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입장!"
대련하기 전, 듣게 되는 말입니다. 이 한마디를 들으면 양 선수들은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며 존중을 표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 서로의 칼을 맞대고 한 판을 빼앗기 위한 겨루기를 시작합니다. 누군가가 한 판을 빼앗아 경기가 종료되었을 때, 이와 동일하게 서로는 칼을 거두고 입장했던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며 존중을 표하고 자리로 돌아갑니다.
서로가 칼을 맞대고 겨루는 대련이라는 이 수련 방식은 시작과 끝이 동일합니다. 바로 상대방에게 예의를 차리는 것입니다.
검도라는 운동을 제가 배웠을 때, 기본 동작을 배우고 난 후 서로 대련을 할 수 있는 시점에서 상대를 마주하고 해야 하는 필수적인 사항이 있습니다. 상대에게 예를 갖추는 일입니다. 검도는 예로 시작해서 예로 끝나는 운동입니다. 실제로 대회에서 상대방에게 한 판을 따냈다고 하더라도 따낸 직후 상대에게 예를 갖추지 못하면 점수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운동에서 예를 갖추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예를 갖추는 모습은 제가 처음 배웠던 30년 전의 모습과 비교했을 때,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대련 전에는 서로가 인사를 하며 예를 갖추고 대련이 끝난 다음에는 예를 보이며 대련을 마무리합니다. 수련 방식은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지만 운동을 배우는 기본은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예를 갖추는 것도 이 운동의 기본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이어져 온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의를 갖춰야 할까요? 저는 이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의라는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면 공손함을 표현하는 의식,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과 행동,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등을 말합니다. 사회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지극히 일반적인 행동방식이 바로 예의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나의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는 모습이 바로 내가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출 때의 모습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검도에서는 상대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대련을 진행해야 합니다. 서로를 이겨야 하는 상황임에도 말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대련이나 시합은 그 순간의 목적만을 생각한다면 상대를 이기는 것이 전부라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참된 의미는 다릅니다. 대련이나 시합을 통해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순간들을 겪어 보고 한층 더 발전하는 수련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나와 함께 대련을 하는 상대방에게 감사하다는 예의를 갖추고 끝났을 때에는 함께 해줘서 감사하다는 예의를 갖춰야만 합니다. 대련이라는 이름의 수련은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고 상대방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나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내 주변에도 참 많이 있습니다. 남이 도와주기 때문에 해낸 일들인데 우리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마치 내가 해낸 것인 양 생각하기도 합니다. 서로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것은 감사에 대한 의미가 담겨 있지 않고 그저 형식적으로만 변해버리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상대방에게 말하는 감사 합니다라는 한 마디가 정말 감사해서 말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반사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더 많을 뿐, 나의 진심을 담아 말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살면서 겪는 수많은 일들 중에는 나 혼자서 해낼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물건을 사러 가도 그 물건을 확인하고 계산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내가 그 물건을 안심하고 살 수 있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문헌을 참고하기 때문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확신을 갖고 이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없다면 이 모든 일들을 혼자서 다 확인하면서 지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있음을 감사해야 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춘다는 의미는 상대방도 나에게 예의를 갖추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당신을 존중한다는 의미는 상대방도 나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존중이 기초가 되어야 서로를 배려할 수 있고 배려 위에 서로 간의 협력을 일으키게 할 수 있게 됩니다.
검도가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기반으로 한 수련을 거쳐 더 높은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것처럼 나도 더 높은 곳으로 가길 원한다면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갖추며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예의는 기본이고 이 기본을 지켜야 내 능력을 잘 키워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면 저는 검도를 떠올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련에서의 간단히 하는 상대방을 향한 마음이 담긴 인사 하나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 대해서도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에 대해 상대방을 향한 내 마음이 담긴 시작 인사와 끝 인사, 이 두 가지만 명심해도 됩니다.
예의란 어려운 것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