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과 감정에 잠식당한 것들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사건을 흥미롭게 전개하고, 작품 전체에 있어서 영향을 주면서도 단순히 기능적이지 않게 활용되는 것이 분명 중요할 것이다. 지난 리뷰에서 언급했듯 등장인물들, 특히 한준혁과 이지수의 관계를 좀 더 공고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에만 이번 5화 속 사건의 존재 가치가 형성되지는 않길 바랐지만, 결국 그 불안은 걱정한 그대로 펼쳐졌다.
사회부 기자의 밤
이지수는 한준혁에게 이끌려 사회부 기자들이 즐비해 있는 경찰서로 도착한다. 이때 이지수의 탐탁지 않은 모습에 욱하는 양윤경의 행동은 다소 돌출적일 수 있으나, 장면의 재미를 부여하며 해당 부서에 대한 베테랑 기자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모습이기에 흥미로울 수도 있다. 그리고 ‘첫날부터 터지는 그런 로또’와 ‘사회부 팔자’라는 연관은 이야기의 진행을 미리 알려주는 동시에 그만큼 초보 기자에게 사회부 관련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득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의 예고가 아닌, 사고가 터진 후 경찰의 브리핑부터이다.
경찰서에서 상주하는 기자들과 사건 소식을 듣고 찾아온 기자들은 사건에 대한 경찰의 브리핑을 듣는다. 이때 ‘단순 음주’로 알려진 사고에 교통 과장이 아닌 공보관이 등장한다. 이를 본 한 기자는 의문을 제기하며 상황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 풍경을 통해 우리는 브리핑 담당자의 위치에 따라 사안의 중요성이 달라지고, 사회부 기자는 이 차이를 통해 사건의 심각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정보까지 마주할 수 있다. 문제는 직후이다. 이어져야 할 장면은 당황하며 자리를 빠져나오는 브리핑 담당자의 모습이 아닌, 사안의 심각성을 계량하고 기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사건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줄다리기하며, 미묘한 단어 선택이 가져오는 긴장감의 연속이어야 한다.(이 작품은 사회부 기자의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나 이 시퀀스는 그저 사건을 무마시키기만 급급한, 지성(知性)을 전혀 겸비하지 못한 사건 담당인들의 모습만을 위해 작동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 관련 장면들 역시 상황을 기능적으로만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벗어난 질문, 더 벗어난 질문
이지수는 최경우가 시킨 대로 기자들이 이미 즐비한 치킨집으로 향한다. 그들은 치킨집 주인에게 피해자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게임을 하는지’, ‘뭘 배달하는 중이었는지’ 등의 질문을 던진다. 이지수의 표정은 자연스럽게 이 상황의 문제를 시사한다. 도착한 양윤경은 그들의 질문 수준을 언급하며 한심하지 않냐 묻는다. 이어서 그녀는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가 된다’라는 (상당히 오래된)말을 하는데, 이것은 자극적인 기사에 혈안이 된 기자를 비판하는 말이면서도 똑같이 자극적인 글만 읽으려는 우리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지수의 질문이 시작된다. 독자들을 혹하게 할 자극적인 스토리의 기반이 될 질문이 아닌 제대로 된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경찰서에서 한준혁을 만난 뒤 밝혀지는 이 질문은 돌출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존재감을 표출한다.
‘피해자가 꿈이 없다는 것은 확실히 물어본 것이냐.’, ‘자식 같아 한 잔소리는 진심이었냐.’ 이 역시 사건의 본질을 벗어난 질문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앞선 다른 기자들의 질문은 스토리를 만들 의도는 있어도, ‘사실’을 알아내려는 질문이지, 대답하는 이의 감정까지 알고자 한 질문은 아니다. 치킨집 사장의 답변은 ‘꿈도 없는 것 같고·····,’면 충분하지, 그의 진심(“딱 보면 아는 거 아니냐”)까지 물어보는 것은 되려 사건의 본질과 벗어날 뿐 아니라, 오히려 ‘사실’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는 한참 벗어난 질문이 된다. (‘걱정 된다면서 병원도 안 가고 뭐하냐’는 게 어떻게 정의로운 질문인가. 치킨을 팔다가 갑자기 찾아온 기자들 때문에 일도 못 하는 누군가의 삶에 시비를 거는, 함부로 판단하기는 똑같은 질문일뿐이지 않은가.)
만약 치킨집 사장에게 사건의 이해 당사자인 누군가가 피해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대답하라 사주한 것이라면 이 장면과 그 질문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사건의 깊이는 더 커진다.(나 역시 뭔가 한참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에 설마 보면서도 뭔가 놓친 것이 있었나 의심까지 했다.) 그러나 이 오토바이 사건은 ‘치킨’이라는 비유를 사용하고 이지수라는 인물을 정의로운 신입 기자로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만 작동한다. 양윤경은 이지수에게 말한다. “질문 좋았잖아.” 희망적인 음악과 함께 이야기 속 캐릭터가 ‘좋다’ 말한다고 해서, 각본 자체가 좋아질 수 없다. 치킨집 사장은 말한다. “아니, 근데 지금 뭐하자는 건지······.”
캐릭터의 일관성
이지수라는 캐릭터의 문제는 앞서 말한 질문에서만 끝나지 않아 보인다. 그녀의 열정은 최경우와 같은 캐릭터와 비교되는 것이 사실인데, 덕분에 첫 화에서 들을 수 있었던 것처럼 ‘밥은 펜보다 강하다’라는 말과 함께 이지수는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늘 치열하게 고민하는 인물로 보이지는 않는다.(물론 그 가치관이 변화한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것이 <허쉬>라는 작품의 목적이고, 아직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그녀의 동력은 정말 한준혁을 감시하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것인가.
사랑하는 아버지가 오보된 기사로 인해 죽고, 함께 입사한 동료가 더 이상의 아픔을 얻고 싶지 않아서 죽었(고 아직까지는 판단된)다. 그리고 그 결과에 연관된 인물이 한준혁은 맞지만, 그 역시 피해자에 가깝다. 그리고 그런 피해자들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 방법은 바로 앞에 있는 무기력한 누군가를 감시하는 것이 아닌, 사회부와 같은 부서로 이동하여 진짜 문제들을 마주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지수가 치킨집 사장을 인터뷰하고, 다음 날 인쇄된 신문의 내용을 보고 ‘기자 윤리’와 같은 문제를 언급하며 분노하는 것은 한준혁을 감시하겠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부서에 남겠다는 행동과 부조화를 이루며, 오수연의 죽음과 관련된 기사들을 무기력하게 ‘복붙’해온 과정과 함께 모순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 기자로서 그녀의 분노는 상황에 따라, 작품이 필요한 경우에만 생긴다. 그리고 그 분노를 포함하는 장면들은 대부분 사회에 대한 분노보다는 개인적인 감정으로만 이어지며 작품성 높이는 힘이 드러나지 않는다.
비밀과 긴장감
5화의 끝에서 한준혁은 이지수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이지수 역시 그녀의 아버지가 죽은 날 한준혁에게 어떤 일이 생기고, 왜 그가 (‘기레기’라 불리는)무기력한 기자 생활을 시작했는지 알게 된다. 덕분에 이지수 역시 한준혁 동료들의 힘을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치킨집에서 마지막 두 사람의 대화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임을 알린다.(불안한 건 이들의 협업을 보여주기 위해 또 한 번 독립적이고 기능적이기만 한 사건을 활용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비밀이 밝혀지면서 또 다른 비밀이 생겨난다. 매일 한국의 디지털 부서가 독립되면서 그들의 사회부와의 연결성이 약해지는 동시에 독자적인 기사 작성이 가능해질 예정이다. 이 역시 사장과 국장의 의도가 있을 것이며, 그 비밀을 통해 좀 더 긴장감이 형성될 것이다.
여전히 아쉬운 것은 그 권력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국장을 찾아가 그 청탁 명단이 고수도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냐는 한준혁의 질문은 국장의 불안함을 증폭시키기 충분하지만, 질문하는 한준혁 역시 내부에서 누군가 정보를 빼내 간다는 것에 있어서 불안함을 느껴야 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사장과 국장에 대한 심리가 표현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난 주 회차들과 같이 연출을 통한 그 긴장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언급한 장면에서는 국장의 클로즈업만 있을 뿐이다.) 또한 이번 주 회차에서 사회부장이라는 새 캐릭터가 등장하고, 의도가 숨겨진 디지털 부서의 독립이 있었음에도 그 긴장감이 존재감을 발상하지 못했다.
또 다른 것들
이번 두 회차에서 한준혁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이지수는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삶의 태도에 있어서 어떤 지혜를 얻는다. 이는 캐릭터의 행동에 있어서 작은 변화를 위해 선택한, 기시감이 큰 방식이다. 6화의 마지막에서 술에 취한 두 사람이 언제 갈등이 있었냐는 듯 회사 앞에서 웃으며 휴지를 붙이는 장면은 언급한 것처럼 서로를 이해한 인물들의 모습은 맞지만, 직전 장면과 비교해 감정의 변화가 너무 심해 굉장히 돌출적으로 존재한다. 게다가 ‘휴지에 그린 그림’이나 ‘반반 치킨’ 역시 그 비유가 너무 노골적이고 뜬금없다.(덕분에 사회부에서 진행 중인 정보를 유출하는 인물이 최경우일지도 모른다는 등의 의심은 단순한 반전을 위해 심어놓은 자극적 요소로만 등장할 것 같다는 우려가 생긴다.)
드라마라는 긴 영상 컨텐츠에서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를 설정하고 납득할만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거기다 매회차마다 재미와 흥미, 그리고 비유적인 표현 등을 통해 장면의 입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요소들과 함께 다양한 드라마가 존재하기에 비교는 불가피하고 좋은 드라마를 마주했을 때 기쁜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확실히 연출도 중요하지만, 드라마의 힘은 각본에 있을 것이다.(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연출자의 이름보다는 작가의 이름이 더 큰 힘을 갖는다.) 그리고 아쉽지만, 아직 많은 회차가 남았음에도 <허쉬>의 각본은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