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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e Kim May 18. 2016

귀신이 곡할 영화 '곡성'

곡성에 나타난 상징에 대한 분석

지난주에 개봉한 곡성은 영화가 개봉하기 이전에 관심을 받은 것과 별개로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저 역시 최근 한국영화를 보면서 느낄 수 없었던 희열을 느낄 정도로 잘 만든 영화였고 곳곳에 상징적인 메타포가 많아서 이야기할 것도 많은 영화였습니다.


영화에 대한 내용 및 소개는 각설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영화를 이미 본 관객을 위한 글이고 이미 많은 분들이 꼼꼼한 분석글을 올려주셔서 이미 알만큼은 아는 분들이 보시리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며 아무리 생각해도 나홍진 감독은 엄청나게 영리합니다. 일부러 비어있는 지점을 만들어 해석의 혼동을 유발하게끔 한 장면이 있고 어떤 부분은 지극히 친절해서 그것마저 의심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각 종교의 공통 화두나 메타포를 절묘하게 섞어놔서 어떤 종교적 시점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하도록 맥거핀(떡밥)을 뿌려두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쓰는 리뷰는 영화에 대한 리뷰라기보다는 영화에 등장하는 중의적인 상징들을 해석함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관점이 조금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를 기본으로 깔고 갑니다.

우선 두 가지의 방향으로 글을 전개하려 합니다. 그 첫 번째는 영화를 보며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에 대한 질답이 이어지고 두 번째는 상징들에 대한 해석입니다. 지금이라도 영화를 안보신 분이라면 아래에 이어지는 글을 읽지 말아주세요. ^^


이후 스포일러 100%!

그리고 생각보다 글이 조금 깁니다. ㅎㅎ




왜 곡성인가?


곡성(谷城)과 곡성(哭聲)이 동음이의어 인 것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아실 거라 생각됩니다.

나홍진 감독의 짓궂은 농담인 것이죠.


우선 영화의 배경이 되는 전라남도에 위치한 곡성(谷城)군은 화면으로 보아도 굉장히 아름다운 곳입니다. 산과 강이 있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모습이 그대로 존재해 우리나라의 80-90년대의 시골의 모습을 아직까지 보여줍니다. 또한 아직 툇마루가 있는 한식 가옥들과 논밭에 연결된 마을이 함께 존재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시골집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영화의 시작을 보면 우리는 낯선 장면 하나를 발견합니다. 사람이 기괴하게 죽었는데 출동한 건 동네 경찰뿐입니다. 최근 경찰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CSI급 장비를 동원해서 과학수사가 이뤄지는 걸 생각하면 굉장히 낯선 장면입니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시작부터 현대적인 과학의 존재를 단절시킵니다. 이후에도 이런 모습은 이어집니다. 혹시 전염병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환자를 동네 병원에 입원시킵니다. 아이가 엄청나게 아픈데도 간단하게 약국의 약정도로 치료하려고 합니다. 아니 거기에 더불어 병을 고치는데 무당을 불러 굿까지 합니다.


거대한 산과 강으로 도시에서 단절된 곡성군의 모습은 여기에서 밀실을 만드는 장치로써 역할을 충실히 합니다. 많은 탐정 스토리가 그렇듯 그 모티브는 밀실에서 살인된 시체로 이야기의 포문을 엽니다. 곡성은 하나의 거대한 밀실인 셈입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공포는 이러한 단절에서 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 천재지변 같은 초자연적 사고에서 말이죠.




외지인(일본인)의 존재는 무엇인가?


많은 분들이 외지인의 존재를 성경 속에 등장하는 악마와 비교하여 글을 쓰셨습니다. 저는 여기에 조금 의문을 갖습니다. 사실 외지인의 존재는 단지 성경 속에만 등장하는 악마가 아니라 동서양에 비슷하게 존재했던 악령(귀신) 또는 괴물(요괴)의 모습과 많은 부분 닮아 있습니다. 외지인이 성경의 내용을 인용하였기 때문에 악마로 보이기는 하지만 특히 주목해서 봐야 할 점은 이 외지인이 일본에서 왔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나홍진 감독은 각본을 쓰기 전 일본과 티벳을 방문하여 각 종교의 수행자를 만나 종교적 질문을 나눴다고 합니다.)


일본 요괴 텐구

일본에는 '텐구(天狗-하늘의 개)'라는 신이 존재합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신이라기보다는 수련을 통해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텐구는 일본 전국의 심산유곡에 살면서 마계를 지배하는 요괴의 일종으로, 악마와 다름없습니다.(실제로 일본에 크리스트교가 전파되었을 때 선교사가 성경에 나온 악마를 설명할 때 텐구를 예로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텐구는 일본의 산신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수험자 같은 차림으로 얼굴은 붉고 코는 높으며, 높은 게다를 신고 허리에는 큰 칼을 차고 깃털 부채를 들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텐구는 옛날에 벼락이 쳤을 때 하늘에서 떨어진 개라고 여겨졌는데, 수험도(슈겐도라고 부름-일본의 밀교로 불교+도교+일본의 토속신앙에 기반한 교리를 가지고 있음)의 영향으로 수험자풍의 분위기를 띠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늘을 날거나 마력을 사용하며 힘도 세지만, 뛰어난 스님에게는 꼼짝 못 합니다. 고도의 신통력을 가진 다이텐구(大天狗)나 새의 부리를 가진 카라스(까마귀)텐구만이 그 힘에 대적할 수 있다 합니다.


효진이 걸신들린 사람처럼 생선을 먹는 장면을 보면 조금 더 텐구에 기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텐구는 물에서 튀어 오르는 물고기를 잡아먹고 삽니다. 텐구의 주식이 물고기입니다. 외지인이 닭발을 먹는 것이 나오지만 외지인은 카라스텐구가 되기 위해 수련하기 때문에 새를 먹는 것으로 설정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영화 초반 경찰들이 출동한 창고에는 거대한 새의 둥지 같은 것이 보입니다. 다른 분들은 예수의 면류관을 상징했다고 하는데 2회 차를 관람하며 자세히 봤지만 면류관의 형태가 아닙니다. 새의 둥지입니다. 텐구를 추종하는 자가 만들법한 구조물입니다.


Ishihara Gojin - Tengu, Illustrated Book of Japanese Monsters, 1972


그렇다면 까마귀는 무얼 상징하는가?

외지인이 키우는 동물은 검은 개입니다. 또한 영화에는 계속해서 까마귀가 등장합니다. 다른 분의 분석글을 보니 까마귀가 무명을 돕는 동물로 나오는데 저는 그것과는 반대 입장입니다. 텐구는 영력이 높으면 산중에 새를 마음대로 조종합니다. 그중에 까마귀는 카라스(까마귀) 텐구의 사역마 같은 존재입니다. '외지인이 까마귀를 부린다.'라고 가정을 하면 많은 부분이 다르게 해석되게 됩니다. 실제 영화에도 외지인이 사는 방에 조류도감이 있습니다. 아마도 외지인은 이미 텐구가 된 승려(영화에도 외지인을 설명하며 대학교수 또는 승려였다고 합니다) 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도 외지인은 그것보다 더 높은 단계인 다이텐구나 카라스텐구가 되기 위해 수련을 하는 것 같습니다. 외지인의 두 번째 방을 보면 제단에 무언가 놓여있습니다. 중앙엔 검은 불상이 있고 불상 뒤에는 만다라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외지인이 일본 밀교에 근간을 두고 수련을 쌓았다는 것을 컨샙으로 감독이 일부러 배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까마귀는 개를 왜 먹는가?

검은 개가 죽자 까마귀가 그 시체를 물어뜯기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많은 분들이 무명(천우희)이 외지인을 공격하는 것이다로 해석하시는데 밀교의 사악한 주술을 생각하면 어쩌면 개는 이미 제물로써 존재하고 그걸 주술을 걸어야 할 사람(곽도원-종구 역)이 죽여야 거대한 주술(자신이 다이텐구 또는 카라스 텐구로 변화하는)이 시작되고 그걸 사역마인 까마귀가 먹었다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명이 까마귀를 조종했다면 외지인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죠. 텐구가 개를 모티브로 하였다면 그것보다 높은 단계인 카라스텐구는 까마귀를 모티브로 함니다. 까마귀가 개를 먹는 행위는 카니발리즘처럼 더 높은 힘을 갖기 위해 강한 자를 먹는 행위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스님에게 꼼짝 못 하는 텐구보다 더 높은 단계로 가는 하나의 주술적 순서인 것이죠.


까마귀는 왜 종구의 집 장독에서 발견되는가?

또한 종구의 집에 박수(무당)가 등장했을 때 가장 처음 하는 일이 장독에 죽은 까마귀를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무명이 했다고요? 아닙니다. 장독은 민간신앙에 따르면 가택신인 철륭신이 사는 곳입니다. 무명의 존재는 이후의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한국 무속신화에 등장하는 산신(또는 삼신)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예로부터 장독대는 천지신명(또는 가택신)에게 정화수를 올려놓고 무릎 꿇어 손을 빌며 기도하는 곳입니다. 외지인이 하나의 집안을 파괴하는 과정을 보면 꽤 치밀합니다. 예로부터 밖에서 들어오는 부정한 것을 막는 것은 집안에 원래 존재하는 가택신들입니다. 그런데 그 여러 가택신 중 철륭신은 외부의 이웃 가택신들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부엌의 신인 조왕신은 다른 집을 왕래할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한 곳을 지켜야 하는 지박령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장독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네 정서는 이웃이 서로 장을 나눠먹었습니다. 철륭신은 그렇기에 한 집안뿐만 아니라 다른 집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외지인은 그런 철륭신을 죽이기 위해 까마귀를 보내 장독에 부정을 타게 했다고보는게 맞습니다.


종구네와 비교하여 다른 집들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탄 집이 나옵니다. 이는 가택신들 모두를 죽이는 행위입니다. 집 한가운데 있는 우물에 몰살된 시체가 발견됩니다. 이는 집에서 가장 성스러워야 할 공간을 더럽히는 행위입니다. 외지인은 단지 사람을 죽이는 것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집안을 지키는 가택신들부터 하나씩 처리하며 마을이라는 공간을 병들게 합니다.


그럼 외지인은 악마랑 상관없는가?

아닙니다. 나홍진 감독은 여러 종교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악마의 존재를 하나의 캐릭터에 굉장히 잘 버무려 놓았습니다. 성경에 근간하여 외지인이 빙의된 악마를 소개하자면 그 악마의 이름은 바포매트(Baphomet)와 베히모트(Behemoth), 아자젤(Azazel)과 벨제붑(Belzebub)입니다. 바포매트는 검은 산양(염소)의 모습을 한 악마입니다. 외지인은 종구가 자신을 해하려 하자 바로 다음날 검은 염소를 종구 집 대문에 처참하게 죽여 걸어놓습니다. 외지인의 방에서도 바포메트의 흔적이 발견되는데 바포매트는 이슬람권에서는 주술의 상징으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서양에서 악마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대표적인 모습이며 흑마술을 나타내는 대표적 상징입니다. 베히모트는 바다의 레비아탄과 더불어 야훼가 창조했다고 하는 지상에서 최강의 괴물입니다. 혼돈과 무의지적 악을 상징합니다. 외지인이 훈도시만 입고 산짐승을 먹는 장면에 등장합니다.


아자젤은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는 악마로 지옥의 군주이기도 합니다. 아자젤의 어원과 역사는 수메르 시대까지 올라가는데 아자젤은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의 딸들과 정분을 맺고 타락시켰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중간에 외지인의 집에서 일본인의 성교 장면이 담긴 우키요에(판화집)가 발견되는데 이는 텐구+아자젤의 사악한면을 부각시킨 장면입니다. 외지인은 또한 목매달아 죽는 아녀자를 강간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벨제붑은 죽음과 역병의 악마입니다. 벨제붑은 곤충을 조종해 흉년이 들게 하고 파리를 조종해 역병을 옮깁니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곤충이 파리인 것을 보면 외지인은 아자젤과 더불어 벨제붑의 모습도 가지고 있습니다. 일광이 마을을 도망치는 장면에서 나방이 차창에 부딪힙니다. 이는 부활을 통해 완전한 악마가 된 외지인이 보낸 것입니다. "나는 더 높은 존재의 악이 되었다. 그러니 걱정 말고 종구의 집으로 되돌아가 일을 마무리하라"는 사인으로 말이죠. 부정한 힘으로 곤충을 조종하는 벨제붑과 닮았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부사제에게 예수의 증거인 성흔(스티그마)을 보여주며 자신이 무엇으로 보이냐고 묻는 장면은 노골적인 가톨릭 신앙에 대한 반문입니다. 신은 자신의 성스러운 모습을 일반인에게 쉽게 보여주지 못합니다. 대천사급만 만나도 인간은 두 눈이 타버린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신의 모습을 과연 인간이 마주할 수 있을까요? 종교를 믿는 사람은 아무리 사악한 존재를 봐도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만 골라서 보려고 합니다. 한국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 목사가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신자들은 그것마저 신의 뜻일지 모른다며 자신의 믿음을 따릅니다. 그걸 아는 악마는 과연 인간에게 무엇을 보여줄까요? 답은 여러분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일광의 존재는 무엇인가?


짧게 정리하겠습니다. 일광은 처음부터 외지인과 한패입니다. 처음 시작화면에서 외지인이 미끼용 지렁이를 낚싯바늘에 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지렁이는 하나인데 낚싯바늘 두 개를 한꺼번에 뀁니다. 이는 영화에 등장하는 미끼(마을 사람 또는 종구, 효진)에 외지인과 일광 두 명이 같이 협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간에 감독은 노골적으로 일광의 훈도시(남자 앞가리게 속옷)를 보여줌으로써 외지인과 한패라는 것을 밝힙니다.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일광은 외지인의 제자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살굿의 대상은 외지인이 아닌 종구의 딸 효진이었고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살인 장소에 무당이 굿을 한 흔적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던 거죠. 무당은 자신의 몸에 들어오는 신들을 통해 영력을 발현하는데 종종 그 신들 중에 잡신도 있고 악한 신도 있습니다. 더 큰 힘을 원하고 더 큰 돈을 벌려한 일광은 오래전부터 외지인과 협력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이는 더 확실해집니다. 영혼을 수집하는 도구로 등장하는 카메라를 가지고 종구의 살해된 가족을 찍은 일광은 차에서 큰 상자를 떨어뜨립니다. 그 상자에는 외지인과 마찬가지로 살해된 사람들로 보이는 사진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카메라는 인간의 영혼을 빼앗고 그것을 사진에 담아내는 도구입니다. 목숨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하늘로 올라가는 천도를 막는 강력한 무기인 셈. 이건 외지인이 일광에게 수련의 일환으로 가르쳐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일광의 첫 등장 장면에서 일광은 왼쪽 차선을 타고 운전을 합니다. 오른 쪽차선 운행이 아닌 왼쪽 차선 운행은 일본식입니다. 일광이 이미 일본에서 오래동안 생활 했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황정민을 이야기 하지않고 넘어가기 힘들 것같아서 몇마디 더 적자면 황정민의 박수무당연기는 완벽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어선을 운영하셔서 일년에 두 차례씩 큰 굿을 볼 수 있었고 대학교 때 순수한 호기심으로 굿을 하는 굿당에 한달간 출퇴근하며 무당들의 굿을 보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황정민은 무당의 굿판을 진짜 신들린 사람처럼 연기했으며 한국영화에 굿이 등장하는 장면에 큰 방점을 하나 찍었습니다. 영화에 조커로 등장하며 씬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죠.




무명의 존재는 무엇인가?


무명의 존재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자세한 설명 없이 영화만 본 사람들은 무명마저 종구를 해하려 한 귀신으로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고 분석글을 쓰시는 분들은 절대적인 수호자로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는 비약해서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가지 말아라"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며 예수와 같은 초월적 존재로 해석하는 분도 있습니다. 중간에 돌던지는 장면을 보며 "이 중에 죄가 없는 자 돌을 던지라"라는 성경의 이야기를 비유하며 마을에서 가장 선한 존재로 보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나홍진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무명의 존재를 분명히 말합니다. 무속신앙에 근간해서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명은 무속신앙 중 무엇에 해당할까요?


산신(山神)이 아닐까?

예로부터 우리 민족 신앙에는 각 고을의 산을 지키는 산신들이 존재했습니다. 유교를 믿었던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는 더 디테일해집니다. 산신은 도교의 도사와 같은 존재이며 호랑이를 거느려 마을을 보호함과 동시에 우리 민족의 중요 먹거리를 제공했던 산을 지키는 신으로 존재했습니다. 무명이 산신일 가설을 바탕으로 해석을 하자면 외지인은 굉장히 암적인 존재입니다. 무명(산신)의 구역인 산에 몰래 들어와 구멍을 파고 산을 병들게 합니다. 또한 산신이 지켜야 할 마을과 사람들을 하나씩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중간에 땅꾼(건강원 주인)이 벼락을 맞는 장면이 있는데 이 벼락은 산신이 내린 천벌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산의 소유물인 고라니를 잡았고 그 고라니를 방치함으로써 파리가 꼬이게 했으니 말이죠. 그래도 죽이지는 않습니다. 경고를 줄 뿐이죠.


논란이 있는 살굿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일광이 외지인에게 살을 날리는 듯 보이지만 굿의 클라이맥스쯤에 장승을 꺾어 정을 때려 박습니다. 옛부터 장승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장승을 불경스럽게 꺾어 불쏘시게로 쓰고 정을 때려 박는 행위는 단지 효진에게만 향한 게 아닙니다. 효진은 증세가 악화되다가 살굿을 하기 전 잠시 원기를 회복하는데 이는 무명의 힘이 보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겁니다. 일광은 효진의 몸을 감싼 보호막을 뚫기 위해 장승을 살굿용 촉매로 쓴 것이죠. 종구가 살굿을 억지로 말린 후 산에 있던 외지인이 갑자기 기절을 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 무명이 나타납니다. 효진을 보호하는 것이 끝난 무명은 외지인을 공격한 것입니다. 종구의 차에 치어 죽은 외지인도 사실 무명이 산에서 던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장면을 멀리서 보던 무명은 기쁨도 슬픔도 아닌 경멸의 눈으로 외지인의 시체 처리를 지켜봅니다.


삼신할머니는 그럼 무엇인가?

무명은 산신과 더불어 삼신할머니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삼신은 많은 분들이 알고 있듯 아이가 태어남과 관련이 있습니다. 삼신(三神)은 효진처럼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삼신의 능력은 아기를 잉태시켜주실 뿐 아니라, 출산 후 산모의 빠른 회복과 동시에 15세까지의 양육을 맡아 준다고 합니다. 효진의 나이가 몇 살일까요? 제가 보기엔 초등학생입니다. 14세 이하일 것입니다. 삼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나이인 것이죠. 또한 무명은 말할 때마다 "우리 할매가 그러는디.."를 붙입니다. 무녀나 무당이라고 보긴 애매하고 삼신할머니의 화신쯤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마지막 종구의 팔을 붙드는 장면을 보면 인간이라긴 애매모호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살아있지만 산자가 아니고 죽은지 처럼 보이지만 죽은 자도 아닙니다. 생령에 가까운 화신입니다.


삼신은 북두칠성과 관련이 있고 7이라는 숫자와 밀접함.

영화에 등장하는 금줄을 무명이 쳤다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이 금줄은 삼신과 관련이 있습니다. 금줄은 3x7(삼칠일)에 해당하는 21(스무하루)과 관련이 있습니다. 금줄은 아이가 태어나면 집안에 부정한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결계인 것이죠. 민족 설화에 기반한 수비학은 남자를 7로 보고 여자를 3으로 봅니다. 삼칠일이란 남자(7)와 여자(3)가 결합(합궁)한 것을 말합니다. 그 결과로 아이를 잉태하고 태어나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삼칠일에 해당하는 21일 동안은 금줄을 묶는 것입니다. 금줄은 그래서 삼신할머니의 강력한 모티브입니다. 무명은 삼신할머니의 화신으로 종구의 집에 출입하는 부정한 것들을 막고 가족들을 보호하고 싶었던 것이겠죠.


금어초는 시들면 해골의 모습을 합니다.


무명이 매단 금줄과 금어초는?

무명은 영화의 말미에 종구를 잡으며 말합니다. 금줄에 미끼를 걸어놨으니 기다리라고 그 미끼는 금어초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며 금줄이 과연 언제부터 보이나를 찾았습니다. 금줄은 정확히 종구가 비 오는 날 자기 집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장면부터 등장합니다. 그런데 금어초는?


영화 초반에 살해 현장에서 말라비틀어진 것이 등장한 후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처음 종구 집에 매달린 금줄에는 금어초가 없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되어서야 금줄에 매달린 금어초가 등장합니다. 다른 분들의 분석글을 보면 종구 집에 도착한 일광이 종구 집에 못 들어가는 이유를 그 금어초 때문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아닙니다. 일광은 단지 자신보다 더 높은 영력을 가진 무명을 만나서 기가 역류했을 뿐 처음부터 문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진 않습니다. 그때만 해도 금줄에는 금어초가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혼동하는 것이 이미 악령에 씌인 효진은 금어초가 달린 금줄을 통과하고 꽃은 시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종구가 오자 그 금어초가 시들어 해골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그렇다면 금어초가 어떤 미끼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금어초는 일광 또는 외지인을 잡기 위한 강력한 부적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무명은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 것입니다. "어라? 그러면 이미 종구 일가가 모두 죽은 후인데 뭘 보호해?"라고 반문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네 맞습니다. 종구가 일찍 갔으면 종구 역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명이 지키려 한 것은 사람의 목숨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으면 남게 되는 혼령을 구하려 한 것입니다.


삼신은 7x7에 해당하는 49(사십구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천도하는 영혼을 저승까지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금어초는 단지 미끼가 아니라 외지인과 일광이 영혼을 빼앗아가는 것을 막는 일종의 부적입니다. 무명이 죽은 자 들의 옷과 소지품을 갖고 있는 이유도 천도를 하기 위함입니다. 외지인이 저주 대상의 소지품을 가지고 주술을 걸었듯 무명은 천도되어야 마땅한 영혼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소지품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종구가 그 금어초를 시들게 하는가?

앞서 이야기드렸듯이 종구는 외지인이 더 큰 악마(텐구)가 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주술재료입니다. 종구는 외지인의 개를 죽이면서부터 외지인이 계획한 거대한 주술의 장깃말이 됩니다. 종구가 외지인을 죽일 때쯤 일광은 술집작부를 만나 점을 치며 희미하게 미소를 짓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장면에서 운전을 하며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모질이 같은 새끼. 미끼를 삼켜부렀네.." 영화의 끝을 모르는 관객은 그 미끼를 무명이 던진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런데 "모질이 새끼가 미끼를 삼켰네"라는 말은 일광이 종구를 비하해서 한 말이고 계획대로 잘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외지인+일광)가 던진 미끼를 모자란 놈이 입질을 하다가 결국 삼켰네"로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미 개를 죽이고 사람까지 죽인 종구는 그 행위를 통해서 부정을 탄 것입니다. 계획이 완벽하게 들어맞았다는 것입니다.


무명도 비슷한 말을 하죠. 종구가 무명에게 "왜 우리 효진이냐"고 묻자 무명은 "니 딸의 애비가 남을 의심하고 사람을 죽여서 그래"라고 말이죠. 이를 성경에 기반해 해석하면 종구를 애비로 지칭해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금기를 의심한 '아담'과 최초의 존속살인을 한 카인을 빗대 인간(남성)이 가진 원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무속신앙에 기반해 무명을 볼 것이냐. 아니면 성경에 기초해 메시아로써 무명을 볼 것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부정한 것으로부터 집을 지키기 위해 걸어둔 금어초가 시들어버린 이유는 그 집의 주인인 종구(원죄적 존재)가 지나갔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만약 외지인이나 일광이 그 밑을 지나갔다면 아마도 금어초는 다른 힘을 보여줬을 거라 생각됩니다. 금어초의 꽃말은 욕망과 오만입니다. 단지 영혼만이라도 지키고 싶었던 무명에게 생명까지 지키려 한 종구의 행동은 아마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과 오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종구가 닭이 세 번 울기전 집으로 들어가자 무명은 허망하게 골목에 주저앉습니다. 결국 악이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카라스텐구 또는 대악마가 돼버린 외지인은 결국 산신(삼신)을 산과 마을에서 몰아내고 곡성을 장악할 것입니다. 무명의 산과 마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완전히 패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의 산신인 텐구가 한국의 산신을 몰아내게 된 것이고 사람을 해하는 악마가 결국 사람을 돕는 삼신을 이기게 된 것이지요.




마을 사람들이 걸린 병은 무엇인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마을 사람들이 좀비처럼 보이게 하는 병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박춘배를 마치 좀비처럼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혼동하게 만드는데 사실 이 병은 좀비가 되는 병과는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미 영화 중반 이 병에 걸린 여자가 종구에게 상처를 입히는데 전염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방에 피칠갑을 하는데 누구도 전염되지 않습니다. 영화의 말미 오른뺨을 물린 부사제 역시 이 병에 전염되지 않습니다. 좀비의 무서움은 사실 전염성에 있습니다. 물리면 누구나 좀비가 되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지 전염성이 없다면 좀비는 그다지 무서운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는 저는 영화에 뿌려진 떡밥을 회수하여 가설을 세워 봅니다.


12명의 피해자 7명의 감염자

이 병의 특징은 물집이 잡힌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첫 번째 살해 현장엔 부부가 나란히 처참하게 죽어있고 전혀 관련 없는 이웃이 그 살인의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살인한 이웃 남자는 온몸에 끔찍할 정도로 물집이 번져있습니다. 이 물집은 영화에 등장하는 7명에게 동일하게 발견됩니다. 우선 첫 살인 현장의 이웃 남자, 외지인에게 강간당한 마을 아낙과 남편, 술집 작부, 종구와 같이 다니는 경찰관, 마지막에 부활한 박춘배 그리고 종구의 딸 효진. 영화에서 살해당하거나 죽은 사람의 수는 12명(12사도와 같은 수. 외지인은 주술을 걸어 12사도와 같은 수의 사람을 죽이고 악마가 되는 대업을 완성함)입니다. 그중 남자와 여자는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4명의 남자들은 단지 살인을 할 뿐이고 3명의 여자들은 악령이 든 것과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술집 작부는 그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 병의 연결고리는 다름 아닌 외지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과 관련이 있을 거라 추측하는데 이유는 마을 아낙이 강간을 당했고 그 아낙이 가족을 죽이고 불을 질렀기 때문입니다.


섹스를 통해 전염되는 병

이병의 증상은 성병과 비슷합니다. 외지인이 동네 여자들을 강간 또는 섹스를 통해 감염시켰고 그 여자들과 엮인 남자들은 같은 병에 걸리게 됩니다. 이는 감독이 영화 곳곳에 이미 복선을 깔아 두었습니다. 가족 중에 여자가 가장 먼저 발병하고 그 이후에 남자들이 발병합니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이웃 남자는 아마도 살인한 부부중 아내와 외도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아내와 같이 살던 남편도 전염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종구와 같이 다니는 경찰은 아마도 술집 아낙과 섹스를 했을 것입니다. 종구를 보더라도 감염된 사람들과 접촉했는데 전염되지 않습니다. 피 흘리는 것이 몸에 닿았는데도 말이죠.


종구의 딸인 효진을 보면 더 큰 단서가 나옵니다. 다른 집들은 가족 중 누군가 이 병에 전염되었는데 종구의 집은 단지 효진만 이병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아주 친절하게 감독은 효진의 노트에 단서를 남겨놓습니다. 제 예상이 맞다면 효진은 이미 일본인에게 강간을 당했을 것입니다. 노트에는 효진의 모습을 한 여자아이가 허리 밑으로 피를 콸콸 흘리고 있고 여자의 나신을 표현한 그림에는 성기에서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다음장에는 남자의 성기처럼 보이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마지막엔 종구가 꿈에서 보았던 외지인의 괴물 같은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효진이 병에 걸린 이유는 외지인이 겁탈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효진이 걸린 병도?

이런 뉘앙스는 영화 초반 종구와 아내의 섹스 장면을 지켜본 효진의 모습에서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종구는 효진에게 "어디까지 봤어?"라고 부끄럽게 물어보지만 효진은 담담하게 답합니다. 이번만 본 게 아니라고 말이죠. 영화 초반에 큰 웃음을 주는 장면이지만 2회 차를 보고 나니 굉장히 슬픈 장면이더군요. 효진은 이미 외지인에게 강간을 당한 후였고 섹스가 무언지 알고 있습니다. 영화 중반에 종구가 효진에게 외지인과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자 효진은 "뭐가 알고 싶은데? 뭐가 중헌지도 모르면서?"라고 말합니다. 또한 종구가 효진의 몸에서 물집을 확인하기 위해 자고 있는 효진의 치마를 들추자 효진은 "뭐하는 짓이여? 딸 치마를 들추고?"라고 말하며 격렬히 반응합니다. 아동 시기 강간 피해를 당한 여성의 전형적인 히스테리 모습을 보이며 말이죠. 그전에 효진은 비슷한 모습을 보입니다.


영화 내내 마을 사람들이 걸린 병이 무언지 궁금증을 자아냈던 그 병은 성병입니다. 효진을 보더라도 물집은 하반신부터 시작해서 상반신으로 올라옵니다. 중세시대에 성병은 악마가 가져오는 병이라 생각했습니다. 마녀사냥 시 성병에 걸린 여자들을 마녀로 취급했던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여자들은 단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 겁탈당한 여자이자 마녀를 상징합니다. 다른 분이 분석한 글을 보니 성경에 등장하는 나병이라는 말이 있던데 나병은 이런 식으로 물집이 잡히며 발병하지 않습니다.




여러 번 볼수록 더 무서운 곡성


곡성을 처음 볼 때만 해도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볼 때는 무섭더군요. 이미 봤던 장면인데 다르게 보였습니다. 나홍진이란 영리한 감독은 메타포(숨겨서 비유하는 수사법. 중의적인 표현을 써서 유사한 개념을 내포)를 써서 관객이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영화에 빈틈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저 같은 오컬트, 무속신앙, 성경 등의 신비주의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머리 터지게 고민하며 즐기도록 말이죠. 그런데 저는 이런 메타포들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하게 만들고 영화를 본 후에는 고민에 빠지게 만들고 다시 보면 또 다른 해석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90년대 말에 나온 에반게리온이 아직도 많은 오타쿠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머리 터지게 복잡하지만 이런 걸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 때의 희열처럼 느끼는 저 같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이런 콘텐츠는 사실 만들기 쉽지 않지만 한 번 만들어 놓으면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해석이 붙어 콘텐츠를 더 풍성하게 만듭니다.


곡성에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옳다 그르다 말하기 힘들 것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외지인만 보더라도 텐구+악마+적그리스도+일제강점기의 일본인 등으로 해석할 수 있고 무명은 산신+삼신+예수 등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제가 한 영화 해석도 마찬가지로 보아 주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중간에 무속신앙에 기반해 타인이 해석이 잘못됐을 것이다라고 의문을 제시했지만 그건 저의 관점과 입장일 뿐 다른 이들의 해석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기 때문이죠. 단지 다른 뿐입니다.


오늘 2회 차 관람을 하였지만 사실 한번 더 보고 싶은 맘이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열정은 차후에 개봉할지도 모를 감독판을 위해 남겨둬야 할 것 같습니다. 나홍진 감독도 감독판을 이야기하였고 영화에서 무명 역의 천우희가 등장하는 씬들을 많이 잘라냈다고 하니 말이죠. 참고로 저는 천우희 팬입니다 ㅎㅎ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듯 이 영화는 누가 살인했냐 누가 범인이냐가 중요한 영화가 아닙니다. 곡성은 생각보다 치밀합니다. 감독은 이미 영화의 시작부터 곳곳에 낚시질할 미끼를 던져 놓았고 그 낚시에 무엇이 걸릴지는 모르기 때문에 차근차근 이야기를 쌓아갑니다. 곡성이라는 영화안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믿는 종교의 하나님과 악마를 발견할 것이고, 누군가는 저처럼 무속신앙과 오컬트 요소를 발견할 것입니다. 또는 일제 강점기의 한국인을 발견할 것이고, 누군가는 세월호 참사를 발견할 것입니다. 아마도 감독이 미리 던져놓은 떡밥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미끼를 물려고 몰려들 것입니다. 실력있는 강태공은 물고기를 낚지 않고 사람을 낚는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베드로에게 말씀하시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말입니다. 그게 바로 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핵심이며 감독이 바랬던 맥락과 맞닿아 있습니다.




결국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위령제


영화가 개봉 후 나홍진 감독은 영화에 대한 질답을 통해 "곡성의 의미는 떠나보낸 자의 울부짖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만들었는데 피해자에 대한 위로가 되길 바랬다고 말이죠. "죽은 자보다 살아남은 자의 아픔이 더 클 텐데 영화가 전했으면 하는 의도가 있다. 당신이 죽도록 막고자 하는 모습을 봤고 옳은 일을 하고자 하는 걸 봤다. 결과는 안좋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당신의 노력을 봤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은 옳았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합니다.


저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난히도 제 주변엔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자살을 통해 또는 불치병을 통해, 사고를 통해 말이죠. 그런데 저는 죽은 분들의 상황보다 장례식장에서 마주하는 가족들을 볼 때 더 가슴이 미어집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에 대한 애도와 남아있는 억울한 한까지 평생 지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죠.


곡성은 단지 보는 사람들 모두를 가해자로 만드는 영화가 아니라 이유 없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애도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많은 분들이 성경에 근거한 내용을 말씀 주셔서 굳이 성경의 내용을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배우들에 대한 평도 적고 싶지만 그건 뭐 다른 분들이 워낙 많이 적어주셔서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등장하는 모든 연기자가 역대급 연기를 보여줍니다. 촬영과 연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 이상 찍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굉장히 많은 부분 공들인 흔적이 보입니다. 혹시 궁금하신 것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는 내용이고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면 충실히 답변드리거나 글에 더 첨부해서 업데이트하겠습니다.


기나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사족..

페북과 댓글로 질문 주신분이 있어서 몇가지 생각나는대로 적습니다. ^^


출처 : https://www.facebook.com/WSBSBFC


1. 장모님의 악마의 하수인 또는 악령인가?

이게 참 모호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종구의 장모는 직접적으로 악마의 하수인으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영화에 뿌려진 떡밥이 그렇게 보이게 만들죠. 그리고 마지막 종구집안의 몰살 장면에서 등장하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저도 이것이 궁금해서 영화를 보며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장모의 모습은 일광이 사진찍는 장면에서 일광아내의 머리 왼쪽에 장모의 옷을 통해 보여집니다. 단추가 채워저 있고 피가 흥건합니다. 얼굴을 보주진 않지만 살해된 것이 맞다고 결론지었습니다.장모가 외부인과 대화가 없고 종구와만 대화하는 영적인 존재로 보시는 분도 계신데.. 그건 너무 비약적인 것 같습니다. 장모는 종구 가족 모두와 대화하며 같이 밥을 먹는 존재입니다. 또한 자신의 방도 가지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가족의 구성원입니다.


2. 까마귀가 철륭신을 죽였다고 보기엔 애매하지 않은가?

까마귀가 외지인의 사역마라라고 보는 해석에서 그렇다면 일광이 장독을 깨서 그걸 확인할 필요가 없지 않냐고 질문하신 분이 계십니다. 아닙니다. 일부러 확인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무당을 처음보는 사람은 무당을 불신하게 됩니다. 종구역시 마찬가지 였겠지요. 그런데 무당은 굿을 해야 그힘을 확인 시켜 줄 수 있습니다. 일광이 내뱉는 신들린 말은 어찌보면 우리가 경험한 무당들처럼 당연한 소리만 할 수도 있으니까요. 사기꾼들이 이런 수법을 종종 사용합니다. 먼저 계획하고 그 걸 보여주는 거죠. 외지인이 철륭신을 부정타게 하기위해 까마귀 시체를 직접 넣지 않더라도 종구딸을 이용해 가능했을 겁니다. 그리고 일광은 외지인이 알려준대로 종구집에 들어가 그 까마귀 시체부터 사람들에게 확인시키는 거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일광이 신통력이 쌔다고 믿게되는 계기를 제공할 겁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도 그러했으니 말이죠.


3. 마지막 장면. 외지인이 악마의 모습으로 변한건 무슨의도인가?

처음 이야기드렸듯이 나홍진 감독은 영화전체에 훌륭한 떡밥을 뿌려놨고 하나의 장면에 다양한 메타포를 숨겨두었습니다. 마지막 부제가 만나는 악마의 모습은 그 변하는 모습이 부제의 환상을 구현화 한 것일 수도 있고, 단순히 악마의 도래와 종말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여기까지 이야기를 지켜본 너희들(관객)의 생각이 모두 맞았다를 가감없이 보여준 것일 수도 있으며 내가 무엇으로 보이는지는 너희(관객과 부제)의 마음에 달린것이다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장면에서 메타포를 폭발시킴으로써 기존에 깔아두었던 떡밥을 단번에 회수한 것이지요.


4. 독버섯은 무엇인가?

독버섯은 영화에서 여러가지 혼동을 주는 장치로 등장합니다. 최초의 살해자인 이웃남자의 피검사를 했을 때 피에서 독버섯 성분이 다량검출됐다고 나오고 영화의 말미에 뉴스에서 독버섯으로 제조한 건강보조제가 나옵니다. 그런데 관객은 이미 모든걸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미처버린게 독버섯때문이 아닌 것을 말이죠. 여기에 제 견해를 덧붙이자면 그 독버섯의 음용방법입니다. 독버섯은 건강보조제에 담겨있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 건강보조제 누가 먹었을까요? 제가 보기엔 정력제처럼 남자들이 많이 먹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성병에 걸린 남자들이 정력제까지 먹고 결국 미쳐버린 것이죠. 영화에서는 좀비화(피부까지)된 남자가 두명 존재하는데 그 첫번째가 병원에서 기괴하게 죽는 이웃남자. 그리고 진짜 좀비처럼 등장하는 박춘배입니다. 둘다 독버섯이 촉매가 되었을거라 생각됩니다.


5. 불탄집에 종구가 보았던 짐승화한 외지인은 무엇인가?

이부분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영화말미에 종구가 꿈이라고 생각하자 무명이 "그거 꿈 아니여~"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종구에게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무명이 구해줬다는 다른분의 의견이 있습니다. 실제로 종구는 그때 죽었고 무명의 신통력으로 종구를 살려내어 꿈처럼 생각나게 했다는 해석입니다. 호접몽같은 해석이죠. 꿈에서 본 것이 실제고 실제로 경험한 것이 꿈인 그런 상황.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른 가설을 세워봅니다. 그정도의 힘이라면 무명은 굳이 마을사람들을 구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모두 몰살되도 영화 '다크시티'에서 처럼 다시 복구하고 꿈이었다고 하면 되니 말이죠. 그러면 외지인과 밸런스가 맞지 않습니다. 외지인에 대해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 종구에게는 무언가 더 큰 충격요법이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종구가 불탄 집에서 본 외지인의 모습은 무명이 보여준 환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환상을 통해 종구의 외지인에 대한 의심이 증폭되는 것이죠. 또한 무명이 삼신할머니일 경우 꿈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겁니다. 태몽 역시 삼신의 영역이니 말이죠.




이 외에도 많은 질문을 주셨으나 너무 다양해서....글로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해석에는 답이 없습니다. 나홍진 감독도 그걸 노리고 연출의 빈곳을 만들고 중의적 상징들을 나열한 것일 테니 말이죠. 제가 나홍진 감독이 아닌이상 그 어떤 답도 정답이 아닙니다. ^^;


며칠만에 100개에 가까운 댓글이 달렸습니다. 하나하나 읽어보고 제 견해에 바탕해 답변을 달아두었으니 사족외에 더 궁금하신 것은 댓글을 읽어주세요. ^^




그리고 저는 신학도나 민속학자가 아닙니다. ^^;;

자주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제글이 추천된 것을 보았는데 거기에 신학도가 쓴 글이라고 적어 놓으셨더라구요. 저는 신학도나 민속학자도 아니고 영화평론가도 아닙니다. 디자이너입니다. 혹시 기독교적 해석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제가 읽었던 전문가의 리뷰중 가장 좋았던 글을 아래에 링크합니다.

http://goo.gl/d1xXzM


며칠만에 20만건이 넘게 조회되었고 6000건이 넘게 공유되었습니다. 여러면에서 일방적인 해석이라 모자른 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최고의 리뷰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글쓰길 좋아하는 저로써는 황송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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