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과 모든 것이 기적이다고 보는 것
과학자라고 하면 증명된 사실만 말할 것 같고 기적이란 것에 대해 말할 것 같지 않은 아인슈타인은"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과 모든 것이 기적이다고 보는 것이 있다"라고 했다.
나는 타인의 감정과 나를 분리하기 어려워한다. 어린 시절, 집은 항상 감정이 격렬하게 표현되는 곳이었다. 엄마가 슬퍼 보이면 어떻게든 웃게 만들려 노력했고, 아빠가 피곤해 보이면 최대한 조용히 지내려 했다. 익숙해진 그들에게는 무던한 일들이었지만 나는 타인의 감정을 읽고 그에 반응하는 데 민감해졌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그들의 표정 하나, 말투 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조금 피곤해 보이면 "내가 뭐 잘못했나?"라고 자책하게 되고, 표정이 어두우면 하루 종일 걱정으로 잠 못 이룬다. 전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조금 낮게 들리면 결국 그날 밤 다시 문자를 보내 "혹시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볼 정도다
이런 성향은 분명 어떤 결핍이나 불안에서 시작되었을 텐데, 내 행동은 그것을 채우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는 쪽으로 간다. 행동의 진짜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근거만 찾는다.
학창 시절,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표면적으로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부모님이 내 성적표를 보며 자랑스러워하시는 표정을 보고 싶었다. 어느 날,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느꼈던 그 상실감은 단순히 점수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모님의 사랑과 인정을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이런 패턴은 계속되었다.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었다. 친구들이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잘하니?"라고 물을 때마다 느끼는 그 작은 기쁨은 산소와도 같았다.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은 일어난다. 팀원 중 한 명이 개인적인 문제로 업무 수행이 어려워 보이면,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일까지 맡는다. 상사가 "네 업무량이 너무 많아 보인다"라고 걱정할 때도 "괜찮아요, 제가 할 수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그 결과 종종 번아웃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에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걸 나는 안다.
만약 나의 아이가 큰 아픔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면 나는 양육자로서 튼튼한 서포트 하는 동시에 더 큰 고통에 스스로를 집어넣는다. 나의 고통이 커진다고 아이의 고통이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그런 거리감이나 분리는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다. '나도 정말 너의 고통을 느끼고 있어'가 돼야만 한다. 그리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일이나 기적에 전력투구를 해본다. 그 길 끝에 후회가 남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이 더 커질 것이지만 다른 길을 선택할 수는 없다.
아인슈타인의 말로 다시 돌아가면, 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는 관점에 더 가깝다. 내게 기적 같은 삶은 이런 감정적 열정과 노력과 연결되어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 가족의 얼굴을 보는 것, 친구의 웃음소리를 듣는 것, 낯선 이의 친절한 말 한마디 - 이 모든 것이 내겐 기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 기적을 위해 열정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부조리에 맞서 투쟁하는 인간의 전형을 묘사한 것처럼 나는 이러한 투쟁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아니면 세상은 존재의 의미가 없어지고 사람들의 고통은 더 커지는 것 같다. 인간은 이유 없이 세상에 내던져졌다지만. 나는 그 자유를 강조하고 싶다.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더 격정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모두 강렬하게 표현한다. 그래서인지 나와 반대되는, '조용한 열정과 노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30년 넘게 묵묵히 일하시는 분들이 있다. 화려한 표현이나 감정적인 고조 없이, 매일의 모습이 내게는 놀라운 기적처럼 느껴진다.
나에게 있어 기적은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변화가 아니라, 이런 일상 속의 작은 진심들, 보이지 않는 열정과 노력,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연결고리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기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진정한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음을 매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