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또 다른 시선
2018, 유지영 감독
* 이 단편작은 2018년에 개봉한 <너와 극장에서> 속 세 작품 중, 첫 번째 작품입니다.
* 따라서 작품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너와 극장에서'를 검색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이 단편작에서 내용상 이해 안 될 부분은 없다. 대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선미(김예은)는 조금씩 일상에 적응해나가고, 그러다 누군가 보낸 쪽지를 보고 영화관을 가게 된다. 그리고 길을 잃는다. 그녀가 영화관에서 나가 담배를 피우는 원인이나, 이어서 담배를 사러 갔다가 길을 잃는 것들, 그리고 결국 상영관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게 되는 것까지 돌출되거나 납득되지 않는 상황, 또는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의 행동은 없다. 물론 이해가 잘 된다는 것이 작품의 장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이 작품에는 몇 가지 흥미롭거나 의문스러운 지점들이 존재한다.
마지막 일종의 반전과 함께, 어쩌면 장르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그러한 재미는 6시라는 시간적 제약과 함께 길을 잃은 선미의 다급한 모습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의문점이 발생한다. 그녀가 길을 잃고 헤매는 장면이 생각보다 너무 길다는 것이다. 체감상 영화의 반 이상으로 느껴질 가능성도 있어 보이며, 그녀가 길 잃은 장면은 장르적으로는 효과적이나 시간이 너무 길어, 이에 따른 지루함이 그 효과를 쉽게 잠재운다. 게다가 결국 영화관에 다시 도착한 뒤 그녀가 마주한 결과는 한편으로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감독은 왜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일까.
일단 감독 유지영의 이러한 선택이, 한 작품에서는 쉽게 이해되기 힘들어도, 그녀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면, 이 <극장 쪽으로> 역시 비슷한 성격의 작품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가장 최근작인 <수성못>(2018)이 있을 것이며, 단편작인 <어느 날 갑자기>(2014) 또한 비슷한 인상을 준다. 그렇기에 <극장 쪽으로>의 결말은 일종의 감독만의 ‘스타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며, 최소한의 이해는 가능하다. 그러나 감독만의 방식으로만 이해한다면 독립적으로 한 작품을 파고들어 생각해보는 방식의 필요성은 사라지게 될 텐데, 다시 말해 <극장 쪽으로>는 마지막 허탈한 반전과 함께 인물의 무기력함을 사용해, 관객이 갖는 공감이라는 영역 속 기억을 건드리려는 목적만 가진 영화로는 보이지 않는다.
너무 도식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것들 중 하나는 비행기 소음일 것이다. 아침을 먹다가 소음에 괴로워하는 선미의 모습과 함께, 영화는 선미의 갈등을 일으킬 요소를 공개한다. 그리고 그녀는 점심을 먹으면서도 비행기 소음에 괴로워한다. 이때 ‘소음’이라는 키워드 안에서, 밤에 선미가 영화를 볼 때 밖에서 들려오는 테이프 감는 소리 역시 같은 소음으로 보인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다음 장면부터 그녀는 밥을 먹으면서 소음을 신경 쓰지 않는다. 다시 말해 초반 선미 주변의 소음은 익숙해지지 않은 타지에서의 생활을 대변하며, 얼마 가지 않아 익숙해진 소음은 곧 적응된 대구에서의 일상이 된다. 여기까지가 이 영화의 전반 5분을 할애한 부분인데, 이를 통해 이 영화는 이야기가 무엇을 다루려고 하는 것인지 미리 언질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영화의 시작부터 보여주는 ‘매일 우유’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흑백인가. 이것은 선미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전 안내 데스크 전체를 비추는 풀샷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안내 데스크를 비추는 풀샷은 이 작품에서 두 번 존재한다. 흥미롭게도 흑백 화면은 어떤 물체의 고유한 색이 아닌 채도의 차이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서로 다른 색을 갖는 것들이라도 이는 같은 색으로 보인다. 이러한 원리 덕분에 안내 데스크를 비추는 두 풀샷은 같은 장소임에도 차이가 발생한다. 첫 번째 풀샷은 두 번째 보다 더 멀리서 찍은 덕에 더 많은 물체들의 채도의 차이와 함께 입체적으로 보이는 반면, 두 번째는 아예 카메라가 정면에서 응시하고 하고 있으며 채도를 거의 느낄 수 없어, 거의 평면적으로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두 번째 풀샷 직전에서 우리는 소음이 익숙해진 선미의 몽타주 시퀀스를 보게 된다. 즉, 이러한 연출을 통해 <극장 쪽으로>는 소음마저 익숙해져 버린 일상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대구에서의 일상이 익숙해지고, 일의 특성상 지루한 시간이 많은 선미는 갑작스럽게 출현한 바퀴벌레(로 짐작되는 무언가)를 보고 놀란다. 그리고 늘 가까운 거리에서 일하지만, 교류가 없던 보안남(김판겸)과 말을 트게 된다. 그리고 탕비실에서 차를 타던 그녀는 보안남이 언급했던 ‘운동’ 때문인지 이전과 다르게 자신의 복부에 신경까지 쓰게 된다. 그러한 일상의 작은 변화는 병에 붙여진 쪽지와 함께 선미를 극장 쪽으로 안내한다. 영화를 좋아해도 늘 집에서만 홀로 영화를 즐기던 그녀를. 흥미로운 또 하나의 장면은 그녀가 쪽지에 적힌 ‘오오극장’을 찾는 장면인데, 이를 의문스럽게 만드는 요소는 분명 음악이다. 우리는 단편영화에서 극장으로 향하는, 그것도 일상의 따분함에 탈출구를 향해 어딘가로 향하는 인물이 나오는 장면을, 이러한 스릴러 장르에나 어울릴법한 음악과 함께 마주한 적 있던가. 영화는 계속해서 익숙해진 일상에 대한 경계를 드러내고 있다.
선미는 두 시간이나 일찍 극장에 도착한다. 이때 이 시간 역시 따분해진 일상 속에서 잠시 빠져나온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는 길을 잃는다. 그녀가 길을 헤매는 장면들은 긴 시간과 함께 지루할지는 몰라도 그렇게 단순하게 연출돼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중 하나의 요소는 물론 ‘거울’로 보인다. 이는 일종의 프레임으로 작용하는데, 점점 작아지는 골목의 통로의 끝 역시 하나의 프레임으로 작용하며 선미는 계속해서 그 프레임 안에 담긴다. 이러한 ‘리프레임(reframe)’의 방식은 언급했던 유지영의 단편작인 <어느 날 갑자기>에서 역시 발견할 수 있는데, 덕분에 이 역시 한편으로는 오직 감독만의 스타일로만 치부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약속 시간에 늦을지도 모른다는 다급함을 점점 사라지고, 계속되는 프레임들과 함께 이 시퀀스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많은 영화들이 그래왔듯, 언급한 ‘리프레임’ 방식은 어떤 작품이 영화라는 예술의 속성과 그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표현하려는 시도로 작동한다. <극장 쪽으로> 역시 영화를 보는 감독의 시선을 반영한 것처럼 보인다. 선미는 계속해서 프레임 안으로 들어간다. 영화를 보러 온 그녀는 점점 영화 안으로 들어가며 영화 자체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극장 쪽으로>는 익숙한 일상, 따분한 일상에 대한 영화이다. 그리고 그것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한 지루함은 선미가 길을 잃는 긴 장면을 통해 관객들에게 직접 그 지루함을 체험시킨다. 다시 말해 선미는 이 작품 속에서 점점 익숙해지는, 어디서 본 듯한 일상적인 영화 자체가 되어간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있는 우리 역시, 늘 새로운 시선을 추구하지 않고 비슷한 영화들만을 소비하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 영화는, 좀 더 정확히는 대구 출신의 감독 유지영은 우리에게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방식을 말하고 있을 뿐, 질책하거나 젠체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또 하나의 장면으로 알 수 있어 보인다.
그렇게 한참 동안 헤매다 마침내 선미는 다시 극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상영관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상영관을 나온다. 이때 우리는 너무나 이상한 것을 목격한다. 선미가 상영관을 들어갔을 때, 그녀의 바로 뒷좌석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다시 나오기 직전에 카메라가 상영관 전체를 보여주는 순간, 그녀의 뒤로 한 남자가 함께 영화를 보고 있다. (분명 적지 않은 이들은, 일종의 ‘옥에 티’로서 이 영화가 굉장히 안일한 촬영을 한 것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여기서부터 이 글은 이 장면을 옹호하는 방식으로 보일 가능성 역시 높아지겠지만, 조금 더 밀고 나아가 보려 한다.) 어쩌면 차이가 나는 두 순간은 이 영화 안에서 서로 다른 공간일지도 모른다. 선미는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프레임들에 갇혀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상영관으로 들어온 순간, 그 짧은 순간에 다시 영화 밖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 영화에서 있어서는 안 될 실수라 말할지도 모르는 방식을 통해, 감독 유지영은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생각하게 된 메시지를 전달하며, 동시에 일상에 익숙해져 버린 선미라는 캐릭터의 변화를 예고한다. 따라서 선미가 마지막에 발견한 쪽지들은 한 사람의 하루를 허무하게 만드는 반전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에서 작은 것 하나하나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고민하는 방법을 말해주는 것처럼도 보인다.
다음날도 일상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선미는 문 아래 구멍을 통해 또다시 우유를 꺼낸다, 이때 다른 손들도 똑같이 우유를 꺼낸다. 우리는 그 다른 손들이 우리의 손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매일 다른 영화를 본다고 해서, 우리는 매번 다른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익숙하고 지루하지 않은 일상을 위해서 달라져야 할 것은 영화일 것인가, 아니면 우리 스스로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