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환야 Oct 09. 2020

단편 영화 <인간증명>

따라가야 하는 것이 늘 빛의 방향이어야 하는가.

<인간증명>

2020, 김의석 감독



*이 작품은 현재 wavve라는 플렛폼을 통해 스트리밍을 할 수 있으며,

SF8이라는 프로젝트로 MBC를 통해 방송되는 8개의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SF8이라는 프로젝트의 마지막(처럼 보이는) 에피소드이다. 사실 이 프로젝트에 특정한 순서는 없고, TV로 방영되는 여덟 이야기 중 이 작품의 순서는 임의로 지정된 것으로 보이지만, 가장 마지막 에피소드로 선택된 것에는 어느 정도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 이유는 이 글의 후반부에서 이어가고자 한다.


 SF는 이견이 거의 없을 하나의 ‘장르’이기에, 그 범주 안에 있는 이야기들의 진행 방식 역시 장르적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즉 이야기의 충분한 끝맺음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미래 디스토피아 안에서 생명의 가능성이나 어떤 희망을 발견하거나(<만신>, <우주인 조안>),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갖거나 정체성을 잃은 상황에서 AI의 존재를 인정하고 정체성이나 사랑을 찾는 이야기(<블링크>, <증강 콩깍지>)는 명확한 해피엔딩을 갖는다. 반면 기술의 발전과 함께 도래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거나(<간호중>), 그 나약함 때문에 잃게 된 정체성을 되찾았음에도 스스로 비관하며 비극을 맞는 이야기(<하얀 까마귀>)도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열린 결말 등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마무리를 (희극과 비극 중) 선택하도록 두는 방식(<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 역시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증명>의 자리는 세 번째 경우와 가까워 보인다.

출처 - wavve

 제목과 이미지에서부터 <인간증명>이 내재하는 담론은 단순하지 않을 거라는 짐작이 가능할뿐더러, 실제로도 이야기가 갖는 질문은 분명 흥미로운 깊이를 지닌다. 그러나 주제의 무거움이 이야기의 흥미와 재미를 보장하지 않고(SF8 프로젝트의 모든 이야기 설정은 전부 흥미로웠다.), 자칫 미래 세계 속 창작자의 고민은 자아도취의 모습을 띠며 안일한 마무리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인간증명>의 내용은 그 설정과 갈등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지루함을 갖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양한 요소를 통해 그러한 아쉬움을 최소화시킨다. 


편집과 음악


이 작품의 첫 대사는 법정에서 시작한다. 담론이 갖는 깊이가 깊이인지라. 충분한 대사 없이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야기의 갈등과 메시지의 무게를 담은 대사들이 존재하기에, 지루함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지루해지는 순간 작품의 의도 속 모든 내용에 대한 능동적인 이해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비단 대사만의 문제가 아닌, 반복되거나 유지되는 장면들이나 시각적 요소 때문인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인간증명> 역시 관객의 준비를 요구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기에, 이로 인한 문제를 없애는 일종의 기술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장면의 배치, 즉 편집이다. 

출처 - wavve

 이 작품의 영리한 점 중 하나는 밝은 장면과 어두운 장면을 교차시켜 편집했다는 것에 있다. 이 요소가 사전 제작과 촬영 과정에서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마치 리듬감을 형성하듯 밝은 빛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장면은, 밤 장면 또는 직사광선 등이 차단된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는 이미지의 강렬함과 동반되는 시각적 피로함을 줄이는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만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용 진행을 위한 대사나 의도한 메시지를 함의하는 인물들의 대사가 나오는 장면이 그러한 ‘하드 라이트(Hard light)’보다는 ‘소프트 라이트(Soft light)’로 이루어진 경우가 대부분인 것을 보면, 철저히 계산된, 그래서 되려 감각적으로 보이는 연출의 결과로도 보인다. 


 또한 음악 역시 그 존재감과 그 효과를 충분히 드러낸다. 이 작품은 AI가 하나의 인격체인지에 대한 여부를 둔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시작한다. 언급한 것처럼 기본적으로 장르의 옷을 입고 있으며, 검사(박종환)의 첫 대사에 포함된 ‘살해’라는 단어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인격화된 AI가 신체를 공유하던 인간의 정신을 소멸시킨 사건을 일종의 ‘살인사건’으로 보는 것이 보편적인 상황이 아니기에, 만약 무턱대고 긴장감이 흐르는 음악을 사용하는 경우, 그 모습은 너무 단순해지거나 관객과의 동행이 힘들어진다. 설정을 이해할 시간, 이어서 관련된 인물을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모든 것을 건너뛰고 인물의 슬픔을 우선적으로 드러내거나, 게다가 그것을 음악으로 가중시키려는 순간, 낭비되는 감정이 생기고 관객은 몰입 자체가 힘들어진다. 그러나 이 작품의 프롤로그 장면을 제외하고 혜라(문소리)의 감정을 표현하는 음악들은 예상과는 상당한 거리를 갖는다. ‘불안’보다는 ‘혼란’을 강조하는 듯한 음악, 결국 이 작품은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일종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보라는 것이 아닌, 그 중심에 있는 논쟁적이고 모순적인 부분에 시선을 집중하라 말하고 있다. 덕분에 관객은 법정 장면을 포함한, AI의 정체성을 논하는 장면들에서 그 담론 위주로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동시에 이야기가 더 깊어지는 효과를 느낄 수도 있다.

출처 - wavve

인간 증명 


 이 작품은 마지막 장면만 생각해도 단순한 내용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 법정에 선 김영인(장유상), 인격화되었지만 다른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신체를 공유하는 인간의 정신을 삭제했지만 갑작스러운 그의 자백은 담당 변호사로 인해 시스템의 결함으로 치부된다. 그리고 판사는 그것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AI는 분노한다. 인간인 것을 판단할 수 없게 만들어놓고, 즉 일종의 인격을 부여해 놓고도 욕망을 소유하는 것은 왜 부정하는가.


 또한 인공적 인격체에 대한 논쟁이 있기 전, 검사가 혜라에게 아들 죽음의 원인을 묻자 그녀는 중요하지 않을 문제였다고 답한다. 대답한 뒤 그녀의 태도는, 그녀가 아들의 자살을 인지하고 있음을 시인하는 듯 보이는데, 이로써 생명을 연장시키는 기술의 발전이 개인의 스스로 파멸할 권리를 앗아가는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고통을, 그 권리를 지킬 수 있게 도왔던 것이 사실상 AI인 김영인이다. 신체를 공유하지만 정신의 주체는 인간의 것이 되어야 하고, 그렇기에 AI는 그 정신적 주체의 의도에 맞게 작동을 시행해야 한다. 그러나 혜라가 상실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것 역시 김영인의 의무이기에, 로봇으로서, 아니 판단이 가능한 주체로서 그가 인간의 정신을 삭제한 것은 고통스러운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인간이었던 김영인은 세상에서 사라졌고, 사람으로 따졌을 때 마치 일종의 심신 미약 상태로 판단된 AI인 김영인이 그를 소멸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득인가, 실인가.

출처 - wavve

빛의 존재 


 앞선 질문은 내용 진행만으로도 인식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의 연출은 그 질문을 더욱 감각적으로 표현하며, 그 중심에는 ‘빛’이라는 요소가 있다. 아마 올해 단편작 중 빛의 사용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 바로 <인간증명>이라 감히 말하고 싶을 정도로, 이 작품 속 빛의 사용은 굉장히 흥미롭다. 


 2017년에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 번째 살인>을 보면 이러한 예시를 발견할 수 있다. <세 번째 살인>에서 살인은 저지른, 또는 저지른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은 자신의 뺨에 튄 피를 손등으로 닦아낸다. 그리고 이 살인은 간접적인 행위 역시 포함한다. 이 이야기에서 주요한 공간 중 하나는 법정이고, 주인공은 자신이 변호하는 인물의 진실에 혼란을 느끼게 되어 결국 법을 다루는 재판의 기능적인 방식을 따른다. 그리고 건물을 나서는 그의 얼굴로 강한 노을빛이 내리쬐는데,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손등으로 뺨에 묻은 뭔가를 닦아낸다. 이때 그가 닦아낸 것이 피가 아닌 이유는, 결국 살인과 같은 행위임에도 ‘법’이라는 빛나는 명분이 있기 때문이고, 흥미롭게도 그것은 검붉은 액체가 아닌 빛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인간증명>의 첫 장면 역시 비슷한 맥락의 순간을 보여준다.

출처 - wavve

 어두워진 밤, 사람들이 구치소로 들어간다. 쌓인 옷가지들 주변에 피의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옷을 갈아입는다. 이때 속옷마저 입지 않은 모습들이 눈에 띄는데, 이것만으로도 작품의 개성이 드러나며 작품에 대한 몰입감을 증가시킨다. 그리고 주인공으로 보이는 김영인 역시 똑같이 옷을 갈아입으며, 우리는 그가 인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 그의 뒤로 보이는 강한 빛을 카메라는 필요 이상으로 담아낸다. 표면적으로 이 첫 장면은 AI가 일상이 된 세계관의 설정을 보여주려는 단순한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지나치게 밝은 빛을 뿜어내는 이 순간은, 마치 빛나는 명분을 가진 ‘기술의 발전’이 과연 밝은 측면만을 가지고 있을지 묻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그 강한 빛으로 인해 돋보이는 그림자들의 존재 역시 시각적으로 힘을 갖는다. 


 법정에서 김영인이 인간 김영인은 죽인 것이 자신이라 실토하는 순간 창밖으로 들어오는 노을빛은 더욱 커지는데, 이 역시 기술 발전의 결과로 만들어진 일종의 살인사건에 대해 작품이 빛을 사용하여 미학적으로 질문하고 있다. 특히 영인의 친구들이 추모를 위해 혜라의 집을 찾아왔을 때, 어두워지자 볼 수 있던 사슴의 존재는 기술의 발전으로 상징되는 빛의 ‘부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연 기술이 문명 발전의 답인지를 재차 질문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이론적으로도 빛이 이중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통해 김의석 감독의 연출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덕분에 그의 전작인 <죄 많은 소녀> 속 빛의 활용 역시 재고하게 된다. 

출처 - wavve

공생의 갈등


 혜라는 그녀의 아들을 소멸시킨 김영인을 받아들인다. “영인이를 기억하고, 또 너를 받아들여야 하니까.”라는 그녀의 대사는 아들 영인이 정말로 죽음에 이르기 전 함께한 것이 김영인이라는 점과 아들의 진짜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도 김영인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녀는 아들의 속마음과 부탁을 들어준 인격체와의 생활을 택한다. 그리고 인간 영인을 추모하는 장소가 불상으로 채워져 있는 것을 보면, 그녀가 김영인을 윤회의 결과로 보는 것으로도 해석 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린 이제 앞으로 모든 순간을 이 문제하고 싸우게 될 거야.” 우리는 여전히 과거로부터 눈부시게 발전해온 기술들의 양면이 제공하는 갈등들을 마주하고 있다. 혜라의 대사는 분명 김영인과의 갈등뿐 아닌, 기술과의 공생 안에서 우리가 마주해야 할 갈등들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SF8 프로젝트의 마지막 에피소드로 보이는 이유는 이야기의 결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피한 모호함에서 비롯한 것이리라. 


작가의 이전글 드라마 <비밀의 숲2> 15, 16화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