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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수 Jun 21. 2017

그럴 수 있는 거야, 사람이니까

우리들은 옥상에서 무엇을 하나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당시 음악 수업은 음악실이라는 독립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과학은 과학실에서, 미술은 미술실에서, 컴퓨터 수업은 컴퓨터실에서, 그리고 음악도 여지없이 음악실에서. 다만 음악 수업이 다른 이동 수업들과 한 가지 달랐던 건 음악실이 건물 안에 없다는 점이었다. 음악실은 학교 옥상 컨테이너였다. 유난히 많았던 올해 학생 수 때문에 교실이 부족했고, 어쩌다 보니 학교 옥상에 컨테이너를 설치해서 음악실로 사용하게 됐다, 는 게 교장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음악 선생님은 항상 수업시간이 됐음을 알리는 종이 울려야만 음악실 앞에 나타났다. 교실 열쇠는 항상 선생님이 가지고 다녔다. 그래서 미리 교실에 들어가 있을 수는 없었다. 수업 전 쉬는 시간, 아이들은 옥상 여기저기에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기 바빴다. 그런 왁자지껄 틈바구니 속에 조금 다른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다른 애들과 한 번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 하는 거라곤 오로지 옥상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기억을 돌이켜보니 음악 수업 전마다 이러는 것 같았다. 평소엔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던 상대였지만 그 날은 왜 그랬는지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넌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아이는 내 말을 듣고는 나를 쳐다봤다. 오 초 정도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다시 돌리더니,


 "그냥 다. 눈에 보이는 건 다 보고 있어."


 그렇구나, 라는 말밖에 더 할 말이 없었다. 괜히 어색해졌다. 그래도 이왕 말을 걸었는데 바로 자리를 떠나기가 좀 그래서 그 친구의 시선을 따라 나도 난간에 몸을 기댔다.

 내려다본 운동장엔 단 10분이라도 책상 앞을 탈출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득실댔다. 공을 차는 아이, 등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수다를 떠는 아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혼자서 학교 화단을 뱅글뱅글 도는 아이, 과제물인지 종이 다발을 가슴에 품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아이.

 쉬는 시간 학교 교정은 생각보다 많이 분주했다. 친구는 이런 풍경을 매번 이 시간마다 보고 있었다. 그 날부터 나도 어느샌가 음악 시간 전에 그 아이와 같이 난간에 기대어 밖을 바라봤다. 길어봐야 5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꽤 맘에 들었다.


 하루는 음악 선생님이 우리 둘을 발견하고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며 웃으면서 물었다. 특별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고, 그냥 보고 있으면 평화로운 일상이어서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했다. 친구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 다 살아본 애늙은이처럼 왜 그러고 있니? 나이에 맞게 좀 활기찬 맛이 있어야지, 라는 말을 다행히도 듣지는 않았다. 음악 선생님은,

 "나도 한 번 그러고 있어봐야겠네. 요새 정신 사나운 일이 많은데. 너네도 그런가 보다. 그럴 수 있지."

라고 말했다.


 그냥 그런 사람도 있는 거야. 그럴 수 있지, 라는 생각을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사춘기였다. 학생다움, 15살다움, 남자다움, 여자다움, 아이다움 - 그런 '다움'들이 확실히 이 세상엔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그 '다움'을 갖지 못한 사람은 어딘가 모자라거나 이상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확실히 그 친구는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고 평범함과는 달라 보이는 쪽에 속했다. 그놈의 뭐다움이 없어서 또래 사이에서 항상 소수였고, 소외된 자였으며, 그 덕분에 '유별나고 이상함'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속해 있는 무리 없이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던 아이가 그래도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의 표본 중 하나로 인식이 된 건 내 기억 속에서 그때가 처음인 듯하다.




 몇 년이 지나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내가 졸업한 중학교에 동생이 입학할 예정이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무렵, 그 중학교에서 자살 소식을 들었다. 한 여자 아이가 스스로 투신을 했단다. 언제나 그랬듯 왕따가 이유였다. 15살이었다. 내가 음악실 앞에서 조금 별난 친구와 운동장을 내려다보던 나이도 15살이었다. 내 동생이 바라보고 있는 나이였다.


 자기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그 아이는 하늘에 몸을 던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아이가 마지막 날을 보내던 옥상에 음악실이 있었더라면. "너도 그런가 보다.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해주는 음악 선생님이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그 아이는 삶을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기꺼이 누리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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