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침묵하지 않을 것인가.
사건을, 즉 갈등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직업을 다루는 이야기는 그 자체가 힘이기에 뻔할 가능성이 있어도 기대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허쉬>는 신문사의, 그것도 사회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자신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에 무기력한 기자 생활을 보내고 있는 한 남자와, 같은 사건의 이해 당사자이며 복수의 감정과 열정을 겸비한 신입 기자의 이야기라는 설정은 버디 무비의 모습과 닮았고, 필수적인 변화의 순간을 예고하기에 장르적으로도 기시감이 드는 진행이 예고되지만, 드라마에서 오랜만에 마주하는 배우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이야기 또한 특별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만들어낸다.
한편으로 우려되는 점이 있었다면, 김정민 작가의 전작인 <슈츠>에서 발견할 수 있을 텐데, <슈츠> 역시 갈등을 다루는 변호사들의 이야기라는 점과 브라운관을 통해 오랜만에 보는 배우들의 프로필이 기대감을 상승시켰지만, 이렇다 할 큰 갈등이나 쾌감 없이 미지근하게 마무리된 모습을 마주했다. 그러나 드라마 역시 각본뿐 아니라 연출 역시 중요하고, 그 조화가 잘 형성된다면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주기에, 이에 대한 기대와 함께 <허쉬>를 선택했다.
첫 장면
첫 장면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영화가 아닌 드라마이기 때문이리라.(대신 첫 주의 이야기는 분명 중요할 것이다.) 이 작품은 최경우(전준원)가 고수도 의원의 비리에 대해 대담하게 묻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때 의원의 손가락은 상대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다가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로 마무리되는데, 굉장히 어색하다. 편집의 문제로 볼 수도 있겠지만, 연출의 문제가 가장 커 보인다. ‘HUSH’라는 단어이자 이 작품의 제목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좋지만, 이 첫 장면에는 그 야심적인 힘이 부족하고, 언급한 것처럼 작위적인 측면이 강해 그 의문스러움을 지우기가 힘들다. 그렇게 이 작품의 첫 장면은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캐릭터와 설정
드라마의 1화, 2화는 해당 작품의 캐릭터와 상황 설정을 설명하고 갈등의 도화선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힘이 필요한 만큼 설득 또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주요 인물들의 성격이나 특성을 효과적이고 경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준혁(황정민)의 ‘왜 때문에’, 이지수(윤아)의 ‘따옴표 제스처’, 양윤경(유선)의 ‘지랄’ 그리고 나성원(손병호)와 정세준(김원해)의 ‘사투리’가 바로 그것이다.
표준어가 기본이 되는 신문사라는 공간에서 위와 같은 비표준어들은 시퀀스에 재미를 부여할뿐더러 인물들에게 입체성을 부여하고 캐릭터를 각인시키는 효과를 가질 텐데, 1, 2화에서 이지수의 제스처는 그 자체로 흥미롭다기보다는, 그 모습을 본 인물들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그것을 따라함으로써 흥미를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양윤경의 ‘지랄’이라는 대사는 분명 인물의 말버릇이라는 점에서 자주 들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몇 차례밖에 마주하지 않았음에도 말버릇보다는 작위성이 투영된 빈도 높은 대사로만 작동하기 시작한다.(물론 연기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또한 한준혁의 ‘왜 때문에’ 역시 이 대사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흥미롭지만, 양윤경의 대사와 비슷한 느낌으로 변화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낙하의 연출
이 두 회차에서 앞선 우려들과 함께 가장 돌출적이고 선정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장면은 분명
오수연의 자살 장면이다. 차 위로 사람이 떨어지는 이 장면은 그 자체로도 충격적인 방식일 텐데, 이 작품은 우리가 그간 비슷한 장면에서 보아 온 자극적인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피해자가 차 위로 떨어지는 자살 장면은, 우리가 보아온 적잖은 작품들에서 낙하 직후 피 흘리고 있는 그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시간을 대낮으로 설정하며 그 행위 자체에 힘을 싣는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안타까운 선택을 한 그 인물로 인해 어떤 변화를 맞이하는 누군가를 설득하는 내용이기에, 카메라가 돌아가는 등의 촬영 기법만을(깔끔하게) 사용해 한준혁의 리액션을 위주로 담아낸다. 또한 그가 떨어뜨리는 커피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이의 행위일 뿐 아니라, 땅에 흐르는 그 커피를 통해 사건의 잔혹성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며 사건을 기능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밀도 높게 마무리한다.
2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수연과 대화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 역시 흥미로운데, 일종의 연출적인 결단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수연과 대화를 하는 한준혁의 모습은 편집으로 인해 몇 개의 컷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클로즈업을 사용한 원 테이크이다. 다시 말해 슬픔이라는 감정에 휩싸인 인물과 그 상황을 단지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밀도 높은 감정을 한 번에 담아내기 위해 컷을 없애고, 시청자가 무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는 컷의 존재를 최소화하여 두 인물 사이에 대화가 있음에도 매끄러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드라마라는 특성 때문에 비교적 좀 더 나은 장면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 장면은 분명 좋은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우려되는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겨우 두 회차임에도’, 또는 ‘이제 두 회차일 뿐’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글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기대가 좀 더 앞서 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