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분명 대부분의 이들이 9화의 시작이 지난 회차의 마지막 장면과 곧바로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황시목과 김사현의 대화로 시작하며, 서동재가 죽게 됐을 때 그 범인이 경찰이라는 상황을 주제로 한다. 경찰의 입지는 낮아지지만, 정부의 행동에 따라 ‘검경국지전’이 검찰과 정부의 ‘전면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 놀랍고도 당황스럽다. 벌써 9회차까지 달려왔고, 이 이야기의 판을 어디까지 키울 것인가. 그러나 이것은 만약 일뿐 너무 거대한 담론이 될 테니 거기까지는 가지 않겠다는 듯, ‘이번 정권도 수사권은 건드리지 못한다’는 김사현의 대사로 대화는 일단락된다. 그러니 경찰을 아닐 것이다, 라는 우리의 생각은 10화의 마지막 장면들과 함께 보기 좋게 빗나가고, 이번에도 단순하지 않은 이 작품의 끝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배가된다.(혹시 정부와의 갈등은 다음 시즌을 위한 요소인가, 라는 기대도 조심스럽게 해보고 싶다.) 또한 오로지 극 중 사건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닌, 외적인 것들에 대한 언급을 통해 흥미로운 부분들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 이번 9, 10화의 매력일 것이다.
넥타이와 추측
피 묻은 넥타이 사진이 나왔다. 서동재가 사건 당일 매고 있던 넥타이는 맞지만, 수사의 진전을 위한 요소가 되지는 않아 보인다. 물론 마룻바닥이라는 단서를 통해 한여진으로 하여금 용의선상에 올릴 또 한 명의 인물을 의심하게 되지만, 오히려 이것을 보낸 범죄자의 의도가 무언지만 파악하고 그가 거주하는 공간이 어떤 특징을 갖는지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더구나 이번 주 회차에서 수사가 효과적으로 진전되는 이유가 서동재 PC의 인터넷 사이트 접속 기록이나, 목격자의 존재라는 점에서, (10화의 마지막 장면이 있기 전까지)넥타이 사진을 통해 범인의 특징을 전혀 유추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 시리즈의 매력 중 하나인 황시목의 시뮬레이션과 연출력 짙은 그의 상상 씬들의 경우, 이번 주 회차들에 있어서는 그간의 모습들보다 효과적이지 않았다. 9화에서 피 묻은 넥타이를 카메라로 찍는 범인의 모습을 보는 상상이나, 범인이 서동재를 가위로 위협하는 모습을 보는 상상, 10화의 경우 죽은 박광수가 있었던 도로에서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이 바로 그것들인데, 범인의 심리를 파악하려던 9화의 방식은 물증으로서 접근한 것이 아니기에 효과가 없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해도, 10화의 경우도 큰 성과를 얻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러한 장면을 넣은 이유 중 하나는 시리즈의 톤을 유지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만약 황시목과 한여진을 중심으로 한 사건에 대한 추리 내용을 전달한다면, 대사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시즌을 되돌아봤을 때, 설명이 많아지는 부분들이 특정 장면을 통해 대체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9화에서 황시목, 한여진, 최윤수가 이야기하는 부분이 하나의 예시가 될 텐데, 범인이 사진이 아닌 진짜 넥타이와 편지를 보내왔을 경우 진행되는 수사의 방식을 직접 장면으로 보여줌으로써, 많은 양의 대사가 피할 수 없는 지루함을 최소화시킨다. 마찬가지로 황시목의 상상 장면이나 시뮬레이션이 직접적으로 수사의 진전이 될만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어도, 대사를 통해 전달해야 할 사건의 심각성과 수사의 난항을 흥미롭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의 특색인 것을 상기시킨다.(물론 너무 자주 보게 된다면 단점이 될 수밖에 없다.)
수사의 진행과 시간
언급한 것처럼 넥타이 사진을 통해 황시목은 제대로 된 단서를 얻지는 못했다. 10화의 마지막에서 최윤수가 단서를 찾아냈지만, 이는 조금 갑작스러워 보인다. 9화에서 그가 언급한 ‘미국 영화에서나 하는 짓’을 포함하는 듯한 방식이다. 이 시리즈는 범죄의 실상을 밝혀내는 것에서 볼 수 있는 현실적인 부분을 동력으로 삼는 것이지, 과학의 진보를 통해 많은 범죄자들을 거짓말처럼 잡아내는 것을 보여주는 장르물과는 다르다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이 경우는 조금 아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사진 분석의 절차와 그 과정에 좀 더 시간을 썼더라면 괜찮았을까. 그런 점에서 황시목이 9화의 후반에 가서야 서동재의 인터넷 사이트 접속 기록을 받게 되는 것은 조금 느려 보일 수 있지만, 긴장감이 줄어들거나 갑작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말한 것처럼 이 작품은 범죄를 밝혀내면서 그 안에 돌아가는 시스템이나 이해관계를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동재가 납치된 뒤 적잖은 시간이 지나 황시목이 사이트 접속 기록을 받고 박광수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시청자들이 상황에 대한 심각성과 긴장감을 체험하는 시간을 제공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단계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우리가 마주하고 이해하기도 전에 범인이 밝혀지고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사진을 통해 단서를 발견한 최윤수가 미국 영화를 언급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는 유감의 표현처럼도 보인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회차들이 갖는 흥미로운 점들을 더 언급해본다면, 그 중 하나는 10화의 후반부일 것이다. 목격자가 발생하고 경찰들은 영장 청구부터 시작해 그와 통화까지 하게 된다. 물론 우리 역시 그 절차가 당연한 것을 안다. 그런데 그 단계적인 시퀀스에 할애된 시간은 5분이다. 이 짧은 장면을 위해 사용된 장소를 나열해보자. 경찰이 영장을 건네받는 장소, 영상 플렛폼 본사로 지정된 건물 앞, PC방, 해당 카드의 본사 그리고 이동하는 차량의 모습까지. 영장과 영상의 정보를 들고 PC방에서 만나는 장면부터 해도, 이미 긴장감은 조성됐기에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한 사건을 위해(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라는 게 사실이지만,) 진행되는 수많은 절차를 보여주기 위한 시도로 보이며, 적잖은 고생이 요구됐을 이 결단은 이 작품이 내포하는 작품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이야기의 태도
또한 9화 초반, 경찰들이 용산서 앞에서 실종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흥미롭다. 피해 당사자의 최측근은 심각하게 걱정하는 입장인 동시에 의심까지 받는 존재가 되다는 사실을 통해, 실제로 하나의 사건을 두고 얼마나 많은 경우의 수가 있고, 누가 어떻게 의심받는지를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설명한다. 게다가 10화의 초반에서 한여진과 장건이 도시락 가게에서 나와 실종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1년에 만 건이 넘는 영구실종, 생각지도 못한 사회의 현주소를 알려주며 우리가 컨텐츠로 마주하는 사건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다시 한 번 이 작품의 태도가 진정성 있게 드러남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황시목이 차 안에서 그간 자신의 수사 방식을 검토하는 순간을 언급하고 싶다. 자신의 수사 방식이 의심가는 파편을 놓지 못하고 선입견에 쌓여 있을 가능성. 효율성은 떨어지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무사할 확률은 현저히 줄어든다. 결국 어떤 사건을 수사하는 많은 이들의 입장에서, 광활한 가능성과 의심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그럼에도 우연들이 연속되는 것을 보고 움직이는 것으로부터 사건이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득한다. 우리에게 전달하는 설득인 동시에 작품 스스로에 대한 설득처럼 보이는 이 장면을 통해, 끝까지 앞선 태도를 고수할 것이라는 작품의 의지를 엿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