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요소로 낯선 감각을 깨우는 연출의 깊이
<보속> 2021, 양재준
*<보속>은 현재 '왓챠'와 '무비블록'을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영역에 특정한 문법이 있듯, 영화 역시 모든 장면에 맞는 문법이 있다. 그런데 영화의 문법이 유난히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는 다수가 참여하는 이유와 더불어, 각본과 연출이 각각 일정 수준의 독립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창작자가 각본과 연출을 맡더라도 그 둘을 완벽히 조화시키는 건 쉽지 않다.
각본과 연출이 서로 장애물이 되어 양쪽이 무의미해지는 결과를 막는 것이 영화의 과제 중 하나일 텐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 자본일 것이다. 부족한 시간은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테이크를 늘인다. 부족한 소품은 적은 화면비와 흑백을 선택하게 만든다. 그리고 협소한 공간은 선택 가능한 렌즈 종류를 줄여 소실점마저 사라지게 만든다. 그럴수록 관객이 긴 러닝타임을 걱정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그렇기에 양재준 감독의 <보속>은 놀라울 수밖에 없다.
<보속>은 특정한 갈등만을 위해 이야기를 배치하지 않는다. <보속>의 핵심은 성아(강서희)를 중심으로 비롯되는 작은 불편함과 갈등을 쌓아가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속>의 정적이고 고정된 카메라는 자연스럽다. 또한 고해소와 주방 등 그 자체로도 답답한 공간을 1.33:1의 화면비로 담아내며 불편함을 강조한다. 게다가 흑백 화면 역시 인물의 불편한 표정을 잘 드러내며 의도한 효과를 배가시킨다.
이때 더욱 흥미로운 것은 <보속>의 연출이 각본에만 의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속>은 영화 고유의 문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는 특히 <보속>이 화면비와 함께 활용하는 ‘외화면’을 활용하기에 그렇다. 외화면은 프레임 바깥에 있는 요소들을 통해 긴장감 등을 발생시키는 방법이다. 성아 홀로 담긴 프레임 안으로 다른 인물이 불쑥 들어오거나, 그녀를 프레임 한쪽으로 과도하게 밀착시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이는 기본적이고 장르적인 프레임과 달라 작품 안에서 자칫 돌출될 수 있다. 하지만 <보속>은 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긴장감을 유지하고 연출의 주체성을 드러낸다.
<보속>은 이야기 자체가 갖는 힘이 유난히 커 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작품의 끝에서 나연(박세재)의 위치가 바뀌며 첫 장면이 떠오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이유로 <보속>을 다소 문학적이라 평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장편 단편을 불문하고 그만큼의 깊이 있는 각본이 많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낯선 감각마저 불러일으키는 <보속>은 단편 영역에서 단순히 눈에 띄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넘어, 어떤 하위 영역을 개척한 것처럼 다가온다.