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네 브라운 「취약성의 힘」

불안함에 관하여

by 쏴재

도망쳐도 끝나지 않는 불안

20대에 처음 공황장애를 겪은 이후, 불안은 내 삶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서울의 빡빡한 일상에서 벗어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숨막힐 듯한 고통의 빈도는 줄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풍광이 좋은 여기 제주에서도 여전히 회사를 다녀야 했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했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나, 그리고 두 가지 대처법

스트레스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 나는 화를 냈다. "난 너와 달라, 나를 건들지 마, 날 좀 냅둬, 있는 그대로를 봐." 이런 식의 대처는 결국 타인에게 의존하는 방식이었다. 아무리 주변에서 도움을 줘도 내 자세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반대로 "너와 나는 다르지 않아. 우린 공동체야. 하지만 나는 이렇게 다르게 느끼고 있어"라고 접근할 때는 상황이 더 좋게 흘러갔다. 왜 그럴까? 경험과 느낌으로는 알겠는데 내가 주도적이라는 차이점 말고는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혼자일 때는 괜찮은데, 왜?

흥미롭게도 정신건강에 문제가 되는 상황은 대부분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발생했다. 혼자라면, 아니 처음부터 사회를 경험하지 않고 혼자였다면 이렇게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우리는 타인과 주변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존재임을 강조하고 싶다.


감정도 자가면역질환처럼

진화심리학적, 생물학적으로 보면 우리는 타인과 환경에 영향을 받도록 태어났다. 불안, 슬픔, 외로움, 분노 같은 감정들은 생존에 도움이 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이 시스템이 과도하게 작동한다. 마치 자가면역질환처럼 말이다.

자가면역질환은 외부 인자를 위험 요소로 인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불안과 부정적 감정의 원인을 제거하면 될까? 하지만 그 원인들을 들여다보니 삶의 필수적인 요소들이었다.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고, 사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처받고 외로워진다. 원인을 통째로 들어낼 수는 없었다.


브레네 브라운이 찾은 해답: 취약성의 힘

이 지점에서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의 연구가 큰 통찰을 준다. 그녀는 사람들이 감정적 위험, 불확실성, 마주침 등을 피하려 하지만, 취약성이야말로 진정성 있는 삶, 창의성, 진정한 관계 연결을 만드는 필수 요소라고 말한다.

특히 수치심에 대한 그녀의 분석이 인상 깊다. 수치심은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는 내면의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 연인과 이별 후 슬픔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비참하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만들어낸 감정이다. 더 정확히는 타인과 환경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내면의 '슈퍼에고'가 판단한 것이다. 여기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사랑은 반드시 해야하고 외부의 비판과 비난도 당당히 맞서지만 나의 '슈퍼에고'가 판단을 내리는 방향을 나에게 도움을 줄수 있는 방향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수치심을 키우는 것과 줄이는 것

브라운은 비밀, 침묵, 판단이 수치심을 키우는 환경이라고 했다. 반대로 공감과 공유가 수치심을 줄인다. 사회적 기대(성별 역할, 완벽함에 대한 압박 등)가 수치심을 조직하고 심화시킨다.

약함이나 불완전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자기 모습과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이 가능해진다.


결국은 용기의 문제

타인이나 환경 등의 외부요인을 바탕으로 자란 나의 슈퍼에고가 나를 힘들게 하는것이다. 나에겐 나의 슈퍼이고를 부술 용기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핵심은 용기다. 삶을 살아가는 용기, 취약함을 드러내는 용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용기. 그리고 그런 용기 있는 사람들끼리 느끼는 유대감과 공동체 의식이다.


세상이란 거친 무대에 용기있게 당당히 살아나가는 우리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사랑함이 마땅하다. 그 무대에 오르지 못한 관객이 던지는 무 지성적인 비난에 나와 나의 슈퍼에고를 바꿀 필요가 없다


나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을 여러분에게도 말하고 싶다.

불안한 당신이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

1. 내 안의 수치심 인식하기 어떤 상황에서 "나는 못해", "사람들이 날 나쁘게 볼 거야"라는 느낌이 드는지 기록해보자. 패턴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2. 수치심 감정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기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나 이런 상황에서 부끄럽고 두렵다"라고 솔직히 말해보자. 혼자 끙끙대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3. 공감 제공자 되기 누군가 내게 약함이나 실패를 이야기할 때, 판단보다 공감하는 말을 먼저 건네보자. "너도 그런 경험 했어?" 또는 "그렇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같은 말이면 충분하다.

4. 완벽주의에서 벗어나기 높은 기준을 내세우는 대신, 실수해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을 가져보자. 결과보다 과정을 인식하고, 작은 성취라도 스스로 인정해주기.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기억하자.

5. "있는 그대로의 나" 보여주기 항상 기쁘고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기보다는, 불안하거나 부족한 면도 조금씩 드러내보자. 친구에게 "요즘 내 마음이…" 하고 얘기해보거나, 직장에서 도움을 요청해보는 것도 좋은 시작이다.

6. 공감 말하기 연습 상대가 힘들어할 때, 듣고 "나도 우울할 때 이런 느낌이었어" 혹은 "너의 어려움이 느껴져" 등의 공감 피드백을 주어보자. 말이 부담스러우면 글이나 메시지로 먼저 연습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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