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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야 Feb 26. 2020

단편 영화 <손님>

불이 꺼진 뒤에야, 우리는 진짜 모르는 사람이 된다.

<손님>

2011, 윤가은 감독





 화가 난 모습의 여고생 자경(정연주)이 손에 종이를 한 장 움켜쥐고 어느 집을 찾고 있다. 발로 찬 음료수 캔이 주차돼 있던 차를 맞고 ‘도난 방지 경고음’이 울려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그녀, 과연 그녀는 끝까지 이런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을 것일까.


 윤가은 감독의 영화이다. 초기 단편작이라 최근 장편 작품들과는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여전히 아이들의 시선을 보여주며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자경의 위치는 어른의 위치인가 아이들의 위치인가. 영화의 시작과 끝을 맡은 그녀는 일종의 ‘성장영화’ 주인공의 자리를 갖고 있기에 둘 다의 위치에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그녀의 성장을 설득하고 있는가.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에서 자경의 성장을 먼저 울거나 안타까워하는 시선 없이, 어떠한 음악도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감정의 지침서가 늘 필요한 관객에게는 영화가 지루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러한 선행적인 감정을 보여주지 않고, 자경과 아이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려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도식적인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자경이 그녀의 아빠한테 준 라이터가 그 예일 것이다. 자신이 문구까지 새겨준 라이터, 그 물건이 아이들의 집에 있다. 자경은 그 라이터의 사연은 언급하며 기림의 앞에서 위험하게 켰다 끄기를 반복한다. 분명 이 라이터는 현재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아이들까지 있는 여자가 자신의 아빠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자경의 마음속 그 분노를 라이터라는 상징적인 물건으로 보여주며 그 분노가 아이들에게 해를 가할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 불꽃을 가까이 보고 있는 기림(이지우)을 나루(송예림)가 저지한다. 그리고 곧 자경의 아빠가 찾아온다. 곧 자경은 방안에서 아빠가 그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본다. 흥미로운 것은, 아빠가 나간 후 나루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분노를 표출하는 지점이다. 이 분노는 흡사 자경이 처음 이 집 문 앞에서 드러낸 분노와 같아 보이는데, 이와 함께 라이터를 가져가는 아빠의 행동은 자경의 분노를 가져가는 것으로도 보인다. 다시 말해 불륜을 저지른 이는 나루와 기림의 엄마일 뿐 아니라 자경의 아빠 역시 마찬가지이기에, 분노는 자경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자경과 아이들 세 사람은 함께 라면을 끓여 먹는다. 이때 영화는 세 명 모두 왼손잡이인 사실을 보여준다. 즉, 세 사람이 모두 똑같은 일종의 사회적 피해자 또는 가정에서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곧 아이들의 엄마가 온다는 말을 듣고, 그 엄마를 만나러 온 자경은 집을 나서려 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그녀, 이때 기림이 그녀에게 “근데 언니는 누구야”라며 묻는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모르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이 작품 속 대사 중 가장 좋은 대사일 것이다. 특히 이 대사는 자경의 성장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 아이들은 모르는 사람이었던 그녀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들이 자신과 같은 분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서 라면을 같이 먹은 그들은 서로 더 이상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자경의 아빠가 그녀에게 더 낯선 사람일지도 모른다.(게다가 영화는 아빠의 얼굴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자경은 아이들에게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 것일까. 그 단어는 앞서 말했던 단어와 달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즉 아무것도 몰랐던 무지한 사람임을 아이들에게 고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것도 몰랐던 그녀는 분노를 앞세워 아이들의 집에 찾아왔고, 똑같이 분노하는 나루의 모습을 본 뒤 자신의 행동에 대해 깨닫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영화의 시작에서 그녀가 캔을 발로 차서 울리게 된 ‘도난 방지 경고음’ 역시 의미심장해 보인다.


 말했듯이 이 영화는 음악과 같은 감정의 설명서를 사용하지 않는다. 함께 라면을 먹는 세 사람, 이때 창밖에서 따뜻한 햇빛이 그들을 감싸고 있다. 우리가 굳이 그들의 힘든 감정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안타까워할 필요가 있을까. 그저 서로의 모습을 통해 자신들의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알아가는 그들에게 한 마디 응원의 말을 던져주면 된다고, 윤가은은 이 영화에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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