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지혜는 점진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갔다. 인간관계라는 끈들이 하나씩 끊어져 나갔고, 그녀는 그것을 방치했다. 차라리 고독이 안전했다. 타인과의 깊은 유대를 피하면, 배신당할 위험도 없다고 자조했다. 그로부터 수년이 흘러간 어느 황혼 녘, 전화벨이 울렸다.
"지혜야... 어머니가..."
"무슨 일이세요?"
"어제... 세상을 떠나셨단다."
지혜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말문이 막혔다.
"갑작스럽게요?"
"암이 전이되어서... 병실에서 혼자... 네게 연락하려고 했지만, 끝내 거부하더구나."
통화를 마친 지혜는 기묘하게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분노도 솟구치지 않았다. 그저 공허함만이 가슴을 메웠다.
장례식장에 갈 명분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홀로 거실에 앉아 연분홍 모자를 꺼내 들고서는 세월의 때가 앉은 그 모자를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뒤늦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눈물의 정체가 애도인지, 참회인지, 아니면 단순한 해방감인지는 분별할 수 없었다.
지혜는 진정한 의미의 고독을 선택했다. 아버지와의 소통도 점차 단절되었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려는 시도도 포기했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갈수록 그녀의 고립은 심화되었다. 거리에서 아이를 품에 안은 여인을 목격해도 쓰라리지 않았다.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소모적이라고 생각했다. 무망감에 가까웠다
"어째서 홀로 지내시나요? 외롭지 않으세요?"
이웃이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지면 지혜는 담담히 대답했다.
"혼자가 편안합니다."
그것은 위선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고독이 편했다. 누군가를 실망시킬 염려도, 누군가에게 실망당할 걱정도 없었다. 기대와 절망이 부재한 평탄한 일상이었다.
세월의 무게가 쌓여 노쇠해졌다. 병원 침상에 홀로 누워있을 때, 그녀는 평생 처음으로 진정한 평온을 맛보았다. 그런 시간을 오랫동안 보냈다
"가족분들께 연락을 드릴까요?" 간병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도..."
"정말로 아무도 없어요."
지혜는 고요히 미소를 띠었다. 신기하게도 두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오랜 세월 어깨를 짓누르던 중압감을 벗어던지는 해방감이었다.
창문 너머 하늘이 유독 청명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천문대에서 바라보던 그런 하늘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사랑이 때로는 상흔이 되고, 그 상흔이 일생을 수반할 수 있다는 진실을.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혜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생애 최초로, 진정으로 평정을 얻었다. 더 이상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누구를 그리워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홀연히 세상과 작별했다. 드디어 안식을 품은 채로.
별이 소멸한 후에도, 그 우주 공간에 자리한 검은 별은 여전히 두 천체를 보이지 않는 인력으로 결속시키고 있었다. 무한한 세월이 경과하여 우주가 팽창하거나 수축하더라도, 태초에 그랬듯이 서로를 향한 근본적인 끌어당김은 불변했다. 마치 투명한 실로 엮어진 두 혼령처럼, 그들 사이의 간격은 변동할 수 있었지만 그 연결의 끈은 우주가 존재하는 한 영구히 지속될 운명이었다.
어둠의 심연에서도. 적막의 공허에서도. 그 원초적인 인력만은 항구불변했다. 때로는 근접하고, 때로는 소원해지면서도.
기억이 완전히 복원된 순간, 지혜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