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말에서 시작된 이야기
출산 후 몸의 이곳저곳이 변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흰머리다. 하필 숨기기 어려운 정수리 가운데에만 흰머리가 오밀조밀 돋아난다. 그냥 두자니 거슬리고 염색을 하기에는 새치의 양이 너무 적다. 뽑으면 탈모가 생긴다고 단골 헤어숍 디자이너가 겁을 줬지만, 한번 눈엣가시가 된 흰머리는 뽑아야지만 속이 풀린다. 그날도 화장실 앞에 서서 손톱만하게 자란 새치를 쏙쏙 뽑는 중이었다. 쪽집게를 이리저리 뒤집으며 몇 분을 보내다보니 등 뒤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에서 놀던 아이가 어느새 화장실 문앞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는 서른 일곱 살이지? 그럼 내년에 서른 여덟 살이겠네? 그때가 되면 흰머리가 더 많이 나?”
“음, 아마 그렇겠지…”
“괜찮아! 그냥 형님이 되는 것 뿐이야.”
생각지 못한 한 마디에 고개를 돌리고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와 멋진 말이다. 형님이 되는 게 뭔데?” 아이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엄청 좋은 거지! 내가 다섯 살이었다가 지금 여섯 살이 되었거든? 그러니까 유치원에 동생도 생기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엄청 많아졌어.”
그 말을 듣자마자 실없이 웃음이 터졌다. 지난해 유치원에 처음 입학한 아이가 그동안 형님이 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기 때문이다. 형님들은 혼자서 책을 읽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할 때도 절대 잡히지 않고, 코딩을 배워서 로보트를 움직일 수 있다고, 자기도 형님이 되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여러 번 말한 기억이 있다. 아이에게 형님이란 동경하고 닮고 싶은 무언가였다.
“고마워. 엄마가 흰머리 때문에 속상해하는 게 마음에 걸리는 구나?”
“응 엄마가 모르는 거 같아서 알려주려고. 흰머리가 많이 나면 지금보다 더더 형님이 됐다는 거야. 엄마가 사십 살이 되고, 오십 살이 돼도 그래. 더더더 형님이 되는 거야. 그러다가 할머니가 되면 진짜 좋아. 사람들이 아기처럼 잘 챙겨주거든. 어때, 엄청 기대되지?”
더더 형님, 더더더 형님이라고 하니 나이를 먹는 게 꼭 아름답게 그라데이션 된 노을 같다. 머리카락이 온통 새하얀 할머니가 되는 일도 기다려진다. 자기가 어른이 되면 엄마가 하늘나라에 갈지도 모른다고, 더이상 떡국을 먹지 않겠다며 울던 아이가 일년 사이에 이렇게 컸다. 키가 자란 만큼 생각도 자라서 나이 먹는 게 섭섭한 엄마를 위로할 줄도 안다.
아이가 생겨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나이라는 숫자에 덜 연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채 시간만 흐르는 것 같아 불안하고 초조하던 마음이 아이가 크는 기쁨으로 상쇄된다. 그러다가도 돌아보면 몇 년이 쏜살같이 지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곤 한다. 꼭 마디 점프를 한 것처럼 현재의 내가 낯설게 느껴진다. 아이는 이만큼 컸는데…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 거지?
하루는 아이가 “엄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는 질문을 던져서 나를 상념에 빠뜨렸다. 그때 뭐라고 대답했던가. 글쎄… 엄마는 이미 다 커서 뭐가 되긴 어려울 텐데, 라고 말하려다 아차 싶어 숨을 고르고 말했다. “엄마가 글쓰는 일을 하는 거 알지? 나는 계속 글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아이는 알듯 말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 없이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오래도록 나를 보아온 사람들은 왜 요즘 글을 안 쓰냐고 물었다. 더러는 외주 원고 작업 그만하고 이제 네 글을 써야지, 하고 애정 어린 조언을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러고 싶은 욕망이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실은 욕망이 없는 게 아니라 욕망을 품을 수 없는 시절이었다는 것을 아이가 크면서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동시에 노트북에 엄마를 빼앗긴 아이가 내 책상 앞을 베베 도는 모습을 보면 또 다른 욕망 하나가 불쑥 나와 온몸을 소용돌이처럼 휘감았다. 아이를 한 순간도 외롭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모성의 열망이다. 일하는 내가 되고 싶으면서, 일하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다. 언제나 이런 모순이 나를 예민하고 작아지게 만든다.
한참 글을 쓰고 있는 책상의 한 귀퉁이에 피규어 하나가 슬쩍 올라왔다. 노트북에서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들자 아이가 배시시 미소를 짓는다. 문득 일하는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이 궁금해져서 말을 걸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게 뭘까?”
“음… 나쵸랑 맥주?!”
“푸하하. 그럼 엄마가 뭘 할 때 제일 행복해 보여?”
“컴퓨터로 뭐를 막 쓰고 있을 때.”
글을 쓸 때 행복해 보인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들렸다. 올망졸망 작은 눈으로 엄마를 자세히도 관찰했구나. 나는 미안한 마음을 애써 지우고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기 삶을 지키는 엄마를 보고 자란 아이는 자신 또한 그렇게 살아갈 거라고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