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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 Jan 06. 2022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 보는 깍두기

독일에 와서 주부 9단에 진입하고 있다.  

  아침에 밥을 먹는데 큰 애가 나에게 "엄마 혹시 깍두기를 담가줄 수 있어?"라고 물어봤다. 나는 큰 애에게 "엄마가 한 번도 안 담가먹었는데 유튜브로 보고 해 보면 되지. 왜 먹고 싶어?"라고 하자 그렇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어머님과 친정엄마에게 김치를 얻어먹었다. 직장생활도 했지만 사실 결혼하고 김치를 해볼 생각을 안 했었다. 나는 김치나 깍두기는 주부 9단이 하는 고단수의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소금으로 잘 절이는 것도 관건이고 속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나서 감사하게도 냉장고에서 김치가 떨어질 때면 항상 채워졌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먹고 싶으면 내가 만들어먹어야 한다. 물론 마트에 가서 김치를 사 먹는 것도 비용적으로 무리가 있고 이제 결혼하지 10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으니 이제 김치나 깍두기에 도전해볼 필요가 있었다. 근데 아마 한국에서 있었으면 도전을 안 했을 것이다.



독일의 무는 우리나라랑 다르게 길다. 근데 당근도 길다. 통통하지가 않다.

 독일에 올 때 김치나 깍두기를 담그기 위해 독일에 올 때 어머님이 고춧가루, 액젓, 꽃소금 등을 챙겨주셨다. 이번에 컨테이너에 김치를 담가먹기 위한 큰 그릇도 같이 왔다. 이제 나만 마음의 준비를 하면 된다. 다행히도 큰 딸이 손이 더 많이 가는 김치보다 깍두기를 먹고 싶다고 해서 고마웠다. 큰 애에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나니 둘째가 이에 질세라 나에게 "엄마 순두부 하는 방법을 안 까먹었지?" 이러는 게 아닌가! 나는 둘째에게 "당연히 안 까먹지. 너는 순두부찌개 먹고 싶어?"라고 하자 그렇다고 했다. 그러더니 "아. 오늘 학교 갔다 집에 왔을 때 순두부찌개가 있으면 좋겠다." 이러는 게 아닌가! 이건 해달라는 소리다.

 아이들은 아침은 매일 한식을 먹지는 않고 와플도 먹고 토스트도 먹고 점심은 등교를 하면 서양식으로 먹으니 매콤한 게 당기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학교 갔다 오면 깍두기랑 순두부찌개를 해둘 테니 학교 잘 다녀오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남편이 회사를 간 사이 독일 마트로 향했다. 독일 마트에는 무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역 주변에 아시아마트로 향했다. 거기에 가면 무나 배추, 생강 등이 있을 거 같았다. 나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고 무와 배추 심지어 생강까지 있었다. 너무 기뻤다. 이제 독일에서 깍두기를 담가먹을 수 있었다. 무가 성공하면 배추로 김치를 해볼 생각으로 우선 무와 생강만 가방에 담았다. 그리고 순두부를 찾았다. 한국 순두부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순두부가 있었다. 다 콩으로 만들어졌으니 맛이 비슷할 거로 생각하고 2개를 집었다. 독일에서 만난 배추는 한국과 비슷한 모양이었는데 무는 위로 길었다. 옆으로 통통하지가 않았다. 생각해보면 독일은 당근도 길다. 그래서 채를 썰 때마다 한국의 옆으로 통통한 당근이 그리울 때가 있다.



맛있는 깍두기가 만들어지면서 나는 주부 9단에 들어가고 있는 거 같다.

  나는 아시아마트에서 기쁜 마음으로 생강과 무, 순두부를 사서 집에 왔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정말 다행인 건 유튜브에 깍두기 담그는 방법이 너무 잘 나와있다.

  우선 무를 잘라 설탕과 소금으로 30분 이상 절여놓는다. 10분 단위로 뒤적뒤적였는데 혹시 실수할까 봐 나는 알람까지 맞춰놨다. 독일에 와서 요리 시계를 하나 구입했는데 정말 요긴하다. 무가 절여지는 사이 양파와 마늘, 생강을 갈고 파를 송송 썰은 다음 액젓과 설탕, 소금을 섞어둔다. 그리고 밀가루와 물을 저으면 끓인 다음 고춧가루를 풀어 풀을 쑨다. 그리고 식으면 아까 만들어 놓은 속과 같이 버무려놓고 무가 잘 절여지기를 기다린다. 나는 40분 정도 절여두었는데 딱 치킨무보다는 딱딱하고 일반 무보다는 말랑거렸다. 속과 같이 무치면 맛있겠다 싶었다. 속과 버무리고 한 입 먹 업보는데 정말 익으면 맛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덕분에 깍두기 만들기가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빵 만든다고 사두었던 계량컵이 요긴하게 쓰였다. 나 스스로 너무 뿌듯했다. 큰 애가 학교를 갔다 오면 좋아할 거 같았다. 깍두기 완성 후 순두부찌개까지 해놨다.

독일 와서 처음 먹어보는 순두부찌개. 나도 오랜만에 먹으니 역시 맛있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서는 이게 무슨 냄새냐며 집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했다. 제일 듣기 좋은 소리다. 나는 맞춰보라고 했다. 둘째는 순두부찌개 냄새가 난다며 좋아했다. 나는 큰 애가 손을 닦는 사이 깍두기를 한 입 넣어주고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얼른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현미밥을 퍼서 순두부찌개와 깍두기를 저녁으로 내주었다. 아이들이 너무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웠다.  

  아이들이 나에게 하나씩 먹고 싶은 것을 해달라고 할 때마다 도전을 하게 된다. 물론 마트에 가서 사 올 수도 있지만 새로운 음식을 도전하며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시간만큼은 정말 행복한 거 같다.

  갓 지은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밥에 방금 만든 깍두기, 뜨끈뜨끈한 순두부찌개가 있는 한국인의 식탁은 빨간색이 가득해서 그런지 더 먹음직스럽고 맛있었다. 나는 오늘 깍두기를 통해 주부 9단에 진입했다. 이제 김치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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