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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야 Mar 09. 2020

영화 <얼굴들>

스쳐가는 또 하나의 얼굴, 그리고 영화가 된 얼굴들.

<얼굴들>

2019, 이강현 감독


 <얼굴들>은 에피소드 형식의 영화이다. 제목처럼 주요 등장인물들의 ‘얼굴’들을 보여주며 내용이 전개된다. 그런데 내용은 흥미롭게 진행되지만,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사건은 없다. 아니, 사건은 있되 그것들이 캐릭터의 동력이 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영화 속 어떤 사건들이 아닌, 말 그대로 그들의 얼굴들로 보인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면 마주치는 얼굴들이 물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서로에게 거의 영향을 주는 것 같지도 않다. 네 명의 주요 인물들 사이에는 전혀 관계없는 인물들도 있다. 게다가 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내용 안에서 필연적으로 만나야 하는 이유나 이를 통한 내면의 동요 같은 것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혜진(김새벽)과 기선(박종환)은 헤어진 연인 사이인데 그들이 만나는 순간은 과거의 순간, 또는 둘 중 누군가의 회상 안에서 일뿐으로 보인다. 기선과 현우(백수장)는 기선의 일 때문에 우연히 알게 된다. 그러나 그 관계도 얼마 가지 않아 끝난다. 비교적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준 듯한 기선과 진수(윤종석)는 재회하기 전까지 일방적인 관계로 나타난다. 게다가 이들의 관계에서 기선의 행동을 제대로 납득하기 힘들다. 기선이 진수를 돕고자 하고, 축구를 하다가 다친 진수의 부상에 본인도 모르게 격분하기까지 하는 건, 그저 우연히 본 진수의 독사진과 미완성된 생활기록부 때문으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관객은 인물들의 행동을 목격하지만, 그 움직임과 사건들만을 보게 되면 무엇이 그들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보기 힘들다. <얼굴들>은 어떤 형식을 취하고 있는 영화일까.


출처  - 네이버 영화


 어떤 영화를 보다 보면 우리는 장면의 변화는 인지하되 영화가 흘러가는 것을 그저 응시만 하는 경우가 있다. 눈을 떼지 못할 정도의 몰입감을 이끌어 내서인 경우와는 다르다. 무의식적으로 다음 장면과 인물들의 행동을 예상하고 그 예상을 그대로 화면이 보여줄 때 우리는 어떠한 동요 없이 영화와 동행한다. <얼굴들> 역시 각 인물들의 특성을 축적해 놓은 뒤, 그에 따른 관객의 예상과 인물의 행동에 거의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 작품을 감독의 무의식적 흐름에 가깝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순간순간의 질문 없이 영화의 진행을 따라가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을 잃게 된다. 다시 말해 이것은 감독이 연출과 편집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도록 만든 것이다. 빛이나 인물의 상태와 동작, 소품의 배치와 날씨 등의 것들을 두 장면 사이에서 비슷하게 보여주거나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여, 인물과 장소가 바뀌어도 영화는 분위기나 색감을 이어나간다.


 예를 들어, 혜진이 방에서 일기를 쓰다 말고 머리를 침대에 기대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진수를 기다리는 기선이 벤치에 앉아있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때 기선이 몸을 기울이고 있는 방향이 혜진과 같은 방향이다. 시간과 장소뿐만 아니라 인물도 달라졌지만, 비슷한 인물의 모습을 통해 장면의 이음새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현수가 배달을 위해 꽃을 받은 장면 뒤에, 어떤 두 사람이 스튜디오 안에서 꽃을 찍고 있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 꽃이 현수가 배달한 꽃인지 아닌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꽃이라는 시각적 단서를 통해 두 장면에서 인과론적 관계를 느낀다. 게다가 어두운 병원 복도에서 진수가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을 때 공간을 밝게 비추는 불빛은, 혜진의 책상 위에 있는 전등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이 영화는 인물이 매번 달라짐에도 장면과 장면을 계속 이어나가려 한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이런 방식으로 이어가려는 것일까.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작품에서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인물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사건들을 영화가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우리는 혜진이 회사를 그만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혜진이 회사에서 근무하는 과거를 보여주면서도 그녀가 퇴직한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또한, 과거로 보이는 장면에서 혜진의 엄마가 응급실로 가게 된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그 장면이 왜 그 순간에 나왔는지도 알기 힘들다. 이뿐만 아니라, 기선과 진수가 하던 일을 그만두는 이유와 기선이 진수를 도와주는 명분이 영화에서 정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거기다 기선과 진수가 알게 되는 과정이나 기선과 현수가 연락하게 되는 상황은 이해할 수 있지만, 혜진과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주영이 그녀와 어떤 관계이고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특별한 어떤 사건에 신경을 쏟지 않는다. 다시 말해 어떤 사건을 중심으로 영화를 따라가기보다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중간중간 감춰진 각각의 사건들을 기억하며 관객은 영화의 주변을 맴돌면서 쌓여가는 의문스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감춰져 보이는 것들이 전혀 설명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축제가 끝난 고등학교를 보여준다. 축제에 썼던 용품들이 여전히 자리 잡은 텅 빈 운동장, 축제에 썼던 장비들을 가져가는 사람들 그리고 복도를 꾸미고 있던 물건들을 치우는 학생들. 마지막에는 노을 지는 학교의 풍경을 보여주며 음악이 깔린다. 관객은 축제를 보지 못했다. 사람들이 정리하고 있는 물건들만 보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영화는 시작부터 우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축제는 지나갔지만, 정리되는 이 물건들과 정리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떤 축제였는지 추측하고 상상해보라고.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을 단서로 삼고 의문과 함께 따라가야만 그 사건들을 알 수 있다. 아니, 적어도 추측해볼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의문스러운 장면 중 하나는 응급실 앞에서 기선과 혜진이 만나는 장면이다. 갑작스러운 장면이며 현재인지 과거인지 구분이 힘들다. 영화는 적어도 그렇게 이 장면을 시작한다. 그러나 회사에 있다가 바로 온 듯한 혜진의 말을 통해 이 장면은 과거임이 드러난다. 누군가의 회상일까. 그러나 이 장면의 이전과 이후의 장면은 전부 진수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이 장면이 누군가의 회상이 되는 것도 경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장면은 영화가 우리에게 어떤 설명을 위해 보여주는 과거가 아닐까. 이 장면의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자. 혜진의 엄마가 응급실에 실려 왔다. 혜진은 회사에서 도착했고, 기선은 그녀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도착했다. 그러나 기선은 이 상황을 해결하거나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존재가 아니다. 그가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혜진의 말을 들어주는 것뿐이다. 그런데 혜진이 그에게 연락한 이유는 당황스러운 상황 때문일 뿐, 기선에게는 물질적인 것은 물론이고 심리적인 의지를 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혜진은 이제 들어가봐야겠다며 기선을 보낸다. 게다가 기선에게 택시를 타고 가라며 돈을 쥐여준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거기다 돈까지 받았다. 거절할 수도 없는 상황. 어쩌면 서로의 힘든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기에, 그들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장면은 그저 기선과 혜진의 결별과 같은 사건을 추측하기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앞서 말했듯 이 장면의 앞뒤로는 진수가 자리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기선과 혜진의 과거는 또 하나의 의문을 풀 수 있는 장면으로도 보인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또 하나의 의문스러운 점 중 하나는 기선과 진수의 관계이다. 정확히는 그들의 ‘일방적인 관계’이다. 기선은 무조건적으로 진수를 도와주려고 한다. 기선이 진수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학생들의 졸업사진을 확인하면서이다. 정확히 그는 왜 진수에게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려 하기 시작했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응급실 앞에서 만난 기선과 혜진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진수를 돕는 기선의 행위는 자연스러워 보인다. 기선은 과거에 혜진을 어떤 식으로도 돕지 못했다. 이것은 분명 후회의 순간으로 기선에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 그의 눈에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진수가 들어온다. 과거 후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는 기선은 그렇게 진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기선은 학교를 떠난다. 진수는 기선의 도움을 불편해했고, 결국 그는 기선에게 ‘가만히 내버려 달라’는 무심한 말을 남긴다. 도움이 필요해 보였던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려 했던 기선은, 결국 과거 혜진과 있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발견하고 무기력함에 빠진다. 더구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위치에 서 있던 것도 아니었기에, 결국 기선은 학교를 떠난다.


 이런 식으로 <얼굴들>은 설명하지 않는다. 아니, 설명됐다고 여겨지는 부분에서 더 이상의 부가적인 내용은 집어넣지 않는다. 이를 통해 현우가 일을 그만두는 이유, 혜진이 일을 그만두고 엄마와 식당을 하는 이유 등은 직접적으로 그 인과관계를 묘사하지 않음에도 추측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얼굴들>의 인물들이 맞는 긍정적인 변화의 순간 역시 드러난다. 이와 함께 이 작품의 미학은 인물들의 의문스러운 행위들을 파악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단 현우의 경우를 볼 때, 그가 일을 그만두게 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우연히 발견한 어떤 여성이 쓴 ‘일기장’과 어느 날 아침에 걸려온 ‘엄마의 전화’로 보인다. 그렇기에 현우의 선택은 기선과 같은 무기력함에서만 기인하는 것 같지는 않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기선의 마지막 모습 역시 무기력함에서 상당히 벗어난 모습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는 기선이 직접 진수를 만나러 갔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그를 다시 진수에게 보낸 것은 문화회관에서 만난 장관일 텐데, 우리는 그 남자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 얼굴은 볼 수 없다. 그렇다면 기선과 진수까지 알고 있던 그 장관이라는 남자는 누구일까. 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해왔고, 현실과 꿈의 경계선마저도 희미하게 만들며 캐릭터들을 형성해왔다. 그렇기에 진수의 존재를 아는 그 장관이라는 인물과, 기선이 있는 그 공간과 시간은 마치 기선의 꿈속 상황들로 해석될 가능성이 보이고, 이와 함께 그 남성은 기선의 무의식적인 자아로 느껴진다. (이후 혜진이 밤거리에서 자신의 과거 선생님을 만나는데, 카페에서 그녀가 혜진에게 ‘꿈이 무엇이냐’ 묻는 것 역시 연장선으로 보인다.)


 결국 기선은 다시 진수를 만나러 간다. 이전에 그를 돕지 못했던 무기력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리고 두 사람은 재회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는다. 그들의 뒷모습, 이때 진수는 잠시 멈춰서 신발 끈을 묶는다. 분명 혜진은 병원으로 찾아온 기선에게 택시비를 주며 그에게 신발 끈을 묶으라 말한 적이 있다. 도움을 받기만 하던 기선, 그것에 무기력함을 느끼던 기선의 앞에서 진수가 신발 끈을 묶는다. 드디어 기선도 혜진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된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이와 함께 우리는 혜진의 변화 또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혜진 역시 기선에게 도움을 받은 인물이다. 기선과 현우의 마지막 만남 직후의 장면은, 핸드폰을 잃어버린 혜진이 누군가에게 울면서 전화를 하는 장면이다. 다음 장면에서 그녀가 기선과 같이 사는 집에서 자는 모습을 보며, 그녀가 전화하는 장면이 과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선은 분명 혜진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금전적인 부분이나 가족의 문제로 인한 슬픔을 위로해주는 것이 아니라도, 함께 편안히 쉴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런 그녀 역시 지하철에서 잠들어 있는 한 여성에게 도움을 준다. (흥미롭게도 울며 전화를 할 때와 지하철 승강장에서 도움을 줄 때 그녀의 옷은 같은 옷이다.) 그리고 그녀의 변화는 또 다른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혜진이 그녀의 엄마와 함께 식당에서 일했던 장면을 생각해보자.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나간 뒤 테이블을 정리하던 혜진은 전혀 손대지 않고 남은 반찬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버리려던 그녀가 잠깐 멈칫한다. 절대 반찬을 재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던 그녀가 그 찰나의 순간 고민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승강장에서 한 여성을 도와준 뒤 집에 돌아온다. 집에 도착한 혜진은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사과를 꺼내 먹는다. 그러다 양념들이 담긴 접시들을 모두 싱크대에 넣는다. 도움이 필요한 익명의 누군가를 도운 그녀, 먹다 남은 사과와 남은 양념 접시를 본 그녀는 음식을 재활용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은 듯 보인다. 그리고 처음에 쓰다 멈춘 그 일기장을 편다. 그녀는 ‘올 한해 가족들 친구들 모두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내 감사하다.’라는 문장 아래에 ‘다가오는 계절에도 모두들 아무 탈 없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라는 문장을 적는다. 가까운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했던 그녀는, 승강장에서 본 취한 여자처럼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모든’ 사람들의 무탈한 삶까지도 기원하는 변화를 맞이한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과거에 혜진과 회사 동료들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식전에 마시는 물과 식후에 마시는 물, 어떤 것이 맞는 것일까. 위산은 언제 묽어지는 것일까. 누구도 정확한 답을 알지 못한다. 이 이야기 속 인물들의 변화도 그렇다. 그들의 변화는 무의식 속 과거의 회상 때문일까, 아니면 우연히 본 일기장 때문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도움 때문일까. 누구도 정확한 답을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원인으로 짐작되는 이 모든 것들 사이에는 누군가의 얼굴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는 누군가의 얼굴, 우연히 마주한 얼굴, 마주치지는 못했어도 목소리를 들은 듯한 얼굴. 수많은 ‘얼굴’들과 마주하면서 우리는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변해간다. 그리고 또 다른 ‘얼굴‘들에게 변화의 기회를 제공한다. 영화는 이러한 변화의 미스터리를 무의식적인 연출로 설득해낸다.


 수많은 얼굴들이 지나다니는 밤거리, 이때 기선에게 또 다른 얼굴이 다가와 길을 묻는다. 그 남자의 물음은 또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 이 영화 속 그들의 얼굴들은 우리에게 어떤 경험과 변화를 예고하는 것일까.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동안, 그 사이에 당신은 얼마나 많은 얼굴들과 마주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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