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속 반찬보다 차가웠던 대화 하나
며칠 전, 딸아이의 식사를 챙겨주었는지 남편에게 무심히 물었다.
"밥은 먹었대?"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냉장고 열어봤는데, 먹을 게 없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에 살짝 스친 의심.
정말 그랬을까?
부엌으로 가 조심스레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 안엔, 며칠 전부터 내가 차곡차곡 준비해 둔 반찬들이 가득했다.
쌀밥도 있었고, 아이가 좋아하는 나물도 있었고,
내 마음처럼 잘게 썰어둔 채소 반찬도 있었다.
그런데 왜 그는 그렇게 말했을까.
무심함일까, 아니면 그가 보는 세상엔 내가 보이지 않았던 걸까.
내가 이 집에서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이,
그저 투명하게 흘러가는 시간일 뿐인 걸까.
그날 저녁, 우연히 남편과 딸이 나눈 카톡 내용을 보게 되었다.
"엄마랑 너 사이가 껄끄러운 건 안다.
그래도 너가 행복한 게 아빠는 그거면 충분하다.
너는 아빠의 전부니까."
그 말을 읽는 순간, 나는 멈춰섰다.
‘아빠의 전부’라는 말이 내게는 ‘엄마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문장으로 들렸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어진 딸아이의 답장은 조금 낯설었다.
"나 요즘 오빠가 잘해줘서 괜찮아.
오빠가 잘해주면, 난 행복하고 괜찮아."
그 문장에서 나는 내 이름을 찾지 못했다.
그 어떤 단어도, 나를 향하지 않았다.
그저 또 한 번, 이 집에서 나는 조용히 배경이 되어 있었다.
이 집의 식탁을 채우고, 반찬을 만들고,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말 한마디를 아꼈던 나의 하루는
그날따라 참 서러웠다.
나는 분명히 엄마가 되기 위해,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애쓰고 있었는데.
하지만 그녀는 오빠와의 사랑으로 괜찮다고 말하고,
남편은 그게 전부라 말한다.
나는 그 전부의 바깥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냉장고 문을 열고
다시 반찬을 꺼낸다.
누구의 마음엔 닿지 못하더라도,
나는 이 집의 식탁 앞에 아직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