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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야 Jul 29. 2020

영화 <하트>

솔직함에 대한 고민이 만든, 그녀의 흥미로운 변화

<하트>

2020, 정가영 감독


*정가영 감독의 단편작들은 유튜브를 통해 보실 수 있으며,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GqPnH9L-2sJKOV8h9oEujw



 정가영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이다. ‘여자 홍상수’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그녀이기에 이번 작품 역시 우리가 생각했던, 또는 기대했던 순간을 보여준다. 그것은 분명 대사에서 찾을 수 있을 텐데, 이전 두 장편에서 많은 대사를 통해 우리가 마주한 정가영의 이야기 속 매력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그녀의 작품 세계는 영화 속 이야기나 상황을 위해 대사를 만들어낸다기보다는, 관객을 포함한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대화를 영화로 만들어내려는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이것은 그녀가 늘 직접 자신의 작품 속 주연을 맡는 사실, 그리고 독립 영화라는 특성과 함께 가능했을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 감독의 작품들에서 기대하는 특정한 매력을 보는 것은 좋지만, 만약 늘 같은 방식으로만 표현되고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관객은 초기에 느낀 매력을 더 이상 장점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될 가능성도 커진다. 결국 한 창작자의 작품들은 전체를 관통하는 매력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나름의 변화 역시 갖출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정가영 감독의 <하트>가 듣는, 이전 작품들과 비교해 거의 변화가 없다는 목소리들이 늘어나는 것은 아쉽지만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 번 묻고 싶다. 정가영의 특색을 갖춘 <하트>는 이번에도 거의 변화의 순간을 갖지 못했나.


출처 - 네이버 영화

 

 언급한 것처럼 정가영의 작품들은 대사를 통해 매력을 증폭시킨다. 어쩌면 대사가 그 매력의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대사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떤 사유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인물이 고민하는 과정, 그 순간에서 튀어나오는 솔직함을 연료 삼아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이 방식은 기대 이상의 힘을 갖는 것 같다. 게다가 직접 연기에 참여하기에 더욱 효과적이다. 그런데 그 ‘솔직함’은 노골적인 순간과 진심의 순간, 그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며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지만, 그러한 일종의 자극적인 순간들은 시간이 갈수록 작품이 나올 때마다 설득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커진다. 분명 관객이 갖는 무언의 요구뿐 아니라 창작자의 욕심을 통해 생기는, 언급했던 하나의 변화에 의한 결과일 텐데, 그저 눈과 귀를 잠시 사로잡기 위한 장치가 되어버린다면 이는 작품 자체에서 벗어난 순간을 만들어내거나 돌출적인 장면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하트>에서 역시 그러한 자극적인 변화로 보이는 순간이 존재한다. 


 물론 세 번째 장편작이기에 몇 장면을 통해 그것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너무 앞서나가는 판단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작품 속 정가영의 솔직하고 대담한 대사들은 여전히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엄마, 나 좋아하는 애랑 뽀뽀하고 싶은 애가 달라.”나 “나 그 사람 생각하면서 해도 돼?”가 바로 그 예시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극을 위한 순간들은 무엇인가. 가영과 성범이 섹스를 할 때 가영의 하반신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성범이 말하는 “엄마, 나 며칠 전에 엄마 생각하면서······.”와 같은 대사들이다. 정가영의 작품 세계 속 일부이지만, 이야기적 맥락을 뒤로한 채 상당히 돌출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세 번째 작품의 변화가 이렇게 단순하고 노골적인 것뿐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어 후반부에서는 어떤 변화의 모습보다는, 예상했던 창작자의 특징만을 택해서 보게 되는 관객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좀 더 흥미로운 변화가 이 작품에서 보였기 때문이리라.


출처 - 네이버 영화


 우선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라면 내러티브의 비선형성일 것이다. 물론 전작인 <밤치기>의 경우, 가영의 상상 속 장면과 마지막의 외출 준비 장면을 본다면 이것이 처음 시도한 방식이라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하트>에서의 편집은 일종의 결심처럼 느껴지며 이와 함께 그 ‘변화’를 좀 더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영과 성범은 키스한다.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은 음악과 함께 밖으로 나온다. <비치온더비치>에서 키스 후의 장면은 시간 순서에 맞춰져 있고, <밤치기>의 키스는 상상이기에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런데 <하트> 속 키스는 잠시 중단되고 시간과 장소가 바뀐다. 정가영의 작품 속 변화는 이렇게 예고된다. 


 그리고 가영과 재섭이 만나는 순간 우리는 앞서 본 이야기가 전부 이 작품 속 또 다른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순서를 아예 뒤바꾼 것이다. 보통 창작물과 창작 과정을 담은 작품들의 경우를 보면 과정을 앞에 두고 결과물을 뒤로 배치함으로써, 과정에서의 고민과 창작 요소들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를 흥미롭게 표현한다.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와 심찬양 감독의 <어둔밤> 등이 그런 예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정가영의 <하트>는 결과를 먼저 보여주는 방식을 취한다. 물론 이렇게 순서를 바꾼다고 큰 차이가 생기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가영과 재섭이 만나 우리가 앞서 본 이야기를 생각하며 과정과 결과를 연관 짓는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보통 창작 과정에서 본 요소들이 결과물에서 재배치 됨에 따라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 <하트>의 경우 결과물이라 생각하지 않던 결과물을 보고 난 뒤 과정을 보는 순간, 과정의 요소들보단 감정을 우선시하게 된다. 그리고 그 요소들에 대한 해석은 좀 더 쉽고 명확해지기도 한다.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경우가 바로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을 텐데, 결과물을 보고 난 뒤 과정을 보며 우리는 창작의 ‘고통’과 ‘노고’ 같은 감정적인 부분을 좀 더 쉽게 인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트>에서의 그 감정은 어떤 것일까.


출처 - 네이버 영화


 가영과 재섭이 처음 만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자연스럽게 재섭이 가영에게 작품에 대한 질문을 한다. 이때 ‘GV’라는 단어마저 언급되며 가영은 마치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것처럼 말을 시작한다. 그리고 재섭은 이 이야기를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을 하고, 가영은 당황한다. 그런데 재섭의 이 말은 실제로 감독 정가영이 들어봤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스스로 질문한 것일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영화 속 인물인 재섭은 정가영이 만들어낸 또 다른 그녀 자신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가능하다. 창작 활동에 있어서 일종의 슬럼프로 보이는 이 순간은 분명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그것은 곧 정가영의 작품 세계가 어떤 변화의 순간을 마주한 것처럼 보인다. 결국, 앞선 가영과 성범의 이야기는 감독이 자신의 고민과 변화의 순간을 담은 하나의 결과물이리라.     

 그럼 이것은 어떻게 설득이 되는가. 드러나는 부분은 분명 존재했다. 언급했던 비선형적인 편집이 그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가영이 그림을 그리다 말고 성범에게 그림이 어렵다는 말을 한다. 그림을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은 체 하는, “머리로는 알겠는데 자꾸 손이 일로 가.”, “그니까, 네가 네 고집을 눌러야지.” 그리고 “그림 잘 그리는 사람 순대로 줄 세우면······.” 등의 대사들은 작품에 있어서 그녀 스스로 뭔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한 모습으로 쉽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성범은 어떤 존재인가. 후반부에서 가영과 성범이 있던 미술실에 가영과 재섭이 마주하고 앉아있다. 이때 흥미롭게도 성범의 자리에는 가영이, 앞선 가영의 자리에는 재섭이 앉아있다. 게다가 가영은 성범처럼 맥주를 권한다. 이러한 배치는, 어쩌면 가영을 향한 성범의 말들은 감독 정가영이 스스로에게 하고자 했던 말일지도 모른다고 말해주는 듯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엉성해 보이기까지 한 화장실 장면에서 가영과 성범은 서로의 가짜 존재와 마주하는데, 이때 가짜 존재들이 하는 말들은 각자 스스로에게 하는 말로 보이며, 이와 함께 “성범아 나 무서워하지마.”라는 가영의 대사는 좀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다시 말해 우리는 일종의 ‘딜레마’에 빠진 정가영의 모습을 영화라는 창작물을 통해 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매력이었던 정가영의 솔직함은 어느 순간 그저 순간적인 자극제에 지나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럼 그녀가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솔직함은 대사에서만 존재했을까. 흥미롭게도 영화와 영화 밖의 경계를 보여주는 것이 그녀의 또 다른 솔직함이었다. 단편 <조인성을 좋아하세요>의 경우를 보면, 초반에 정가영이 맡은 이야기 속 가영이라는 캐릭터를 보며 우리는 하나의 이야기를 마주한다고 생각하며 바라보지만, 실제 특정 배우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야기가 아닌 실제 상황과 마주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또한 단편 <내가 어때섷ㅎㅎ>에서는 가영이 연기 속 또 다른 연기를 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야기 속 주인공의 마지막 감정이 실제 그녀의 감정이지 않을까 하는 무의식적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정가영은 여전히 <하트>에서도 두 가지 이야기를 통해 그 창작 과정과 결과물의 경계를 보여주며 좀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어떤 변화를 드러낸다.


 그렇게 가영은 성범과 헤어지고 재섭과도 헤어진다. 재섭은 가영의 영화에 출현하지 않지만, 그녀는 또 한 번 솔직함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은 듯 보인다. 재섭의 말을 듣고 재수 없다고 말하는 가영, 이는 본인의 무의식적 고민에 대한 짜증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영은 재섭에게 한 번 안아달라 말하고, 재섭이 돌아온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가영은 성범과 함께 있을 때 분수가 설치된 물속에 동전을 던졌다. 돈을 버리는 행위, 정확히는 돈을 버리는 듯한 행위. 이는 영화를 제작하는 누군가의 행위를 바라보는 제삼자의 시선일지도 모른다. 정가영은 그것을 인정하는 듯 직접 동전을 던졌다. 그리고 다시 재섭과 분수가 있는 물 앞에 섰다. 환한 낮이고 분수가 솟고 있다. 창작자의 모습은, 특히 영화를 만드는 이의 모습은 <하트>에서와 같이 분수도 작동되지 않는 곳에 앉아 밤에 동전을 버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다시 해는 뜰 것이고 분수는 작동될 것이며, 그녀는 그 앞에서 다시 한 번 영화를 만드는 자신을 마주한다. 

   

 “자꾸 정이 가서 정가영인가?” 


 고민에 빠졌던 정가영은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응원과 함께 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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