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에 대하여

by 쏴재

내 안에는 ‘나’가 있다.

그리고 그 나를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내가 있다.

말을 하다가 문득 “내가 왜 이런 말을 했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웃고 있으면서도 “지금 이 웃음은 진짜일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그 둘은 동시에 존재한다.


어쩌면 인간이 인간이 된 순간은 불을 사용했을 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였는지도 모른다. 그 시작이 언제였는지는 알 수 없다.

아득한 영장류의 시절이었을지,

호모 사피엔스 이후였을지.

분명한 것은, 그 씨앗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몸 어딘가에 조용히 심겨 있었을 것이다. 동물과 식물, 나아가 생물과 무생물을 가르는그 미세한 경계 근처에서.


우리는 세상을 너무 쉽게 나눈다. 나와 너, 안과 밖, 존재와 비존재. 하지만 구체적인 물리학의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봐도 그 모든 경계는 흐릿해진다. 단단해 보이는 것들은 대부분 비어 있고, 텅 비어 있다고 믿었던 공간은 보이지 않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원자의 중심은 허공에 가깝고, 빛조차 입자의 얼굴을 하고 우리 곁을 스친다. 시간은 어디에 있을까.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사이에 시간이라는 물질이 실제로 흐르고 있을까. 아니면 변화 위에 우리가 붙여 놓은 이름일 뿐일까. 그렇다면 내가 ‘나’라고 부르는 이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나를 찾으려 하면 오히려 더 멀어진다. 대신, 아주 사소한 순간에 나는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문을 잡아주며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미소를 건넸을 때, 마음속으로 “이 사람이 조금은 편안해졌으면”하고 바랐을 때.

그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그의 몸무게나 키, 그의 얼굴 생김새는 그가 아니다. 그는 그의 생각 속에, 느낌이 일어나는 그 어딘가에 있다. 그리고 나는 그곳을 향해 반응한다.


자의식은 생존의 흔적이라고들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세상을 예측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점검하다 보니 어느새 생겨난 부산물. 그 모든 일은 분명 뇌 안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의식이 뇌의 어느 한 구석에 정확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뇌 전체의 네트워크가 함께 작동하여 만들어내는 현상이다. 그것은 손에 쥘 수 없는 불꽃 같고, 형태 없는 파도 같고, 잡으려 하면 사라지는 공기 같다. 비어 있는 것 같지만 사라지지 않고, 계속 변하지만 없어지지 않는 것.


어쩌면 우리의 본질은 단단한 무엇이 아니라 열려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너와 나의 경계는 흔들리고, 지금이라는 순간은 붙잡을 수 없으며, 나는 늘 변하면서도 어딘가에서는 계속 같은 나로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세계에서 너와 나를 똑 떨어진 존재로, 지금을 유일한 실체로 너무 쉽게 단정하는 일은 조금은 조심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확신보다 머뭇거림이 정답보다 침묵이 더 진실에 가까울 때도 있으니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화가 났다가 기뻐했다가, 슬펐다가 평온해진다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다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나의 생각 중 어디까지가 정말 '나'의 것일까?

부모님, 친구들, 읽은 책, 본 영화의 영향을 빼고 나면 순수한 '나'는 무엇이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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