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소유함에 대해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후기

by 우리살람

영국이 내 것이라니, 참으로 발칙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제목만 보고 이 영화가 무슨 영화인지 판단해보라고 한다면, 유럽의 중세시대 만인지적으로 불렸던 잉글랜드의 사자심왕 리처드 1세의 무용담을 다루는 영화로 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 마크 길 Mark Gill의 통수는 꽤나 잔잔해서 영화 보는 중에는 몰랐다가 영화관에서 나오고 나서야 이 영화가 정말 무엇을 다루는지 알게 된달까.

먼저 이 영화를 보기 전, 혹은 보고 난 후 이 영화의 주인공을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작중 스티븐은 실존인물 록밴드 더 스미스의 보컬인 모릿세이다. 더 스미스로 치자면 오늘날 롤링스톤즈, 비틀즈와 더불어 브릿팝을 대표하는 대부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을 읽어보자.

비틀즈 이래로 어떠한 영국 그룹보다 많은 영향을 불러일으킨 밴드.

BBC,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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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앤디 루크(Andy Rourke, 베이스), 모리세이(Morrissey, 보컬 /극 중 스티븐), 마이크 조이스(Mike Joyce, 드럼), 조니 마(Johnny Marr, 기타).


모리세이는 영국의 록밴드 더 스미스 보컬이자 작사가로 라디오헤드, 오아시스, 블러 등의 후대 영국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여겨진다. 맥길 감독은 “모리세이가 만든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 일을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리세이와 조니 마, 그리고 밴드 멤버들이 만든 음악은 내 삶을 바꿨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쯤 되면 더 스미스, 좀 더 특정해서는 모리세이 헌정 영화라고 보면 되겠다.

어 어쩐다. 벌써 핵심이 나와버렸다. 모릿세이 헌정 영화라는 거. 하지만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보면 이 영화의 숨겨진 가치를 알 수 있다. 영화에서는 3개의 공간이 주가 된다. 첫째, 그의 방. 둘째, 그의 직장. 셋째, 공연장. 또한 스티븐이 음악 활동을 하는 도시는 맨체스터다. 세련된 예술과는 무언가 거리가 있는 공간들이다. 먼저 그의 방을 보면 책들이 가득 찬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아무런 정보 없이 봤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뮤지션을 다루는 게 아니라, 작가를 다루는 영화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위의 사진에서도 보다시피, 모리세이는 상당히 공붓벌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의 스티븐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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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았는가, 안경 아래 숨겨진 그의 매력을. 영화에서는 그가 노래하는 모습보다 글을 쓰고 문학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노래하는 장면은 영화 내내 3번 정도 나온다. 나머지는 그가 방에 와서 글을 쓰는 장면이다. 심지어 영화 후반에서는 그가 직장에서 글을 쓰다가 상사에게 혼이 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단점? 이자 특징이 있다. 내성적이라는 것이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생각을 체계화시키지만 동시에 주변 환경에 대한 적응은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런 내성적인 캐릭터와는 그렇게 친해지고 싶지는 않지만, 친해지게 되면 그들이 가진 생각이나 감각들이 너무나 독창적이고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또 그렇게 거리를 지내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스티븐은 이런 사람이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주변 사람, 여자 친구, 예술가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가 가진 꿈을 이루는 시도를 하게 된다. 동시에 그는 가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세무서에서 일을 하는데 이건 안 잘리는 게 이상할 정도로 결근, 지각이 잦다. 일하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나중에 음악적으로 성취를 얻자, 세무 일을 때려치우기도 한다.

이후, 그가 전에 면전에서 도망쳐버렸던 기타리스트, 대런과 팀을 꾸려 첫 공연을 하고 좋은 반응을 얻게 되어 런던의 한 프로듀서로 연락을 받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스카웃 것이 아니라, 그의 기타리스트가 스카웃이 되고 그는 방에서 폐인이 된다. 진짜 폐인이 되어서 어머니가 일어나라는 말에 2달 가까이 이러고 있었다는 대꾸를 한다. 그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실패를 맛보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겠지만, 예민한 영혼을 가진 그에게 음악계 주류로의 진출 실패는 인생의 끝으로 다가왔을 듯하다.


하지만 그는 천천히 이를 극복한다. 우울증 약을 먹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다시 음반매장에서 기웃거리면서 그를 사랑했던 음악을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리고 계속 글을 쓴다. 예전의 그의 방이 정리가 안된 방이었지만, 이제는 그의 방은 무언가 체계가 갖춘 방처럼 느껴진다. 그의 내적 성숙이 외면으로도 확장되었을 짐작케 하는 연출로 볼 수 있겠다.

영화는 스티븐이 성공하는 장면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기타리스트(?)의 집을 두드리며 끝난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어쩌면 성공은 화려한 무대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문 밖에서 두드리는 자에게 손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DgDDUmXVMAEkAzk.jpg 국내 개봉 포스터, 무대에서의 스티븐



b53myfrpa7psarvbobrw.jpg 국외 포스터, 문 뒤에서 문을 두드리는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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