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중력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진 별은 마지막 순간까지 불타오르다가 결국 검은 침묵 속으로 스러져 갔다. 더 이상 빛을 발산하지 않은 채 그저 무한한 우주 공간을 떠돌아다니기만 하는 그 천체는 이미 별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었으나, 칠흑같이 어둠이 지배하는 우주에서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었다. 보이지 않는 무게로만 남아, 다른 천체들의 궤도에 미묘한 영향을 미치며 침묵 속에 떠다니는 유령 같은 존재가 되었다.
십 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지혜는 길을 걷다가 이미경과 마주쳤다. 그 순간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안부를 묻는 일상적인 인사를 건넬 용기가 없었다. 용암처럼 끓어올랐던 아픔은 이제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여전히 괴석처럼 굳어진 흉터와 멍울진 슬픔이 다시금 가슴을 후벼파며 상처를 헤집어 놓았다. 멈춰 섰던 걸음을 다시 옮기려는 찰나, 등 뒤에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지혜야."
이미경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훨씬 가늘고 떨렸다. 머리카락은 눈처럼 하얗게 세어 있었고, 어깨는 세월의 무게에 눌려 굽어 있었다. 시간의 변화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엄마가... 많이 아팠어. 암 수술을 받았는데... 이제는 괜찮아졌어."
지혜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가슴 한편에서 무언가가 일렁였지만, 그것이 연민인지 분노인지 혹은 다른 감정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지혜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 혼자서도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
번화한 길 한복판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서 있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이미경이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차라도... 한 잔 마실까?"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은 이미경은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들어 올렸다.
"지혜야, 엄마가... 정말 미안해. 그때 네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이제야 깨달을 것 같아."
"..."
"병원 침대에 혼자 누워 있으면서 수없이 생각했어. 내가 너에게 얼마나 냉혹하게 굴었는지... 네가 위로받고 싶어 할 때도 항상 견디라고만 강요했지."
지혜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씁쓸한 맛이 혀끝에서 입 안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미경의 말은 진심으로 울려 퍼지는 것처럼 들렸다.
"정말 미안해. 이번에는... 이번에는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 많은 것들을 되돌아봤거든."
바로 그때 이미경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전화를 받으며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날카로워졌다.
"뭐라고? 아니야, 분명히 괜찮을 거야. 그 사람이 이 정도로 무너질 리가 없어... 응, 알겠어."
전화를 끊고 나서 지혜를 바라보며 설명했다.
"친구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하네..."
지혜는 그 결정적인 순간을 목격했다. 엄마는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대하고 있었다. '괜찮다', '이겨낼 수 있다', '포기하면 안 된다'라는 자세와 반응. 지혜는 조용히 관찰했다. 이미경이 웨이터를 불러 물을 주문할 때도, 그 목소리는 여전히 단호하고 확신에 찬 어조였다.
"엄마."
"응?"
"방금 전에 사과하셨잖아요."
"응, 그랬지. 정말 진심으로 미안해."
"그런데 지금도... 똑같은 방식으로 하고 계세요."
이미경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가 말이야? 엄마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지혜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요. 엄마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으셨어요."
"그럼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피곤해서요."
지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이미경을 내려다보았다.
"엄마, 몸 건강하게 지내세요."
"지혜야, 잠깐만. 우리 이제 다시..."
"안녕히 계세요."
지혜는 돌아서서 카페를 나섰다. 뒤에서 이미경이 간절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미경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평생 살아온 방식이고, 그 방식으로만 세상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과의 말들도 분명 진심이었지만, 그 진심조차 그녀의 한계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날 밤, 지혜는 오랫동안 창밖의 어둠을 응시했다. 분노도, 원망도 더 이상 치솟아 오르지 않았다. 그저 깊고 무거운 체념만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지혜는 그 세상을 받아들였다. 완전히, 조용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마치 내면의 등불이 완전히 꺼진 것처럼,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높고 견고한 벽을 쌓기 시작했다. 직장에서도, 일상에서도 최소한의 필수적인 대화만 나누었다. 누군가 친절을 베풀면 되려 경계심을 드러냈고, 호의를 보이면 먼저 거리를 두고 물러섰다.
"지혜씨, 요즘 너무 혼자만 있는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동료가 조심스럽게 안부를 물어봐도 지혜는 "괜찮습니다"라는 짧은 대답만 되풀이했다. 점심시간에도 혼자 식사했고, 회식이나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점점 그녀를 어려워하고 꺼리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염세적으로 사는 거야? 세상이 그렇게 절망적이기만 한 건 아닌데."
가끔 용기 있는 사람이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지혜는 차가운 시선으로 되물었다.
"당신 가족 중에 비극적으로 죽은 사람이 있나요?"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지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엄마와의 관계가 완전히 파탄나 버렸다고? 그 엄마를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그리워한다고?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지혜는 점점 더 깊은 고립의 나락으로 빠져들어 갔다. 마치 투명한 유리관 속에 갇힌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되 세상과 단절된 채로 살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