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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에서 쉬는 남자 Mar 19. 2023

요리사를 꿈꾸는 모든 분들에게

나는 삼무요리사입니다.

 최근 단체급식시설 종사자분들의 18%가 폐질환의 노출되어 있다는 인터넷 기사를 보게 됐다. 조리 과정 중 발생하는 '요리 매연' 때문인데 이것이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라고 한다. 나의 노력의 결과물을 누군가에게 대접하는 직업이 요리사인 것까지는 이해하겠지만 이 정도면 생명수당도 함께 나와야 하지 않나 싶다. 오늘도 불철주야로 자신의 생명을 갉아 타인에게 추억과 경험을 제공하는 모든 외식업 종사자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나는 삼무요리사다. 대한민국에서는 학연, 지연, 혈연이 성공하기 위한 3가지 무기라고 한다. 외식업계라고 크게 다르지 않지만 조금 더 세분화하면 조리 자격증, 관련 학과, 관련 인맥으로 나눌 수 있는데 나는 이 3가지 모두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삼(三) 무(無) 요리사라고 나 자신을 지칭한다. 


 지방대학교 4년제 중 2학년까지 하고 중퇴, 심지어 과는 사회복지학부 청소년학과였다. 어릴 때 자주 놀러 간 외가가 강원도 홍천에서 보리밥집을 운영하시는 것, 대학교 때 자취를 하며 식비를 아끼기 위해 TV를 보며 직접 요리를 만들어 먹은 것 외에는 요리와의 접점이 없었다. 쥐어짜 낸 것이 이것이고 억지를 붙이자면 술집 사장이 꿈이어서 관심 정도가 다였다. 그리고 나는 주방장을 따로 고용할 셈이었다.


 그런 내가 전역과 동시에 가세가 기울어짐에 따라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도착한 곳이 주방이었다. 진입 장벽도 낮고, 사회초년생이 보기에는 임금도 높아 보였다. 노동의 강도나 근로 시간등을 생각하면 그 높아 보였던 임금이 턱없이 부족한 것을 알게 된 것은 조금 더 먼 날의 이야기다.


 요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가족을 포함한 모든 지인들이 만류했다. 그만큼 주방 문화에 대한 선입견도 만연했고 애초에 나는 22살까지 요리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인생을 살았었다. 어떻게 보면 주변의 반응은 당연했다. 나 또한 막연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확신이 있었다. '하면 될 것이다'는 주인공 메타의 자신감으로


 그리고 나는 해냈다. 남들이 보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커리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일본의 스타셰프가 컨설팅하는 일식 레스토랑에서 근무해 기반을 쌓고, 중견기업과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 담당자로도 근무를 했다. 그리고 외식업 프랜차이즈 메뉴개발팀에도 입사를 했고 20대에 과장 겸 메뉴개발팀 팀장의 자리에 올랐으며 현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가맹점을 보유한 돈가스 브랜드 외 5개가 넘어가는 다브랜드 프랜차이즈의 메뉴개발팀으로 근무하고 있다. 


 처음 내가 요리를 한다고 했을 때 만류했던 모든 이들은 지금의 나를 보며 대단하다며 치켜세워준다. 하지만 나는 크게 해낸 것은 없다. 단순히 내가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것을 뼈 아프게 인지했을 뿐이고 그 접점을 줄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항상 실천했을 뿐이다.


 걱정하지 말자, 의지만 있다면 당신도 남부럽지 않은 외식업계의 종사자로 나의 인생이라는 유일무이한 요리를 맛있게 만들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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