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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수 Nov 10. 2017

"괜찮아요, 당신은 큰 마음을 가졌잖아요."

[세계여행 Day 4]

#1.
 인도에서의 첫날 저녁. 샤워를 하러 샤워실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옷을 벗었다.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나서 샤워기 물을 틀었다. 물이 안 나왔다. 다른 칸에서는 샤워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 이 칸만 안 되는 것 같았다. 다른 칸들은 이미 다른 여행객들이 들어가 있었고, 샤워실 밖엔 남녀 구분 없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에이씨,”
 하는 수 없이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수도꼭지에서 졸졸졸 흘러나오는 수돗물에 머리를 처박고 샴푸를 헹궈내다가 수도꼭지에 머리를 두세 번 박았다. 세면대가 겨우 내 얼굴 크기만 했다. 거기에 머리를 갖다 대니 연거푸 박을 수밖에. 이미 몸에도 물이 다 튄 김에 샤워도 해야겠다 싶었다. 손으로 물을 떠서 몸에 뿌리는 식으로 샤워를 했다.  


 30여분을 그렇게 씻었을까? 미처 비누기가 다 씻기지도 않은 듯한 찝찝한 기분을 뒤로하고 문을 여는데,
 ‘덜컹덜컹’
 문이 안 열렸다. 밖에서 잠겼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파악도 못하겠는데 머릿속은 갑자기 어디론가 내가 끌려가서 끔찍한 일을 당하는 상상으로 가득 찼다. 잠깐 멍하니 문을 쳐다보다가 소리쳤다.

“헲~~!! 헲미! ”

 한 수십 번은 그렇게 소리치자 호스텔 직원이 와서 문을 열어줬다. 알고 보니 내가 샤워실에 들어간 사이 어떤 사람이 ‘샤워실 세 번째 칸은 샤워기가 고장 났으니 고쳐야 할 거 같다'라고 직원에게 말했고, 그 직원이 문을 잠군 거였다. 내가 안에 들어가 있는지도 모른 채로 말이다.

 뭐라 따지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화내는 것도 어이없어서 그냥 허허 웃고 말았다.


새로운 숙소를 찾아가는 험난하고 힘들었다. 이런 골목길을 지나가야 숙소가 나온다니!


#2.
 숙소에서 친해진 덴마크 친구랑 뉴델리 번화가를 가는 길이었다. 계속 직진을 해야 하는데 눈 앞에 6차선 도로가 나타났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오토릭샤들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봤는데 횡단보도는 커녕 신호등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건너가야되나하고 덴마크 친구랑 멀뚱멀뚱 서있기만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젊은 인도인이 가만히 우리를 보더니 역시나 예상대로 말을 걸었다.

 “이봐 친구들 어디서 왔어?”

 흔히 보이는 사기꾼이겠거니 하고 무시하고 있었는데, 길 건너야되는거 아니냐고 다시 물어왔다. 그래서 맞다고 “예스!예스!”하니깐 돌아오는 대답.

 “아이 리브 인 델리. 커먼. 팔로 미”

 그리고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진짜 ‘그냥' 건너기 시작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6차선 도로를 말이다. 오른손을 들어 ‘워워’하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당당히 걸어갔다. 당장이라도 치고 지나갈 것 같이 달려드는 차들 사이로 쏙쏙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다가 덴마크 친구가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따라갔다. 동공이 흔들리고 이게 뭐지 싶었는데 상황이 안 따라갈 수도 없어 “에이씨,”하고 나도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비둘기떼가 우리 머리 위로 지나갔다. 도로를 어떻게 건넜는지 기억도 안난다. 인도 친구는 "굿 럭!"이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유유히 떠나갔다.


저 분이 과연 편한 자세로 자는 건지 불편한 자세로 자는 건지를 가지고 동행이랑 티격태격했다.

#3.
 오늘 아침. 하루 일정을 시작하려 숙소를 나서는데 문 앞에서 호스텔 주인의 친구로 보이는 한 인도인이 말을 걸었다.

 “카메라 좋아보이네요! 딱 보니 돈 많아 보이는데 왜 이런데서 자요? 호텔에서 안자고!"
 "에이, 장난치지마요, 난 가난한 여행자에요. 지금 내 꼴을 봐요!”
 “괜찮아요, 당신은 돈 대신 큰 마음(big heart)을 가졌잖아요. 인도를 마음먹고 온 게 말해주는걸요. 자부심을 가져요, 친구!”



그래 뭐, 여기는 인도니까. 살다보면 살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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