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수 Jun 16. 2017

어떤 사소함에 대하여

민달팽이를 보고 웃을 수 있다면

 “정말 별거 아닌데 잠시나마 행복했었던 적, 최근에 있어?
 “음.. 그저께 아침. 자연산 민달팽이를 봤어.”
 “민달팽이?”
 “응 민달팽이.”
 “민달팽이를 봤는데 기분이 좋았어?”
 “웃기겠지만 진짜로.”


 사흘 전 날 밤, 새벽 내내 비가 내렸다.
 아침 6시의 바깥공기는 시원하다기 보단 조금 쌀쌀했고, 공기는 전 날 세차게 내린 비의 수분을 머금어 축축했다. 우중충한 날씨였다. 거기에 억지로 나온 아침 운동이었으니 기분이 상쾌할 리가 없었다.


 십여 분을 걸어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에 도착했다. 열 명 정도 되는 아주머니들이 이른 아침부터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었다. 운동장 모래는 푹 젖어있어서 보통날보다는 부드러웠다. 푹신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맨 손으로 짚기엔 작은 돌가루들이 손바닥을 쿡쿡 찔러대는 바람에 아프긴 매한가지였다.


 언제 손바닥 아플 거 걱정해준 적 있었나. 그런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억지로 팔 굽혀 펴기를 해야 한다.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모래바닥에 손을 대고 엎드린다. 그때 내 시선은 딱 한 곳으로 꽂혔다. 갈색 민달팽이. 내 두 손 사이 딱 가운데 즈음에 엄지손가락 절반만 한 크기의 민달팽이가 더듬이를 줄였다 폈다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지어지는 웃음.


 “고작 민달팽이 그거 하나에 그 날 아침이 행복했다고?”
 “뭐 잠시기는 하지만. 기분 좋긴 했지.”
 “신기하다. 내가 얼마 전에 읽은 소설에 비슷한 내용이 있었어.”
 “뭔데?”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야. 어떤 사람들이 야구팀을 만드는데, 이기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플라이볼을 잡으러 공을 쫒던 수비수가 문득 옆에 핀 노란 들꽃을 보고 그게 아름다워서 공 잡는 걸 잊고 그걸 보느라 경기가 중단돼. 상대팀은 어이가 없어서 벙찌는데, 이 팀의 선수들은 아무도 그거에 대해 뭐라 하지 않고 다 이해해주는 거 있지? 진짜 말도 안 되고 웃겨. 근데 네가 그랬다는 거 보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사람이 내 주위에도 있을 법하구나, 싶네.”
 “아, 나도 읽었어 그 책.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야. 작은 거에도 기분이 좋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축복인 거 같아. 근데 최근에 사소하게 행복했었는지는 왜 물어본 거야?”
 “그냥 궁금해서. 요새 우울하고 무기력해서 어디에서 힘을 얻어야 되나 고민이거든. 그래서 항상 웃고 다니는 애들은 무슨 거창한 좋은 일이 있길래 저러나 싶어서 물어봤어.”


 내가 무슨 실성한 사람도 아니고... 나라고 맨날 행운만 가득할 리가 있나. 따지고 보면 짜증 나고 싫증 나는 순간이 더 많다. 근데 그것보다 중요한 건,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정말 당연하게도.




매거진의 이전글 그럴 수 있는 거야, 사람이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