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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야 Jan 11. 2021

드라마 <허쉬> 7, 8화 리뷰

과잉되어 힘을 잃는 것들

이야기가 어떤 설정은 갖는가의 중요성을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화든 드라마든, 대중성에 있어서 주연을 누가 맡느냐가 흥행이나 관심도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뻔해 보이는 장르의 기시감이 앞선다면 캐릭터와 이야기의 시너지까지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영화에 비해 드라마라면 좀 다를지도 모른다. 이야기에 대한 기시감이 있어도, (<허쉬>와 같은 미니시리즈의 경우는)일단 시청자의 흥미를 이끌어내기 위해 이를 초반에 배치하고, 이후의 재미와 독창성은 긴 시간 덕분에 표현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더 많다.(물론 그 긴 시간 때문에 상당한 노고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법, 언론, 정치와 같은 전문적인 영역이 그 설정이 된다면, 게다가 스크린에서 더 익숙한 배우까지 볼 수 있다면, 초반의 장르적인 선택과 설정들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감수 가능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허쉬>는 그중에서 언론을 선택한 작품이다.

 

각 분야의 생태계는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에, 흥미로운 설정과 맞물려 발견하는 다양한 정보들과 장면들이 있을 것이다. 법정이 무대가 된다면 여러 법적 장치들이 그 ‘정보’가 되고, 이와 함께 한 사건을 두고 각 진영이 가진 정보의 차이를 기반으로 긴장감을 형성하면서 법이라는 이성적인 무기로 한쪽의 논리가 다른 논리를 앞서는 ‘장면’을 기대한다. 마찬가지로 언론이라는 무대 역시 그런 장면들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그게 사회부라면, 중심이 되는 사건에 대해 신문사를 대표로 하는 언론사들이 이해관계 속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그리고 각 기자들의 생각과 행동이 만들어내는 차이가 여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득하는 장면들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사용되는 감정은 이성적인 계산이 사용하는 무기로서 그 존재가치를 가지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다시 말해 언론이라는 설정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은 다른 장르와 달리 감정보다는 이성이 주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허쉬>는 이야기의 힘을 갈수록 감정에 의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출처 - JTBC

물론 ‘밥은 펜보다 강하다’라는 이 흥미로운 문장에서 시작한, 언론 역시 삶에 필수적인 식사를 위한 노동이라는 사실을 설득한다는 시도 자체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상대적으로)감정적인 접근이 중심이 되어 언론의 이야기를 진행한다면, 기대하는 장면이 줄어들 뿐 아니라 설득마저 떨어지는 진행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매회 초반에 마주하는 음식들과 그 제목은 전부 감정적인 요소로만 작동하며 해당 회차의 전체를 관통해야 한다는 의도 때문에 이성적인 장면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침묵주의보’라는 원작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원작에 상당히 기댄 것이라 해도, 그것 또 그것만의 문제의식을 만들어낸다.


강요되는 비밀 


7화의 프롤로그 직후, 이지수와 마주 앉은 한준혁은 그녀에게 수연을 죽인 게 누구냐 묻는다. (당연하겠지만, 이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기에 극 자체의 긴장감을 위해 매회차, 또는 매주 필요한 언급이리라.) 이지수는 경찰에 말했다고 하지만, 별 특이사항이 없었다는 것처럼 말한다. 물론 당연한 전개이다. 그런데 이 대화의 마무리 과정이 이상하다. ‘매일한국’과 ‘경찰’의 유착관계나, 매일한국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엘리베이터의 CCTV를 삭제한 정황이 의심되는 등의 의문점 없이, 그저 별말이 없었다는 것.(다행히(?) 8화를 통해 일부 해소되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언급 역시 또 다음 주를 기대해야 한다.) 그리고 조용히 알아보자는 한준혁의 말에 그녀는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냐며 갑작스럽게 화를 내고(이 대사는 상당히 돌출적이다.), 한준혁은 기사로 쓰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 말한다. 묻고 싶다. 범인이 있는지, 그리고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사로 쓰려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논하는 것이 과연 맞는 순서인가.

출처 - JTBC

여기서 한준혁이 차분하게 검토하고 ‘팩트’를 찾자는 것은 누군가 그들의 조사를 의심하고 자신들에게 피해가 오지 않기 위해 조심하자는 것, 즉 더 큰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이어지는 게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다. 물론 이는 뻔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를 피하기 위해, 그리고 언론 이야기라는 설정에 매료되어 무분별하게 ‘기사’를 목표로 세우는 모습을 배치하는 것은 분명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 충분하다. 다시 말해, 누가 그녀를 죽였는지를 알아보는 게 아니라, 기사를 쓸 생각부터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긋한 목표설정으로 보인다.(이때 뭔가 깨닫고 이해한다는 듯한 이지수의 표정 역시 의문이다.)


“진짜 제대로 된 기사가 되려면, 다 쓸 때까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이때 카메라는 한준혁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비밀’이라는 것을 부각하는 카메라 연출이다. 덕분에 설득력을 갖는 듯한 대화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오수연에 대한 의문점을 계속 이어가며 (반전으로 이어질)긴장감을 형성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어긋나버린 대사는 연출로 가려지지 않는다.


미역국과 커피 


“생업은 생업이고 생일은 생일이다.” ‘미역국’에서 시작한 7화에서 이 작품의 중요한 ‘밥(또는 음식)’의 감정은 양윤경의 이야기로 드러낸다. 아닌 게 아니라 한준혁과 정세준(김원해), 그리고 김기하(이승준) 역시 아무런 걱정 없는 가장이 아니다. 게다가 디지털 뉴스팀이라는 일종의 유배지에 소속된 이들의 상황 역시 충분한 기저 갈등을 만들어낸다. 결국 가족이라는 감정의 근원이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성적으로 진행해야 할 이야기가 상당한 감정의 영향을 받는 것이 그리 이상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두 축이 서로 화합하지 않고 독립적인 진행을 도모하는 것은 분명 더 큰 문제이리라.

출처 - JTBC

‘곰탕’, ‘육개장’, ‘삶은 계란’, ‘치킨(반반 치킨 포함)’이라는 음식을 필두로 이야기의 감정선을 가진 요소들이 터무니없는 축축한 감정을 포함한 몇 장면을 만들어 낸 것이 사실이지만, 언론인, 정확히는 이 작품에서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감정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기에 작품의 특징으로서 장단점을 갖는다. 그러나 이 감정이 굳이 기자라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차이가 없거나, 중심 이야기와 거의 상관없는 결을 가진다면 이는 작품의 자의식 과잉, 또는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라는 설정이 그저 흥미만을 돋우기 위한 작품의 선택으로만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언급한 것처럼 7화의 ‘미역국’은 자식을 가진, 그것도 홀로 두 아이를 키워원 양윤경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기에 충분히 설득력 있는 상징이 될 것이다. 그러나 7화 속 언론의 이야기와는 독립적인 부분이 된다. 물론 폭죽과 함께 등장하는 생일 케이크를 통해 생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 역시 누군가에게 생일을 축하받을 자격이 있는 인물이라는 얘기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시작부터 음식을 통해 해당 회차를 관통하는 설정이 구축돼버려,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이야기와 독립적인 위치를 갖는 순간 그저 캐릭터 개인의 이야기와 그 감정만을 전달하는 이야기로 전락해버린다. 이는 8화의 ‘커피’ 역시 마찬가지이다. 시작부터 마주하는 ‘커피’라는 타이틀은 말 그대로 커피가 등장하는 장면에 집중을 유도하는데, 8화에서 커피가 등장하는 장면은 마지막에 돈뭉치가 나오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인물의 감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때문에 이번 두 회차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언론의 작동 방식과 사건은 감정에 압도당해 감정만 남을 뿐이다.

출처 - JTBC

커피와 포스트 


계속 언급해 왔지만, <허쉬>에는 상징들이 자주 목격된다. 효과적으로 맡은 역할을 해내고 지나가는 것들도 있고, 별 존재감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감정 과잉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들 역시 있다. 7화의 초반, 국장은 커피를 내리며 한준혁에게 말한다. “메타포래.” PPL을 위한 장면이지만, 해당 커피머신의 특성을 설명하는 동시에 캐릭터의 특성을 표현하는 대사들은 적잖은 흥미를 만들어낸다.(‘커피’라는 제목은 오히려 7화에 더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또한 매일 한국을 질타하는 작은 포스트잇이 대대적인 사과의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으로 대체되며 언론이 여론을 어떻게 잠재우는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그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흥미롭지만, 작은 힘이 모여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힘을 갖기도 한다.

출처 - JTBC

이뿐만 아니라, 8화에서 사장이 찾지 못하는 퍼즐 조각과 국장이 가져다 놓은 새 퍼즐은, 국장의 ‘야심’, 즉 가까이 있어도 사장은 알기 힘든 그의 ‘큰 그림’ 그리고 ‘결국 완성할 수 없으니 새로운 퍼즐이나 맞추라’는 ‘메시지’로도 작용한다.


()와 연출 


이지수와 한준혁은 결국 고수도 의원의 사무실에 입성한다. 이때 두 사람, 특히 이지수의 말실수 때문에 고수도가 눈치챌 위험이 생기는 순간, 그리고 컵에 담긴 돈을 보고 고민하는 (듯한)순간을 통해 긴장감이 맴돈다. 아니, 맴도는 것처럼 보인다. 심각한 표정을 하다 이내 호탕하게 웃는 고수도의 모습은 너무도 예측 가능한 순간이기에 시청자로 하여금 안도의 한숨보다는 우려를 그대로 마주함에 대한 한숨이 내쉬게 만든다. 또한 돈을 집은 이지수가 한준혁의 눈치를 보는 것은 재물(財物)을 앞에 두고 고민하는 심리를 긴장감을 위해 의도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 역시 예측 가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물론 장르적인 진행을 가진 이야기에서 예측이 안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되지만, 그 과정에서 예측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자체가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해당 장면과 함께 들려오는 ‘음악’ 역시 장면 자체의 힘을 보태기보다는, 장면의 연출이 갖지 못하는 장르적인 분위기를 음악으로라도 보여주려는 안간힘으로 보일 뿐이다.

출처 - JTBC

마지막으로 한준혁과 이지수가 윤부장의 지시로 고수도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 이 세 사람의 행동과 대사들에서 느껴지는 작위성을 언급하고 싶다. 이 역시 경쾌한 음악과 함께 어떤 큰 비밀을 밝혀낸 것은 맞지만, 분노하는 고수도의 대사는 특별한 몸짓 없이 오롯이 앉은 채 말로만 표현할 뿐이고, 한준혁과 이지수는 태평하게 ‘계속 공격을 이어갈지’에 대해 논한다. 각본의 힘이 부족한 것일 수 있겠지만, 이는 전반적으로 연출의 부족함이 돋보이는 장면일 것이다. ‘클로즈업’과 같은 촬영적인 선택은 공식이라 할 정도로 당연한 것이지만, 인지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하기에, 두 기자의 여유로운 대화가 이어가는 동안 잠자코 보기만 하는 고수도의 참을성이 두드러지고, 덕분에 양쪽의 상황과 감정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이해되어도, 그 차이가 오락적이거나 긴장감 넘치는 마무리로 이어지지 않는다.




다시 언급하지만,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에 연기력에 대해 다양한 찬사를 받아온 배우들을 TV 드라마로 볼 수 있는 것은 적잖은 기대를 만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와 같은 분야와 달리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이 할애되는 것이 드라마이고, 그만큼 이야기가 많아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컷’ 역시 많아져 기대해온 그들의 연기를 기대 이상으로 마주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기대해온 것들을 보여주는 것 역시 해당 작품의 임무 중 하나이다.(당연하겠지만, 제작비가 훨씬 적은 일일드라마에서 환상적인 연출이나 소름끼치는 주연의 연기를 기대하는 경우는 적다.) 그리고 이마저도 너무 큰 기대라고 하기엔, 그 기대를 충족시킨 드라마들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해왔다. 굳이 제목까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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