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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야 Dec 24. 2020

드라마 <허쉬> 3, 4화 리뷰

각본과 연출의 충돌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생각보다 많다. 물론 좋은 장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수연의 마지막 기사로부터 그간의 행보를 재고하는 익명의 취준생들이 나오고 이후 장례식으로 모여드는 장면은 자극적이지 않고 담담한 사회의 문제와 일종의 위로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한준혁과 이지수가 4화의 마지막에 나누는 대화는 각본의 진정성을 잘 담아내기도 한다. 반면 집에 들어간 한준혁의 변화는 갑작스러워 보이고, 포장마차에서 그가 설명하는 앞으로의 방향성은 단순하게 대사로만 설명하여 몰입이 힘든 장면이 되기도 한다.

출처 - JTBC

무기력한 연출 


프롤로그 이후 3화의 시작에서 한준혁은 두 손으로 화병을 깨드린다. 이 모습을 본 국장은 ‘난은 비싸도 화분이 싸구려’라 말한다. 이에 한준혁은 그에게 오수연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국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 옮겨 심으면 되니 마음 쓰지 말라’고 한다. 이는 죽은 오수연을 깨져버린 화분 그리고 비싼 난을 회사로 상징하는, 노골적으로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 각본에 비례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대사의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선택한 연출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각본의 의도와 비교해 너무나 단순한 연출(오로지 대화만을 위한 연출)로 이루어져 있다. 사장의 존재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은 이때까지 국장인데, 그 면모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 인물을 절대악으로 표현하지 않으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장례식장 밖에서 한준혁과 이야기하는 국장의 모습과 그의 대사는 아무도 모르는 국장의 죄책감을 투영한 대사로도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국장실에서의 화분 장면은 각본 자체로서 힘을 갖고 있는 데에도 전혀 그 힘을 활용하지 않는다. 덕분에 국장의 모습은 기능적으로 작동하며 오로지 대사만을 위해 활용한 장면으로 전락하는 느낌이다. 만약 국장을 이후 일종의 반전과 같은 형식으로 표현할 생각에서 비롯된 선택이라면, 오히려 어느 편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섬세한 연출이 필요할 텐데, 그러한 입체성은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출처 - JTBC

익명의 오수연 


익명의 취준생들을 보여주며 만연한 고통에 대해 상기하고 공감하는 방식은 오수연의 나레이션과 함께, 굳이 누군가 코피를 쏟거나 돌출적인 피해자가 등장하는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어떤 울림을 만들어내며 설득한다. 사실 자칫 잘못하면 이 장면은 기능적인 장면이 될 수 있고, 장례식에 들어오는 긴 줄이 너무 감정적으로 표현될 경우 희망보다는 절망에 대한 공감으로만 장례식 장면이 끝나버릴 수 있다. 그러나 황정민이 육개장을 먹는 그 순간의 어떤 변화와 함께 맞물리는 이 장면은 분명 설득력을 가지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단순히 객체로서 반응하는 슬픈 감정이 아닌, 주체성을 띠는 감정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컵라면들의 상징성은 단순할지 몰라도 안타까움에 공감하는 보통의 우리를 충분히 표현한다.


비유의 향연


이 작품에는 비유적인 표현들이 상당히 많다. 밥, 국밥, 육개장 그리고 삶은 계란을 필두로 사장실의 ‘그림’, 열리지 않는 ‘문’, 창문 밑의 ‘꽃’, ‘정글’ 등이 바로 그것이다. 드라마라는 상대적으로 긴 컨텐츠에서 비유적인 표현은 이야기에 상당한 매력을 주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각본은 ‘밥은 펜보다 강하다’라는 대사 속 그 상징과 비유를 이야기에 녹여 설득하기보다는 그 비유적인 표현을 어떻게든 작품의 특징으로 만들기 위해 투입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유기적이기보다는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는 오히려 어느 부분에서는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어버린다.

출처 - JTBC

이지수는 한준혁에게 오수연을 죽인 범인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 이는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한 인턴 기자의 안타까운 죽음이라는 ‘감정의 축’을 하나의 ‘중심 사건’으로 만들며 좀 더 그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계획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작품 속 비유의 향연 아래 한준혁이 처음에 이해한 ‘사회적 타살’을 좀 더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시도로 의심되는 것도 사실이다.

출처 - JTBC

후반부의 대화


4화의 후반부에서 한준혁은 이지수에게 과거의 사건을 이야기한다. 다행히 사건의 진실이 밝혀져 선배의 명예를 회복했다는 말에 이지수는 ‘사람이 죽었는데 뭐가 바뀌었냐’ 말한다. 이에 대해 한준혁은 그렇다면 오수진이 죽은 것에 대해 어떤 것을 밝힌다고 했을 때도 바뀔 것이 없는 것 아니냐 반문한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겠다’는 그의 말은 이지수의 감정적인 생각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뿐 아니라, 각자의 변화가 서로의 변화를 야기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버디 무비와 같은 장르적인 힘을 드러내며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게다가 이 대화는 누군가의 죽음을 어떤 태도로 대할 것인가와 같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는 분명 각본의 힘이다.

출처 - JTBC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네 사람이 다시 포장마차에 모인다. 오수진의 환영이 나타나는 장면이 그렇게 몰입감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언급하고 싶은 순간은 그 직후이다. ‘세상 모든 미숙이들을 위해서 그 기회를 빼앗은 사람들이 공정한 댓가를 치를 때까지 조진다.’를 포함한 이 대사들이 이야기 상으로는 대화의 일부이지만, 사실상 시청자들에게 앞으로의 (작품의)포부를 설명하는 목적을 띤다. 그러나 일방적인 이 대화는 그 의도가 너무나 노골적이고 설명적인 논지가 강해 몰입을 방해한다. 덕분에 ‘HUSH’라는 단어의 출현과 카메라를 쳐다보는 한준혁의 모습은 작품 속 ‘이야기’와 ‘현실’의 벽을 깨는 흥미로움보다는, 오래된 연출에 힘입은 다소 안일한 마무리가 되어버린다.


아쉽지만 5화에 대한 예고편은 기대보다는 불안을 담고 있다. 사회부가 다루는 사건에서 비롯된 이야기이기에 다양한 갈등이 필요하겠지만, 이게 유기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독립적인 사건이 되어 인물들의 관계 형성에만 그 목적이 생긴다면, 그 긴장감은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언급해온 김정민 작가의 <슈츠>가 그랬다.) 그럼에도 이번 두 회차에서 역시 각본의 힘은 분명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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