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말에서 시작된 이야기
뱃속의 아이가 딸이라는 것을 확인한 날, 책장을 정리했다.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은 책장의 가운데 칸, 160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는 작은 키의 내가 앞에 서면 책등이 직선으로 눈에 들어오는 칸에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여성 작가들의 책을 모아 넣었다. 정희진, 은유, 벨 훅스, 버지니아 울프, 수전 손택 등의 책이 나란히 줄지어 나를 지켜봤다.
하루는 물려 받은 동화책을 하나씩 펼쳐보고 전래동화를 솎아냈다. 무구한 소녀가 인당수에 빠져 죽고, 마을의 우환을 물리치는 제물로 바쳐지고, 왕자와 결혼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자 해피엔딩인 이야기들이었다. 아이의 옷가지와 물품들도 흰색, 노랑색, 하늘색을 골랐지만 그것만큼은 이내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후로 선물받은 모든 물건이 분홍색이었으니 말이다.
아이가 젠더에 갇혀 살지 않기를 바랐다. 그 어떤 한계도 틀도 없이 타고난 모양대로 쭉쭉 자랐으면,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돌아보느라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으면 했다. 출산 전의 고민과 준비가 무색하게도 아이가 태어난 후 맞닥뜨린 가장 큰 복병은 나였다. 하얀 찹쌀떡 같은 아이를 바라보면 왜이렇게 가슴이 뜨끔뜨끔한지. “너무 예쁘다”라는 말이 순식간에 목울대까지 차올랐다. 그래도 소리내어 말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물론 맥없이 실패하는 날도 아주 많았다.
나의 걱정과 달리 아이는 자기만의 세상을 멋지게 만들어갔다.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젠더문화에 눈을 떴지만 요술봉을 흔들며 공룡 흉내를 냈고, “공주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말로 드레스를 입은 자기의 가능성을 확장했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도 좋아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엘사. 나의 눈에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연인 크리스토프가 있고, 왕국을 지켜야 한다는 무게도 짊어지지 않은 동생 안나의 삶이 더 좋아보이곤 했지만 아이는 오롯이 엘사에만 열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느닷없이 이렇게 물었다.
“엄마 세종대왕은 여자지?”
“아니, 세종대왕은 남자야. 그런데 왜?”
내가 대답하자 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훌륭한 사람이니까 당연히 여자인 줄 알았지. 왜냐면 나도 엘사같은 왕이 될 거거든.”
이제 겨우 여섯 살이 된 아이에게 옛날 여자들은 왕은 커녕 직업조차 가질 수 없었고, 그래서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를 부정당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못했다. 그저 “너는 자라서 무엇이든 다 될 수 있어”라고 말했을 뿐이다. 동시에 가만히 떠올렸다. ‘네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내가 봐줘야 가능한 일이겠지’라는 갑갑한 생각을. 아이의 미래를 상상하며 황혼육아를 고민하는 내가 영 마뜩잖지만 별 수 있나.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할 때면 막을 도리가 없이 그 생각이 머리를 비집고 나온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나에게 주어진 자유의 시간이다. 아이가 탄 노란색 유치원 버스에 손을 흔들자마자 나는 맞은편 횡단보도를 건너서 스터디 카페에 간다. 프리랜서 집필 노동자인 나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생들 틈 사이에 끼어 청탁받은 기사를 쓰거나, 언론에 연재될 전문가의 칼럼 초안을 읽기 좋게 매만지는 일을 한다. 두어 시간 가량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주로 스터디카페 근처의 빵집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먹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다.
대다수 회사의 근무시간이 6시까지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딱 한 시간만 더 하면 오늘 분량을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즈음, 약속한 듯 오후 4시가 된다. 나는 늘 업무의 20퍼센트 가량을 남긴 채로 가방을 챙길 수밖에 없다. 4시 20분에 셔틀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를 데리러 가려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야 한다. 스터디 카페 앞 횡단보도는 타임슬립. 그곳을 건너면 나는 다시 엄마가 된다. 하이톤의 목소리와 눈웃음을 장착하고, 떼꾼해진 아이를 맞이한다. 다시 육아와 집안일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SNS를 보면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이 사람은 아이를 누가 봐줄까? 이집 아이는 놀아달라고 보채지 않나? 일하고, 육아하고, 살림하면서 책 내고 강연하고 심지어 넷플릭스까지 보다니! 집은 또 어쩜 이렇게 깨끗할까? 하루에 몇 시간을 자는 거지? 그래서일까. 어느 날부터인가 SNS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애면글면 사는 나에게 손 내밀며 지내고 싶어서. SNS를 보면 자꾸만 나를 다그치게 된다. 숨가쁘게 보낸 하루도 단숨에 핑계가 된다. 아이를 낳은 후 지난 몇 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산 시간이었지만 돌아보면 아스라한 연기만 남아 있었다.
세종대왕 이후에도 아이는 어디선가 들은 위인들의 이름을 대며 성별을 묻곤 했다. 이순신, 장영실, 단군 할아버지까지 남자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던 아이가 어느 날, 친척 어른에게 용돈으로 받은 5만원 권 지폐를 보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엄마! 이거 누구야? 엄마가 돈에는 중요한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여기에 여자 왕이 그려져 있어!”
“아… 그 사람은 왕이 아니고, 화가야. 아주 훌륭한 화가였어. 그림을 얼마나 잘 그렸는지, 닭이 진짜 벌레인 줄 알고 그림을 쪼아 먹은 적도 있었대.”
그날 이후 아이가 가장 존경하는 위인은 신사임당이 되었다. 내친김에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도 말해주자 아이는 몇 번이고 “신사임당, 신사임당, 유관순, 유관순”을 되뇌었다. 아마 유치원에서 지식 자랑을 할 때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세상의 훌륭한 위인은 모두 여자일 거라고 생각하는 딸아이의 천진함을 보면 웃음이 난다. 느리더라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용기가 생긴다. 저 당당하고 거침없는 모습은 한때 내것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