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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야 Apr 16. 2020

단편 영화 <만일의 세계>

아는 자의 안간힘. 언젠가 그 몸짓을 하는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

<만일의 세계>

2014, 임대형 감독


*현재 이 작품은 유튜브에서 보실 수 있으며,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NHgjbp-rf4&feature=emb_logo






 오후부터 노을 지는 때까지 이별의 순간을 담은 이 작품은 이처럼 단순한 내용이지만, 모든 장면을 순서대로 나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이별의 직전까지 온 연인의 마지막 하루를 단계적인 감정의 고조 순서로 보여준다기보다는 같은 장소에서 이별하는 과정의 파편들을 보여주기에, 그 순간들이 갑작스러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이것은 마지막 진짜 이별의 순간을 제외하고 전부 따로 작동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촬영 당시의 의도치 않은 상황으로 보이는 순간적인 날씨의 차이 역시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게다가 이 작품 속 만일(배유람)의 캐릭터 역시 그 기능에 일조한다. 그의 캐릭터 역시 충분히 영화적인 캐릭터이지만, 작품의 제목부터 나타나는 그의 존재를 고려해보면 꽤나 수동적인 인물이기에, 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그의 여자친구인 주희(박주희)로 보이기 쉽다. 또한 만일은 수동적일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의 방식처럼 갑작스러운 행동을 보인다. 취업 때문에 바쁜 주희를 연락 없이 찾아오는 행위나, 말없이 사라지는 것 등으로 설명이 될 텐데, 이러한 방식의 캐릭터는 주연이 아닌 조연의 자리에 걸맞아 보이는, 일종의 기능적인 캐릭터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런 인물의 마지막 몸짓을 보면 스스로 판단한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것처럼 보이며 전혀 기능적인 인물이라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간 이 영화가 묘사한 그의 모습을 상기해본다면 마지막의 그 행위 역시 갑작스러워 보이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구조적인 부분과 캐릭터의 어긋남은 분명 작품의 부족한 완성도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럼에도 언급했던 마지막 만일의 몸짓은 갑작스럽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을 마주하는 순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 작품에서 핸드헬드로 촬영한 유일한 장면이라는 기술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제목부터 흥미로워 보일 수 있는 이 작품은, 그 다섯 글자마저 기울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물론 이 제목에서의 ‘만일’은 주인공의 이름이지만, 주희가 그를 부를 때를 생각해보면 영화는 그 순간마다 일종의 ‘가정(假定)’의 모습을 의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영화의 제목이 나타나기 전 잠시 보여주는, 두 사람의 과거 모습으로 추측 가능한 그들의 대화와, 두 사람이 정자에 앉아 말하는 노을 너머의 또 다른 세계를 생각해보면, 그들이 있는 곳 자체가 ‘만일의 세계’, 또는 ‘가정의 세계’, 즉 일종의 ‘불완전한 세계’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또한 그 세계의 사는 인물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스튜어디스를 준비 중이지만 될 거라는 확신을 거의 갖지 않아 보이는 주희, 그리고 초반에 ‘춤추는 남자’가 이 ‘만일의 세계’에 사는 불완전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은 이런 식으로 개인의 내면에서만 발현되어 보이지 않는다.


 만일은 “그니까 그때 우리가 그 구멍 안으로 빨려들어 온 거지.”라는 말을 한다. 여기서 ‘그때’는 이 작품의 가장 첫 장면일 것이다. 나란히 노을을 바라보는 두 사람, 여기서 주희가 그에게 할 말이 있다고 말한다. 그 할 말은 분명 그들이 연인이 되기 직전 그녀의 고백일 것이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그 고백의 순간, 그들은 이 ‘만일의 세계’로 빨려 들어온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비유적 표현인데, 그렇다면 그렇게 또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왜 고백의 순간 또는 사랑의 순간일까. 임대형 감독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선택의 이유를 추측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경우, 두 남자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 상황은 불안함을 동반한 모습으로 드러나는데, 특히 모금산의 과거로 연결되는 스데반의 어머니에 대한 생각과 여자친구와의 위기감이 그것이다. 또한 임대형 감독의 최근작인 <윤희에게>에서 역시 주변의 곱지 못한 시선 속에서 피어나고 시들어버리는 사랑의 모습들이 시각적인 연출들과 함께 불안함을 동반한다. 다시 말해 임대형의 이야기는 다양한 감정을 묘사하지만, 그중에서도 사랑이라는 영역에서 우리는 늘 불가피한 불안함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결국 ‘만일의 세계’는 사랑의 시작과 함께 무의식적으로 들어가게 되는 ‘가정’의 세계이자 불완전한 세계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불완전한 사람은 만일로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겉으로 정말 무지하고, 더 나아가 답답한 인물로 보인다. 연인인 주희의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노을을 보기 위한 장소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 그 이유일 텐데, 흥미롭게도 마지막에 노을 앞에서 주희가 만일에게 건네는 대사를 상기해보면 만일의 행위들이 단순한 무지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판단을 재고하게 된다. “너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다 알고 있잖아.” 

  

 주희는 계속 만일에게 할 말이 있다. 관객 역시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게다가 처음 시작부터 그녀는 만일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는데, 언급한 것처럼 과거에 그녀가 노을 앞에서 그에게 전하려는 것은 사랑 고백일 것이다. 그런데 만일은 그 소리를 못 들은 듯 갑자기 앞에 보이는 태양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다. (이 글이 길어지는 모습을 굳이 보고 싶지는 않지만, 작품 속의 정확한 대사를 언급하는 것은 이 작품의 빛나는 순간을 좀 더 설득력 있게 그려낼 수 있다는 판단에 의한 선택이다.) “해가 아니라 구멍이야. 저 구멍 안에 다른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거지.”, “빨려 들어갈 것 같다.” 마지막 만일의 몸짓과 함께, 이 작품의 가장 큰 빛을 담은 듯한 이 대사는 한편으로는 주희의 말처럼 ‘하나 마나 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만일이 무지한 인물이 아닌, 주희가 할 말을 모두 알고 있는 인물이라면, 이 작품이 사랑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영화적이고 감각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일은 주희가 할 말이 있다고 할 때마다 그 순간을 외면하는 태도를 고수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을을 보기 위한 장소를 찾지 못하는 그의 행동 역시 의도적인 무지의 태도로 추측이 가능하다. 이별을 예상한 남자의 외면, 그렇다면 왜 예상한 주희의 고백 역시 외면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는 사랑이라는 불완전한 세계를 예상했던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주희의 고백을 통해 언젠가 중단될 수 있는 사랑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경계했던 만일은 그녀의 고백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의 말처럼 그 불완전한 세계가 뿜어내는 빛이 저도 모르게 빨려 들어갈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경계하는 불완전한 세계는 늘 이러한 아름다운 노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느 연인들처럼, 그리고 만일이 예상했던 사랑의 모습처럼 그들에게도 이별의 순간이 다가온다. 이미 그 순간을 예상했던 그였기에, 눈부시게 빛나는 구멍으로 들어온 만일은 그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려 애쓴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은 나란히 노을 앞에 선다.



 그러나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다. 불완전한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불완전한 정도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뿐이다. “여기선 살아가는 뭔가를 위해서 춤을 추는 거야. 이 세계에서 춤을 춘다는 건 목숨을 걸고 사랑한다는 뜻인 거지.” 결국 그 불완전함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랑을 이어가야 하는데, 이별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은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막으려 하며, 이는 불문율인 춤으로 발현된다. 그리고 마침내 만일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만일의 마지막 춤은 인물의 감정을 영화적으로 잘 표현한 방식일 텐데, 이 춤은 그가 언급한 것처럼 목숨을 걸고 하는 행위이다. 이때 그 ‘목숨’이란 단어는 이 작품을 보는 또 다른 태도를 이끌어낸다. 불완전한 만일의 세계는 불완전한 사랑의 세계이다. 끝날 것을 알고도 들어오게 되는 세계. 그 선택을 한 이들은 그 불완전함을 오롯이 감당하게 되며 사랑 앞에서 결국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게 되는 혼란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렇게 만일의 마지막 모습은 이별을 외면하려는 몸짓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 스스로 움직이는 자의 안간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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