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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야 Sep 10. 2020

단편 영화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

운명을 설득해내는 섬세한 요소들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

2020, 안국진 감독


*이 작품은 현재 wavve라는 플렛폼을 통해 스트리밍을 할 수 있으며,

SF8이라는 프로젝트로 MBC를 통해 방송되는 8개의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지구에 혜성이 충돌할 예정이고,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크리스마스 이브와 같은 나날로 이어진다. 이 설정만을 듣고 아무런 반감 없이 내용에 집중할 수 있을까. 행성까지야 그렇다 치자. 하지만 개인의 종말이 아닌, 지구의 종말이 일주일 남았는데 어떠한 사회적인 문제도 일어나지 않다니. 만약 사회적 갈등이 발생했어도 산에 올라가 그 모습을 애써 외면하려는 것이 이 작품의 태도라면, 마지막 장면은 앞선 모든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무기력한 마무리가 될 가능성 역시 크다. 그런데 이상하다. 설득력 갖기 힘든 이 설정 앞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돌출적이거나 회의적인 순간을 거의 마주하기 힘들었다는 점, 게다가 담담히 전달하는 무언가를 납득할 수 있었다는 점이 당황스러울 정도이다. 이렇게 마주한 그 이상한 설득은 어떤 요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까.

출처 - wavve

나레이션과 이미지 


 지구의 종말이 확실시되고 주인공인 남우(이다윗)가 등장한다. 그의 나레이션과 함께 집에서 총을 든 손이 보인다. 집과 총이라는 시각적인 단서를 통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살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게다가 “왠지 내가 죽는 순간, 모두가 다 같이 죽을 것 같은 예감이 있었다.”라는 남우의 대사 역시 그 이미지의 힘을 가중시키는 동시에, 우리는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인류’의 범주에서 ‘개인’의 영역으로 바뀌는 것을 어색하지 않게 지켜볼 수 있다. 만약 뉴스 보도와 남우의 나레이션이 동시에 흘러나오며 이야기가 시작했다면,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죽음인지, 그것과 관련된 개인의 이야기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불명확함은 이어지는 설정을 안일하게 느껴지게도 한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설정을 확실시 한 뒤, 좀 더 흥미로운 모습으로 그 앞에 서 있는 한 인물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설정을 이해할 충분한 시간을 얻는 것에 이어 관련된 누군가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도록 준비하게 된다. 숨겨진 내적 갈등을 가진 한 인물이 지구의 종말 앞에서 개인의 이야기를 본인의 목소리로 전달하며, 그의 시선으로 주변의 모습을 묘사하기에 ‘종말을 마주한 사랑 이야기’는 제목의 등장과 함께 마치 일종의 동화 속 이야기처럼 표현된다. 뿐만 아니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현실 비판적이면서도 주인공의 동화 같은 헌신적 사랑을 담은 ‘안국진’ 감독의 전작을 생각해보면,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의 설정은 좀 더 흥미로워 보인다.


 눈길을 끄는 다른 요소는 아마 유머일 것이다. 공무원 시험을 몇 년간 준비하는 현실에 대해 언급하는 남우의 목소리, 이러한 현실의 고충을 보여주다 말고 들려오는 고통의 신음이 단지 발에 맞지 않는 구두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앞으로 이어질 내용이 그리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라 얘기한다. 이뿐 아니라 불을 만들어 내는 초능력을 가진 한 인물의 상황을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포함해 보여주는 것이나, 혜화(신은수)의 등장, 그리고 양선생(황정민)의 등장은 계속해서 설정을 마주한 관객의 이성적인 태도를 누그러뜨린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그저 로맨틱 코미디 정도로만 보면 충분한 걸까.     

출처 - wavve

미장센의 통제     


 마지막 두 사람의 키스는 성공하지 못한다. 예측을 벗어난 이 모습과 이어지는 장면을 통해 이 작품은 단순히 장르적인 마무리가 아닌 일종의 열린 결말을 선택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남우의 관점에서 보여주었기 때문이리라. 마지막 씬은 그간의 이야기가 꿈이라 말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말 그가 가진 초능력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남우의 시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났다면 무기력한 마무리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의 편집과 연출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게 다가온다.

출처 - wavve

 한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이 많아질수록, 편집에 있어서 컷들을 이질감 없이 잇는 것은 적잖은 고생을 요구한다. 현실감을 위해 엑스트라 배우들을 배치하고도 그 때문에 편집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지 않은가.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초반의 버스 장면을 제외하고는 한 프레임 안에 세 명 이상의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덕분에 인물들로 인해 컷의 연결이 어색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인데, 이뿐 아니라 이야기가 남우의 시점이라는 것이 방해받지 않는다. 이 작품의 미술적인 부분을 상기해보면, 주유소에서 남우의 뒤로 보이는 도로로 차량이 한 대도 지나가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미장센의 ‘통제’를 통해 다른 모든 동적(動的)요소들을 제거하며 관객의 이목을 프레임 속 주요 인물들에만 집중시킨다. 이로 인해 설정의 힘이 거의 줄어들지 않고, 이를 기반으로 케릭터는 설득력과 동력을 얻는다.(혜화를 보고 “이 여자 뭔가 설득력이 있다.”라고 말하는 남우의 대사 역시 돌출적이지 않고 관객의 흥미를 유도한다.)


 물론 아쉬운 지점이 있을 것이고 분명 그중 하나는 주유소의 화장실이다. 등장하지 않는 누군가의 시점마저 볼 수 있는 순간. 이 소동을 통해 우리는 남우가 혜화에게 반창고를 건네는 모습을 보게 되지만, 맥락과 관련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이 순간은 ‘투명인간’이라는 초능력자를 투입시켜 일종의 맥거핀으로 활용한 장면인 것을 알 수 있지만, 좀 더 눈에 띄는 장면이 되었다면 남우의 시점을 뺏어와 작품 전체를 아쉽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출처 - wavve

 마지막 장면     


 작품의 마지막 부분을 언급할 때가 된 것 같다. 예정대로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 남우는 몇 번이고 이 상황을 겪어왔다. 그리고 이제야 해결방법을 찾은 듯하다, 그러나 혜화와의 키스는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남우는 다시 고시원의 생활로 돌아간다. 잠을 자는 남우의 모습, 아,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꿈이었을까. 꿈에서 본 생수통은 그가 늘 채워서 마시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포함해, 꿈에서 본 혜화는 고시원에서 지나치던 이름 모를 익명의 여성일 뿐이었을까. 물론 시작부터 혜성 충돌까지 이 작품의 성취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단순히 꿈이었다면, 이 작품에서 표현하던 ‘사랑’이라는 주제는 취업이라는 갈등을 잠시 완화시키려는 한 남자의 무의식적인 짝사랑일 뿐일까.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해도 문제는 없다.(그리고 꿈이 아니었길 바란다.) 이 작품의 제목처럼 남우와 혜화는 일주일 만에 사랑이 빠지지 않았다. 그 문장과 함께 양선생의 대사들을 곱씹어 보면 일주일 그 이상의 기간이면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는 주어진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혜성이 충돌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과 같다. 미리 알았더라면 오지 않을 종말,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막을 수 있었고, 만약 두 사람에게도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우리는 다른 결말을 보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결말은 관객의 상상으로만 존재한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 남우가 창밖을 보는 혜화 쪽을 잠깐 바라보는 모습을 통해, 어쩌면 잠깐이라도 사랑의 감정을 느꼈을 그가 그녀를 기억해 냈을지도 모른다는 여지를 주고 있다.

출처 - wavve

 그런데 이 작품이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이 흥미롭다. 파출소장(김강현)이 그의 아내와 만났던 일화까지 더해, 남우과 혜화의 만남은 운명적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운명과도 같은 것이 바로 혜성 충돌이다. 막을 수 없는 종말의 운명, 게다가 충돌의 시간이 빨라져 시간은 일주일도 남지 않는다. 일주일도 되지 않았기에 두 사람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 것 역시 마치 운명처럼 보인다. 이어서 혜화는 못 하겠다며 소리친다. 미사일을 발사해 종말의 운명을 막아보고자 했고, 초능력을 빌려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그 운명의 순간, 시간이 되돌아가고 이들의 만남은 없던 일이 된다. 운명을 역행하려는 의지. 남우는 몇 번이나 그녀를 만났을지 모른다. 그렇게 운명을 역행하는 굴레에서, 어느 순간 남우는 그녀를 기억해 낼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혜성은 지구에 도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운명이라고 말하는 그 사랑의 순간은, 어쩌면 운명을 역행하려는 셀 수 없는 의지가 이뤄낸 작은 변화이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남우는 언젠가 마지막 그 문을 열어 놓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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