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지혜의 배도 호두처럼 동그스름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태명도 호두의 일본어 표현인 '쿠루미'를 따라 '루미'로 정했다. 기대감이 익어가는 동안 희망과 두려움이 끓어오르기 직전의 물 분자들처럼 격렬하게 요동쳤다. 마음이 한 곳에 안착하지 못하고 흔들릴 때마다, 지혜는 연분홍 모자의 털실 한 올 한 올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다른 어떤 물건보다도 오랫동안 곁에 두고 아꼈던 그 소중한 모자.
병원에서 날벼락같은 진단이 내려졌다. 태아의 심장박동이 멈춰버렸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둡고 절망적인 밤이 왔지만 병원에서는 이런 일이 자연스럽고 흔한 현상이라며,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위로했다. 바닥을 잃어버린 채 무한히 추락하고, 목청이 터져라 외쳐도 메아리 하나 돌아오지 않았다.
'좀 더 조심스럽게 행동했어야 하는데... 운동이 문제였을까?'
'그때 다른 손잡이를 잡았어야 했는데...'
병원에서 돌아온 날, 엄마가 미리 준비해 놓았던 호두과자가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지혜야, 기운 내렴. 이거라도 먹어."
하지만 그 익숙했던 향기가 더 이상 달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잃어버린 아이에 대한 슬픔과 절망이 그 맛에 배어 있었다. 그날 이후로 지혜는 호두과자를 마주할 수 없게 되었다.
"괜찮아. 다음에 또 가질 수 있어."
"엄마는 항상 그래요.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듯이 말해요. 단 한 번이라도 무너진 나를 그대로 품에 안아줄 순 없었나요?"
"그래... 엄마도 힘들었구나. 엄마는 도와주려고 했던 건데... 나도 무서웠어. 네가 모든 걸 잃어버릴까 봐. 근데 네가 나까지 밀어내니까... 내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지혜야..."
"엄마는 내 슬픔을 견뎌내지 못해요. 내가 엄마 앞에서 아픈 모습을 보이면, 엄마가 나보다 더 무너져버려요. 그래서 난 항상 멀쩡한 척했어요. 하지만 이번엔 안 돼요. 이건 멀쩡한 척으로는 견뎌낼 수 없어요."
그 순간을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 하지만 바뀌지 않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자신만을 원망하는 끝없는 자책의 나날들. 더 해내고 싶었기에 스스로 가슴을 할퀴며 상처를 남겼다. 더 이상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고, 그 존재 자체가 견딜 수 없도록 불쾌하게 느껴지는 순간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고, 무엇이 부족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후 이미경은 수없이 많은 문자와 전화를 시도했지만, 지혜는 엄마와의 모든 연결고리를 단절시켜 버렸다.
두 번째 임신, 세 번째 임신. 모두 유산이라는 잔혹한 결말로 귀결되었다. 남편 역시 이 연이은 비극 이후 감정적으로 멀어져 갔고, 결국 이혼이라는 파국을 맞았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삭이기 위해 아버지를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이름마저 아버지의 성씨를 따라 개명했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려낼 수만 있다면, 그 악몽 같은 시간들을 송두리째 도려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