사과 한 조각과 콩알들이 그녀에게 에너지를 주길 바랐지만, 창백한 입술은 핏기를 잃은 지 오래된 것 같았다. 백자 같던 피부는 사라지고, 빛바랜 그릇 같은 안색으로 나에게 힘껏 웃음을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