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과자

3화

by 쏴재

간병인이 들어와 놓고 간 호두과자에서 달콤한 향기가 흘러나왔지만, 속이 심하게 뒤틀렸다.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무언가가 치받아 올랐다. 이번에도 기억과 감정이 상충하고 있었다. 분명 좋아했던 기억이 남아있는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 향취와 호두의 질감을 상상하면 구토감이 밀려왔다. 다른 견과류나 디저트는 문제없었지만 유독 호두과자에만 몸이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지혜는 호두과자를 멀찍이 밀어내고 창밖을 응시했다. 그때 어디선가 꽃향기가 산들바람에 실려와 메슥거림이 씻은 듯 사라졌다. 봄날 오후의 서정적인 냄새였다. 그 찰나 젊은 여성의 모습이 또다시 희미하게 스쳐 지나갔다. 얼굴은 윤곽만 보였지만 목소리는 또렷이 들렸다.

"엄마." 지혜는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오래된 기억 속의 그 음성은 늙어버린 현재의 자신이 내는 목소리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시간이 경과하자 움직임이 점차 경쾌해졌고, 병실 안을 거니는 것도 한결 수월해졌다. 좀 더 젊어진 자신의 외모 거울에 비쳤다. 어깨의 곡선이 조금 더 단정해졌고, 걸음걸이에서 무거운 묵직함이 덜어져 있었다.

드디어 기억의 큰 부분이 되돌아왔다.


엄마 이미경은 천문대에서 근무하는 연구원이었다. 고향은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오는 해안 마을이었다. 골목 사이사이로 햇살이 스며드는 길모퉁이에서 어린 지혜가 한 할머니에게 공손히 인사를 건네고 지나간다.

작은 주방. 엄마는 머리를 정갈하게 묶고 앞치마를 두른 채 생선을 굽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는 바다가 햇빛에 반짝이며 출렁였고, 라디오에서는 은은한 클래식 선율이 흘러나왔다.

"엄마! 나 수학 경시대회 나가게 되었어!"

"정말이야! 너무 잘됐다. 우리 딸이 제일 자랑스러워."

"그런데 엄마, 생선 냄새가 너무 비려."

"겨울 도루묵이야. 네가 생선 중에 제일 좋아했잖아? 바삭하고 알이 톡톡 터진다고. 그럼 지혜가 좋아하는 호떡 만들까?"

엄마는 자신을 의자 위에 올려주고 함께 반죽을 빚게 해 주었다. 작은 손으로 하는 것이 서툴렀지만 엄마는 아낌없이 칭찬해 주었다.

"우리 지혜 정말 훌륭하네."

엄마의 칭찬을 들으면 온 우주를 가진 것 같았다.

더 오래전 비 내리는 날의 기억도 선명했다. 천둥소리에 깜짝 놀라 엄마 품에 파고들었을 때, 엄마는 자신을 포근히 안아주며 속삭였다.

"괜찮아, 지혜야. 하늘이 즐거워서 소리 지르는 거야."

몸살이 났을 때도 엄마가 곁에 있었다. 엄마의 시원한 손이 이마에 닿으면 한결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엄마가 아픈 거 다 가져갈게."

엄마는 자신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며 다정하게 말했다.

또 다른 추억.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가 간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해 놓고 기다리던 모습. 숙제를 도와주던 부드러운 손길. 열이 날 때 밤새도록 간병해 주던 헌신적인 모습. 모든 것이 온화했다.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볼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슬픈 눈물이 아니었다. 그리움과 사랑이 뒤섞인 따스한 눈물이었다.


엄마도 이곳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만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