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곡성은 음산한 소나기로 시작한다. 이내 그 빗소리는 곡성, 말 그대로 우는 소리로 바뀐다. 곡성은 안개가 가득한 시골 도시이자, 환상과 주술이 가득한 영적 공간이 되어버린다. 물론 영화 초반에서는 연속되는 살인 사건에서 경찰, 공권력의 출동에서는 현실의 공간이었다. 물증으로 수사에 임해야 하는 주인공 동훈(곽도원)은 연속되는 살인 사건 속에서 행간에 떠도는 소문을 듣고 물증 외의 심증으로 탐문수사를 진행한다. 영화 곡성은 곽도원의 내면의 시점을 따라 그 공간적 배경이 국가와 권력이 작용하는 현실에서 주술과 귀신이 존재하는 환상적 공간으로 변화해간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2원적 세계와 1원적 세계의 사이인 현실적 영적 세계로 입장하게 된 것이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동적 인물인 곽도원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기괴한 살인 사건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는 사건을 조사하다 만나게 된 천우희를 통해 영적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천우희는 혼자 살인 현장을 지키고 있는 곽도원의 현실세계에 금을 가게 한다. 그것이 바로 그에게 돌을 던지는 행위다. 그는 천우희에 이야기에 홀려 사건 현장에 들어갔다가 일본 노인이 악마로 변신한 모습을 보게 된다. 이는 그가 본격적으로 영적 세계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는 탐문 수사를 하다 일본 노인의 분노를 입게 되고, 박수무당의 말처럼 부정을 타게된다. 그로 인해 그의 딸은 귀신에 사로 잡히게 된다. 곽도원은 경찰로서의 이성적 수사를 접고 딸을 구하고자, 본격적으로 영적 존재과 맞서 싸울 채비를 하게 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살인자와 피해자는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듯한 모습으로 얼이 나가 있다. 천둥과 경찰서 문 앞에서 등장하는 한 여인은 온몸에 검댕을 묻히고 동네를 벌거벗은 채로 돌아다닌다. 이 피해자들은 사술을 쓰고 사령을 부리는 일본 노인(악마, 쿠니무라 준)에 의해 살아도 죽은 것처럼 정신이 없고 기괴한 분위기를 풍긴다. 반대로 죽어도 살은 것처럼 움직이기도 한다. 곡성에서의 인간은 영적 존재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존재이며, 영적 질서에 무지하다. 곡성이 지옥도로 변해가자 영적 질서에 무지한 인간은 지옥도를 벗어나게 해줄 영적 지도자를 갈구하게 된다.
그 사람이 바로 이 분.
절대 현혹되지 마라
종구는 딸을 지켜내려는 뜨거운 부정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딸을 구원해내려 한다. 거금을 들여 박수무당(황정민)을 고용해 귀신에게 사로잡힌 딸을 구하려 한다. 종구는 영적인 지식도, 눈도 없다. 갓 영적 세계의 존재를 인식했을 뿐이다. 그는 딸을 구하려는 뜨거운 부정을 지닌 인물이지만 영적 소경이면서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인물이다 . 그래서 일광은 그에게 영적세계의 대리자이자, 안내인, 안내견이 된다. 하지만 그 일광 또한 영적인 분별을 온전히 해내지 못하는 불완전한 인간이자 인간세계의 돈을 중시하는 세속적(세상에 속한) 인물이다. 일광은 영적세계에 대해서는 빠삭하다. 하지만 종구의 저지로 살 굿이 망쳐지고 난 뒤에서야 무명의 존재를 알게 되고 무명이 진짜 귀신이라고 종구에게 말한다.
종구에게 악에 대한 경고를 통해 그를 영적세계로 초대한 무명의 여성(선우희)은 흰 옷을 입고 희생자들의 물품을 가지고 다닌다. 그녀는 희생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영적 존재이자, 종구의 집에 들어온 악귀로부터 종구을 보호하려 한다. 그녀는 예수가 제자인 베드로에게 말한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나를 부인하리라'라는 것처럼 닭이 세 번 울기 전까지 참으라고 한다. 그리고 그녀에 곁에 있으라고 한다. 닭이 우는 것은 새벽의 시작을 알리는 것 뜻하며 암흑의 공간에서 밝은 아침의 공간으로 넘어오는 것을 뜻한다.
일본 노인이 마을에 들어오고 나서 마을에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는 주술을 통해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귀신에 들리게 한다. 그는 인간도, 단순한 귀신도 아니다. '악'이다. 그는 영적 존재이자 현실적 존재, 그리고 영이자 육으로 곡성이란 세계 속에서 초월적 존재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를 단순한 귀신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영화 후반부에 신부가 동굴에 들어가 있는 그를 찾아 정체를 묻자 그는 '와타시(나)다' 자신의 존재를 밝히길 거부한다. 악마의 제일 큰 속성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악마의 특징 중 또 하나는 자신의 적인 선에 대해 놀랄 정도로 잘 알고 이를 이용해 상대를 미혹하려 하는 것이다. 극 중 후반, 일본 노인의 모습에서 악마의 모습으로 실체를 드러낸 모습과 동시에 예수의 말을 인용하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손에 구멍이 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예수로 가장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눅 24:38~41)
악마이자, 초월적 존재 앞에 신부는 이에 자신이 온 이유도, 믿음도 온데간데없이 비어버린다. 믿음이 부족한 자는 악마와 맞서 싸우지 못하고 악마에게 촬영당하며 그의 영혼이 사로 잡히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과 종구는 누가 진정한 악인지 계속 찾게 된다. 곡성의 지배자인 감독은 선과 악의 구분을 어렵게 한다. 인간은 결국 계속 영적 세계에 고민하며 치열하게 의심하며,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이성의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그 해답은 중요하다. 작 중 종구는 딸에게 들어간 귀신과 딸에게 무엇이 진실인지 다그쳐 묻는다. 딸은 악에 받혀 이렇게 말한다.
뭐시 중헌지 알지도 못함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을 믿는 삶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현실보다는 현실 이면의 가능성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중요시하는 삶이다. 일광과 신부의 삶이 바로 이런 삶이다. 종구는 이런 삶에 점차 눈을 뜨게 되지만 정작 무엇이 진리이고 진실인지 몰라, 영적 소경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타자의 욕망에 휘둘린다.
곡성은 진리를 제시하지 않는다. '맥거핀'을 통해 진리 밖의 삶을 무시무시하게 그려내고 있을 뿐. 이점에서 감독은 진리는 결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며 손 쉽게 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던져준다.
곡성은 2시간 반이 넘는 러닝 시간 동안 한순간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영화관에서 나오니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풀렸다. 감독의 배경과 스토리의 연출이 현실과 환상을 중첩시키며 무엇이 진실인지 계속 질문을 던졌던 탓일 것이다.
때가 악하다. 악은 항상 평범한 혹은 구세주의 얼굴로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다. 무엇이 진리이고 옳은 것인지 분별해야한다. 미끼를 물지 말자! 마지막으로 사자의 곡성을 다룬 성경의 한 구절로 리뷰를 마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전서 5:8
더 자세한 글은 ☞ http://justq.tistory.com/2
곡성과 관련되어 감독의 의도와 제일 근접한 해석이라고 생각이 드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